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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를 위한 시민경제교실] 기본소득 시대를 상상하다
2016년 10월 18일, <기본소득 시대를 상상하다>를 주제로 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이자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저자인 하승수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아래 강의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마다 그 내용이 다양하지만, 기본소득을 대한민국 맥락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맥락도 서로 다르다. 외국의 이론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살펴봐야 한다. 그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도 상당히 많았는데 유럽의 맥락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책이 그러하듯 기본소득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기존의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이 별로 충돌하지 않는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저부담 저복지 국가이기 때문에 기존의 복지제도와 조화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우리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실마리이다.
기본소득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조건 없이 돈을 주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부딪히는 지점은 ‘왜 일하지 않는데 돈을 주는가?’이다. 미국 사회는 공짜로 돈을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임금을 떠올리게 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보다는 ‘시민배당(citizen's dividend)’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배당’받는 권리라는 것이다. 유럽은 보편적으로 수당과 복지를 받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는 기본소득에 거부감이 적다. 네덜란드의 기초연금(AOW)는 50년 이상 거주 조건만 충족되면 싱글인 은퇴자의 경우 최저임금의 70% 수준을 지급하며, 재원은 조세(18.9%의 사회보장세)로 마련한다. 네덜란드의 노인 빈곤율은 1.6%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노인의 66%가 기초연금으로 월 204,000원을 받고 있다. 수혜자 90% 이상이 만족하고 있으며, 노인 빈곤율이 49%에서 43.8%로 떨어지는 효과도 있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청년수당을 시행했다.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국 사회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아도 돈을 받는 경험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논할 때, ‘왜 일하지 않은데 돈을 주나?’ 다음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왜 전 국민을 다 줘야 하나?’ 이다. 기초연금이든 어떤 제도이든, 선별하는 순간 지급대상과 지급액은 제한되며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비전이 되지 못한다.
노동운동계에서 오히려 기본소득에 반대 입장을 보인다. 유럽에서도 사회민주당이 기본소득을 반대한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당장의 고용이 불안해지다보니 노조가 위축된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가능케 하는 비노동 소득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답인 것이다. 농민운동 입장에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농산물 가격유지를 위해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수 십 년 동안 수입 개방에 반대했지만 어찌되었든 시장은 열렸고 쌀값은 떨어지고 있다. 당장 농민들이 폐농을 하는 상황이다. 농민들에게도 농사(노동)와 무관한 소득 즉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된다고 생각해 보자. 현재의 상황에서 기본소득 외에 답이 없지 않는가. 노동자 농민 청년의 각개전투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사회 공동의 비전으로 기본 소득이 유력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강의를 다니다보면, 정작 기본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이 “왜 일 안 하는데 돈 줘요?” 라는 질문을 한다.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도 미국과 같이 배당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합하다. 미국의 경우, 알래스카에서 1980년대부터 공유자원인 석유에서 발생한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당하였고, 이제는 주민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제임스 한센(James Hansen)은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탄소배출권 경매수익을 배당금으로 나누는 탄소배당(Carbon dividend)을 주장하였다. 기본소득이 단순한 복지제도가 아니라 정책적인 아이디어로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배당의 개념이 낯설지 않다. 제주도 마을에서는 풍력발전에서 발생한 수익을 주민에게 배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유자원은 무엇이 있을까? 땅이 가장 큰 공유자원일 것이다. 아직 29%가 국공유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국공유지를 민간 기업에 불하해주는 특혜로 쓰이고 있다. 인공적인 공유자원도 많이 있다. 인터넷, 방송 주파수, 금융 시스템도 공유자원이다. IMF로 은행이 망하기 직전일 때, 국민이 세금으로 은행들을 살려주었다. 그리하여 은행이 수익을 내었다면, 왜 이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도 대기라는 공유자원을 이용하고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쯤에서 ‘정말 돈을 마련할 수 있는가?’란 질문이 생긴다. 조세 국민 부담률이 GDP의 50%로 세계 1등인 덴마크는 고부담 고복지이므로 기본소득이 달리 필요하지 않다. 핀란드의 국민 부담률은 40%이지만, 세금을 더 걷어 재정을 마련한 후 기본소득을 국가적으로 실험할 예정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이 현 24.3%인 조세 국민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인 34.1%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추가로 마련할 수 있는 재정규모는 188.6조원이다. 국민 1인당 매월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저부담 저복지 국가이므로, 덴마크 핀란드보다 그 도입이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1965년에 덴마크의 국민부담률은 29.5%였으나 1971년에 40.8%까지 끌어올렸다. 불과 6년 사이에 11.3%올라간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조세부담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기본소득을 실제화 하려면 단계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로드맵 1단계에서는, 소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 만 15세 이상 청년/노인/장애인/농민 4그룹에서 우선 실시한다. 2천만 명 정도가 된다. 2단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한다. 1단계의 재원은 조세 제도를 정상화 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2단계에서는 보편 증세를 한다. 북유럽식 조세구조와 같이, 모든 국민이 소득 규모와 상관없이 소득세를 조금씩은 내게 하고, 고소득층은 누진세를 내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사각지대에 있는 세금인 주택 임대 소득, 주식양도차익, 주식배당소득 등의 징수를 강화한다. 기본 소득(시민 배당) 도입으로 인해, 국민들이 조세와 연 400조 의 예산을 ‘내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조세 제도가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노후보장, 장애인의 기본 권리, 청년들의 비빌 언덕 정도는 사회가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로드맵의 1단계 정도는 당연한 복지이다. 기본소득이라는 하나의 보편적 비전을 위해 로드맵 1단계도 기본소득 혹은 시민배당이란 개념으로 접근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보편적인 기본소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원활동가 김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