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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6) 아가멤논
전날(10월 25일) 보도된 국정농단 파문으로 모두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모인 여섯 번째 시간(10월 26일) 강의에서 읽은 작품은 <아가멤논>입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과 함께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하나입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군을 지휘한 왕이지만, 동시에 온갖 악행과 끝없는 복수로 점철된 가계의 역사 가운데 우유부단하고 오만한 행동으로 화를 입습니다. (의도한 스케줄은 아니지만) 정치적 '무능함'과 '잔혹함'이라는 주제가 현재의 시국과 공교롭게도 잘 맞아떨어지고,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비극입니다.
<아가멤논>은 <일리아드> 등을 통해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 직후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기둥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필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미케네와 아르고스의 왕인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막 왕궁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부인인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 척하며 아가멤논을 죽입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것이 아가멤논에 대한 복수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이해하려면 아가멤논의 가계도와 함께 극중을 통해 밝혀지는 이전 사건들을 알아야 합니다. (아가멤논의 가계도 참조)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르테우스(아가멤논의 아버지)의 쌍둥이 동생 티에스테스가 아르데우스의 아내를 유혹해 아르데우스의 권력에 도전함
(2) 아르데우스는 티에스테스의 자녀들을 죽이고 티에스테스를 잔치에 초대해 죽인 자식들의 인육으로 만든 요리를 먹임.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티에스테스의 자녀 아이기스토스가 아르데우스 집안에 대해 복수심을 갖게 됨
(3) 아가멤논이 사냥 중에 숫사슴을 마주치고, 숫사슴이 아르테미스 신의 소유임을 알면서도 쏘아죽여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삼
(4) 파리스가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리오스의 부인인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도피, 트로이 전쟁이 발발함
(5) 아가멤논을 총지휘관으로 한 그리스 군대가 배를 타고 출정하려고 하나, 아르테미스가 바람을 멈춰세웠기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못하게 됨. 아르테미스 신의 노여움을 풀려면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옴.
(6) 아가멤논은 동맹의 서약이 더 중요하다며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고,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복수심을 품게 됨
(7)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불륜 관계에 빠지고,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을 죽이라고 사주함
(8)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과 그가 전리품 격으로 끌고온 카산드라를 칼로 찔러 죽이고, 이후 아이기스토스가 등장해 아가멤논의 재산으로 참주 자리에 오를 의사를 밝힘
정치적으로 독해할 때 <아가멤논>은 정치 지도자의 우유부단함(= 무능함), 복수의 잔혹함과 간교함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일리아드>에서 묘사된 트로이 전쟁 과정은 물론 <아가멤논> 작품 전반을 통해 아가멤논은 우유부단하고 지질한 행동도 곧잘 저지르는 왕으로 그려집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책임으로 딸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반성 없이 딸을 포기하고, 이피게네이아가 가문을 저주할까봐 입을 틀어막기까지 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하려고 탐내다가 그리스군에 역병이 돌게 만들고, 아킬레우스를 분노케 하여 전황을 불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극중에선 클리타임네스트라가 그를 추어올리며 맞이하자 신들의 색깔인 보랏빛으로 만든 주단을 밟는 오만한 행동도 합니다. 아가멤논의 행동의 특징은 다른 비극 주인공처럼 스스로 결단하고 상황을 주체적으로 바꾸기보단 상황에 떠밀려서 행동하고,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자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가멤논이 우유부단한 왕으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사악함은 능력이지만 우유부단함은 무능이다."
반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복수의 잔혹함을, 이아기스토스는 복수의 간교함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복수를 위해 아가멤논에게 자신이 정절을 지킨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말과 설득의 기술인 정치에서 정직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복수는 이와 반대되는 특성을 지닌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아가멤논이 딸을 죽인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또한 정의의 여신들을 호명해 이 복수에 정의를 부여하고 합니다. 반면 이아기스토스는 정부에게 복수를 교사해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복수하고, 아가멤논의 재산으로 시민들을 다스리겠다고 선언하면서 복수의 폭력이 참주의 탄생을 부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코러스장은 이아기스토스에게 반발하면서 그와 싸움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잔인한 폭력으로 잡은 권력은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은 복수가 또다른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입니다. 정치철학적 측면에서도 정치에서 위와 같은 특징들이 등장할 때 정치보복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연쇄적인 정치보복 문제의 해결책으로 학자들이 제시하는 것은 "용서" 개념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보복의 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종차별 문제가 극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시한 "진실과화해협의회" 모델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이 현장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출석시켜 용서와 화해를 이끄는 모델입니다. 이 모델에 대한 반론도 물론 존재합니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전세계의 주목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암묵적 압력이 있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 협의회가 만들어져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최종적 화해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용서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먼저, 용서란 가해자가 제대로 된 사죄를 해야 가능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하루빨리 일본의 사죄를 받고 그들을 용서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일본이 이 문제를 적당한 선에서 묻으려 하고 용서를 빌지 않는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국정농단 사실을 떠밀린듯 인정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같은 표현으로 자기 책임을 도외시하는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사과를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가해자가 사죄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죄하지 않음에도 피해자가 용서를 한다면, 그것은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덮어둔 채 망각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천안문사태를 겪은 중국은 학교에서 이 사건을 가르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잊으려 합니다. 훼손된 형태의 용서는 집단의 기억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제대로 된 용서가 이뤄지려면 집단 전체가 외상적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가해자의 가해 사실과 그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명확히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제기되는 문제는, 어떤 사건은 결코 용서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가멤논>에도 등장하듯이 아버지에게 자기 자식의 인육을 먹이고, 아버지가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사건을 용서로 해결한다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아가멤논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그 용서는 과연 가능할까요? 다시 말해, 정치적인 무능함은 용서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좀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한편 Martha Minow는 <Between Vengeance and Forgiveness>에서 용서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가해자는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는가? 사죄의 끝은 피해자가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때까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도저히 용서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일 때 사람들은 대개 가해자보다 용서하지 않는 피해자에게 더 많은 비난을 보낸다고 합니다. Minow는 왜 우리는 가해자의 감성에는 민감하고 피해자의 감성에는 둔감한지를 묻습니다. 즉 제대로 된 용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피해자들에게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과 권리를 마련해줘야한다는 것입니다.
Minow의 지적에 이어받아 마지막으로 제시할 아이디어는, 한국의 이념갈등에 대한 것입니다. 정치적 보복이 끊이지 않았던 현대사를 돌아볼 때,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과연 화해가 가능할까요? 앞에서 살펴본 용서의 개념을 한국의 이념지형에도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이 고민은 다음주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 구본형의 아가멤논에 대한 칼럼을 링크합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