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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를 위한 시민경제교실] 홍기빈 소장의 <4차산업혁명이 불러올 우리의 미래>
2016년 10월 11일, <4차 산업 혁명이 불러올 우리의 미래>를 주제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후천개벽의 변화가 올 것이나, 혹세무민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란 전제로 시작된 강의는 많은 생각 거리를 남기면서도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래 강의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올 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몇 달 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4차 산업혁명이 다시 한 번 세간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머지 않아 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으로 인해 사회적 격변이 올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통해 기술과 사회 변화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776년 증기기관과 방직기의 발명이 1차 산업혁명으로 정의되며,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말에, 3차 산업혁명은 1971년 IBM의 마이크로 칩 생산을 그 시작으로 봅니다. 전례를 볼 때 1,2차 산업혁명이 100년가량 지속 되었으므로, 2050년경이 되면 현재 진행되는 산업혁명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날 것입니다. 현재 제레미 레프킨 등이 3차 산업혁명을 논의하고 있지만 정교한 수준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 중요한 사건은 많았으나 산업혁명보다 중요한 사건은 없습니다. 1만 년 전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혁명에 견줄 수 있을 만큼, 200년 전의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 인간 대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볼까요? 중화학 공업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물건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종이컵도 그냥 종이가 아니라 왁스가 칠해진 종이입니다. 인간의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물질세계가 바뀌면 인간의 정신세계와 생활 방식도 바뀝니다. 100년 전과 오늘날의 순결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화학 공업 즉, 2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피임 도구로 임신의 통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홍기빈 소장은 슘페터의 이론을 바탕으로 각 산업혁명 내에 두 번의 국면이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1776년에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1830년에 기차의 사용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1880년에 2차 산업혁명 시작되었고 1930년대 이르러 독일의 아우토반을 비롯한 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하며 2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1970년대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2010년에 인공지능으로 그 절정을 이루었으며, 과거 주기에 미루어 볼 때, 2050년이 되면 완결 될 것입니다. 슈밥 회장처럼 국면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용어로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실지로는 3차 산업혁명 내의 두 번째 국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으로 기술혁신이 시작되면 동시다발적인 기술 혁신이 이어지고, 이는 거대한 하나의 기술혁신을 만들어냅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사업들이 나오면서 경제가 활황이 됩니다. 전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전기의 생산단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전기를 아무 곳에서나 쓸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온갖 가전제품을 발명, 생산하였습니다. 산업혁명 내의 두 번째 국면에 들어서면 사회 혁명이 벌어집니다. 1830년에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철도를 놓았고, 이는 교통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생각해보면 1830년 당시의 사람들은 ‘그 먼 곳을 왜 가나? 정 가야하면 역마차를 타겠다.’ 했을 지도 모릅니다. 기차로 인해 교통사회가 되는 것이지, 이동을 해야 하므로 기차가 나타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철도에 대한 수익 예측은 무척 불확실 했습니다. 그리하여 막대한 투자금을 모으기 위한 주식시장이 생겨났습니다. 1832년 영국에서는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사업에 맞는 법과 제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귀족을 몰아내고 의회를 장악하였습니다. 1920년대 파시즘의 본질은 2차 산업혁명 즉, 중화학 공업에 맞는 사회 건설이었습니다. 부르주아들의 자유방임주의 사회와 양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큰 규모의 기술적 변화는 정치 사회의 급변을 가져옵니다. 옛 기술을 가진 기득권과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가진 세력이 충돌하게 되고, 이것의 폭력적 발현이 부르주아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었습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의 자동차 운전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2010년을 접어들며 비약적 발전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같이 사물-사회-인간-자원이 클라우드 안에서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는 슈퍼 커넥티드가 구현되면서 산업의 효율성이 온전해 졌습니다. 역사를 통해 알아보았듯,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제, 사회 조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핀테크로 은행이 불필요해 지고 애널리스트가 아닌 프로그램이 그 기능을 수행할 것입니다. 백선하 같은 의사에게 가느니 오진율 3% 미만인 인공지능 의사에게 가고 싶을지 모릅니다. 로봇이 단지 육체적 노동만을 대체하지 않는 현실에서 좋은 일자리 보장은 난센스일 것입니다. 사람의 소득은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오랜 관념에서 벗어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18세기 말 계몽주의자들로 시작된 케케묵은 정치제도인 대의제 민주주의는 어떨까요? 소수의 ‘엘리트 전문가’로 운영되는 현재의 정치 제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할까요? 바뀌지 않을 제도가 없습니다.
앞선 1,2차 산업혁명은 유혈적 혁명으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에 평화적으로 그 변화를 이뤘던 스위스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한국의 사회 혁신 또한 평화적으로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기술부터 들여오고 보자는 60년대 식 태도가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필요한 사회적 혁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정 필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에 매료되는 예찬론적 태도나 염세론적 불안이 아닌,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는 어떤 인간형이 필요할까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가 뭘 원하고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발전시킬 줄 아는 사람으로 스스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에 새로운 규범이 될 인간상이 무엇인지 능동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끝>
자원활동가 김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