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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7)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 자비로운 여신들
정치철학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 읽기 마지막 시간(11월 2일)엔 <아가멤논>에 이어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나머지 두 작품을 읽었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왕비가 아가멤논을 죽이며 벌어진 복수는 자녀세대인 엘렉트라와 오이스테스에게로 이어지고(<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이 복수는 시민들이 참여한 재판장에서 비로소 마무리됩니다(<자비로운 여신들>). 복수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용서를 다룬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화해가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이뤄지는 측면을 주목합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제목은 클리타이메스트라와 그의 딸인 엘렉트라를 지칭합니다. <아가멤논>에서 클리타이메스트라가 남편인 아가멤논을 죽이고 정부인 이아기스토스가 권력을 차지하자 위협을 느낀 엘렉트라는 어린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도망치게 했습니다. 극이 시작하면 성장한 오레스테스가 아가멤논의 무덤을 찾아오고, 이어 제주를 바치러 등장한 엘렉트라와 재회해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코로스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섭니다. 오레스테스는 친구 퓔라데스와 나그네로 위장하고 아이기스토스의 성에 찾아갑니다. 이들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고 거짓 소식을 전하며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접근해 이들을 살해합니다. 그러자 오레스테스는 클리타이메스트라의 혼백이 불러낸 복수의 여신들이 나타난 것을 보게 되고, 도움을 청해 어디론가 도망칩니다.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오레스테스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소에 도착해 아폴론으로부터 아테나이로 가 재판을 받으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테나이에서 아테나 여신이 재판장으로,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석한 가운데 공개 재판이 열립니다. 모친인 클리타이메스트라를 죽인 오레스테스의 유죄 여부를 두고 아폴론이 변호에 나서고, 배심원 투표가 동수로 팽팽히 맞선 결과를 본 아테나가 오레스테스를 지지하며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오레스테스를 쫓아온 복수의 여신들이 재판 결과를 보고 아테나이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자, 아테나는 그들이 지낼 곳을 마련해주고 아테나이를 축복해주도록 설득합니다. 이로써 복수의 여신들은 제목의 '자비로운 여신들'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아가멤논>에서 남편살해,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모친살해의 주제를 다루고 이 두 사건이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재판이라는 제도를 통해 완결되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연쇄적인 복수 가운데 벌어진 남편살해와 모친살해 중 어느 쪽이 더 큰 죄인지를 놓고 대립하는 갈등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오레스테이아가 왜 무죄 방면되는지 이유를 살펴보려면 그의 행동 배경에 아폴론의 신탁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게 이런 모험을 하도록 명령하신 록시아스의 강력한 신탁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는 모두 어머니의 손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원한[사적인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레스테스에게는 그 이상으로 신이 부여한 공적인 명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 배경으로는 코러스로 대변되는 시민들이 오레스테스의 복수를 지지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아가멤논의 죽음 이후 아이기스토스의 참주정치에 시달리고 있던 코러스들은 무덤가에서 복수를 맹세하는 남매를 옆에서 계속 지지하며, "아르고스시 전체에 자유를 찾아주었다"고 두 사람을 죽인 일을 칭찬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복수는 분명히 유혈을 부르는 폭력적인 방식이었고, 때문에 재판을 통한 해결이 불가피해집니다.
<자비로운 여신들>의 재판 장면은 지금까지 이어진 사법 제도의 기원적인 측면을 보게 해줍니다. 극중에서 재판은 사건 발생장소인 아르고스가 아니라 아테네에서 열리는데, 그 이유로는 당시 이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 역할이 아르고스에서 아테네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편으론 재판 장소가 변경된 것이 재판이란 실제 사건 당사자와 관계없는 제3자가 판단해야 공정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를 제도 전체에 적용하면 제도란 이해당사자가 아닌 외부자가 설계해야 한다는 것, 불가피하게 내부자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면 제도를 만든 내부자가 이후 그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재판장에서 복수의 여신들은 클리타이네이메스 편에서 모친살해가 더 큰 죄라고 주장하고,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변호해 남편살해가 더 큰 죄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남편과 모친 모두 가족 안의 가까운 인간관계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공적인) 서약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라는 점에서 남편살해는 비혈족살해, 모자 모녀 관계는 혈연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라는 점에서 모친살해는 혈족살해라는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 점에 근거해 복수의 여신들은 오레스테스가 혈족을 살해한 죄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아폴론은 "제 자식의 진짜 생산자는 자궁에서 태아를 기른 어머니가 아니라 수태시킨 아버지"이며 "어머니 없이 자식이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합니다.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가 바로 그런 경우이기 때문인데, 아테나 역시 이 점을 근거로 자신은 남자/아버지 편이라며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물론 지금 기준에서 보면 불합리한 논리이지만, 오레스테스에겐 신탁이라는 공적 명분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테나이의 재판은 제도로서의 재판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이 재판은 아테나가 11명의 시민 배심원과 전령, 수많은 백성들을 데리고 등장하면서 시작하는데 이는 재판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치뤄져야 함을 알려줍니다. 또한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측이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사건을 공동체가 공유하게 하고, 나아가 여기서 성립된 정보의 공정성이 재판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외에도 아테나는 재판으로 제시되는 제도가 가져야 할 덕목들을 제시합니다. 먼저 아테나는 극중의 재판이 앞으로도 존속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판결의 공정성은 그 기준인 법이 지속적으로 적용되어야 보장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테나는 배심원들이 뇌물에 매수되지 않는 나라의 불침번이 될 것을 주문하며 제도가 불의에 단호히 맞서야 함을 지적합니다. 또한 "무정부도 독재도 아닌 통치 형태를 유지하고 두려운 것을 도시 안에서 모두 추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도시가 정치적 결정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통치 형태,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용기가 재판의 공정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입니다("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면 사람들 중에 누가 언제나 의로울 수 있겠는가?")
재판의 공정성과 지속성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 아테나가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하는 대목에서 더 중요해집니다. 재판에서 패한 복수의 여신들은 자신들의 룰이 무너진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는데, 아테나는 그들에게 이 땅에 머물며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면 시민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합니다. 이 약속이 지속적으로 지켜져야만 아테네는 그들의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자비로운 여신들>은 사법 제도가 복수를 끊는 해결책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고, 또한 이를 위해선 아테네의 약속과 같은 법이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하며, 법의 적용 범위를 복수의 여신들 같은 도시 외부인에게까지 확대함으로써 외부인을 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지금 우리의 법 시스템도 돌아보게 만듭니다. 법은 말의 힘을 통해 화해를 이끌어내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오레스테이아의 경우처럼 법치의 작동은 그 환경이 얼마나 공정하게 만들어져 있느냐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법에 의한 통치는 종종 강조되지만 부조리한 환경이 법치의 공정성을 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ex. 검찰의 기소독점). 갈등 해결책으로서의 법치가 제대로 되려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잘못된 환경들을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고대 그리스 비극 강의는 문학적 시각에서 탈피해 정치철학적 시각으로 독해를 시도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당시 인간들의 고뇌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당시 인간들과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환경이 같을 수는 없지만(예컨대 고대 그리스에서 운명은 이미 신탁으로 내려져 잘 알고 있는 것이었고 그걸 당당하게 맞아들이는 자세가 자유로 칭해졌지만, 마키아벨리 시대로 넘어가면 운명은 예측불가한 것이고 그에 맞서 저항하는 게 자유라는 인식이 생겨납니다), 이들 비극은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자유 개념부터 마지막 강의의 화해 개념까지 지금의 정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들이 지금 고민할만한 이슈들을 고대 그리스 비극들이 앞서서 어떻게 사유했는지 발견하는 기회를 더 찾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