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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민주주의] 3강 - [알면서 무시했던] 매우 정치적인 성이야기
<젠더와 민주주의>
-차별과 혐오는 어떻게 질서와 진리가 되었나?
성경에서의 동성섹스
창세기 오난, 형이 죽게 되자, 형의 부인과 섹스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난은 질외사정을 해, 하느님께 죽었다고 한다. 이로써 기독교는 임신목적외 섹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는 동성 간의 섹스는 임신목적외 섹스이기 때문에 그 역시 부정적으로 보았다.
동성애혐오 정치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는 동성애를 처벌하고 낙태에 대해 반대했다. 사람을 많이 낳아 그들을 군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성애자는 국가반역자였다.
레닌이 집권하던 당시 소련에서는 낙태가 가능했고, 유급출산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들어서게 되면서 낙태를 불가능하게 했고, 유급출산휴가도 없애고, 이혼을 억압하며, 여성의 몸을 나라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옐친이 집권을 하며 동성애처벌법을 폐지하였고, 이후 푸틴정권이 들어서며, ‘비전통적 성관계선전 교육처벌법’을 제정였다. 여기서 비전통적이라는 것은 동성간의 섹스를 의미한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동방전교회가 망해갔고, 푸틴과 동방전교회가 도덕, 즉 성생활에 관여하게 되었다.
1949년 중국에서는 동성애가 부르주아의 타락이라고 하며 총살을 하였고, 1950년대 미국에서는 동성애자가 공산주의자라며 동성애자들은 공산주의자 일 수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대다수의 독재국가 중 러시아에서는 출산율이 낮으므로 동성애는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우간다에서는 동성애유전자라는 것은 없고 비정상적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동성애
과거 고려 목종 때에도 목종과 신하와의 동성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없었다고 한다. 또 조선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와, 쓴 책에 ‘일본에서 남색이 유행했다’, ‘일본에서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는 식으로 쓰였다고 한다. 또 일본에 혼마 규스케라는 사람이 조선으로 여행(?)을 왔다가 쓴 책에서 조선에 남색이 유행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썼다고 한다.
일본은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동성애를 터부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혼마규스케도 일본의 도덕적 우월을 위해 조선의 남색에 대해 썼다고 한다.
‘호모섹슈얼’의 유래
1869년 의사가 ‘호모섹슈얼’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남성간의 섹스를 형법에서 다루는데 그것이 왜 범죄냐고 하며 만든 단어이다
한국에서의 동성애혐오 운동
2005년 사립학교법(사학법)을 개정하게 되었고, 기독교에서는 개정에 반대를 했다. 대다수 사립학교는 기독교소유이고, 사학법이 개정되게 되면, 이사회가 투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 사학법은 재개정을 하게 되었고, 재개정 2달 뒤 차별금지법이 입법을 예고하게 되면서 기독교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반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추세
-2005년 기독교에서는 추세로 보아 신도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빚을 지고서라도 교회를 지었다. 하지만 근래, 기독교에서 안 좋은 일들이 있어서 신도수는 늘지 않았다. 결국 교회에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되자, 교회는 힘들어졌고, 혐오로서 자신들의 편을 만들며 혐오의 정치를 하게 되었다. 또, 목사는 많다. 하지만 이들이 갈 교회는 줄어들고 있다. 이 목사들은 반동성애단체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결국, 이후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운동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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