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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4) 안티고네
네 번째 강의 시간(10월 12일) 읽은 그리스 비극은 <안티고네>입니다. 세 번째 시간에 다룬 <오이디푸스 왕>을 쓴 소포클레스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오이디푸스의 비극 이후 그의 딸인 안티고네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의 장례를 금지한 참주 크레온의 명령에 불복종하면서 죽음을 맞습니다. 정의를 행하려던 주인공이 그 때문에 오히려 대가를 치르게 되는 이야기는 정치철학 측면에서 정의론과 그에 관련된 '판단의 부담' 문제를 결부시켜 읽을 수 있습니다.
<안티고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죽음 이후 왕좌를 놓고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 전쟁은 폴리네이케스가 타국의 군대를 끌어들여 에테오클레스에게 도전하는 형태로 벌어졌고, 테베 성 바깥에서 싸우던 두 형제가 동시에 전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왕좌는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의 오빠 크레온에게 넘어가고,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겐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 반면, 폴리네이케스는 매국노로 지목하며 시신을 성 밖에서 죽은 그대로 부패하게 내버려두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명령을 어기는 자를 사형하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남편과 자식은 바꿀 수 있을지언정 혈육인 오빠는 그럴 수 없다'며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흙을 뿌려주고, 이를 말리는 여동생 이스메네와 의절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크레온은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안티고네를 석굴에 가둬 자연사하도록 형벌을 내립니다.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정혼자인 하이몬이 반발함에도 듣지 않지요. 이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집니다. 석굴에 갇힌 안티고네는 목을 매 자살하고, 안티고네의 시신을 발견한 하이몬도 크레온을 비난하며 칼로 스스로를 찔러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부인 에우리디케 역시 목숨을 끊습니다.
안티고네가 겪는 갈등은 공동체와 가족 사이에서, 그리고 인간[왕]이 정한 법률과 신의 법[오늘날의 '인륜']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의 많은 이슈를 정의와 불의의 충돌로 받아들입니다만, 안티고네의 경우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의가 충돌한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안티고네가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주든 그렇지 않든 둘 중 어느 쪽을 택한다고 해서 이를 절대적으로 나쁜 선택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어느 쪽을 택하든 왕률과 신률 한 쪽을 저버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안티고네의 비극은 정의가 확신하기 어려운 선택의 문제임을 드러내며, 죽음과 불명예란'판단의 부담'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티고네의 용기는 숭고함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한편 크레온은 참주가 정의라는주제와 어떻게 연루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크레온은 왕위를 물려받을 때만해도 "통치와 입법으로 검증받기 전까지 한 인간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열린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격해지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곧 도시를 통치하는 유일한 법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금하는 명령을 내리면서 그는 신의 권리도 침범하고, 하이몬을 비롯해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요컨대 참주에게 있어서 정의란 곧 자신의 법이며, 법의 영역 밖에서 정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이몬은 참주를 이성적으로 설득하려던 시민들이 실패한 이후 스스로 (참주와 같은) 광기를 보이며 비극적 결말을 맞는 인물인데, 안티고네의 죽음과 더불어 도시의 충고를 듣지 않는 참주가 시민들에게 판단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안티고네>의 딜레마는 이후 정치철학자 존 롤스에게로 이어집니다. 롤스는 현대사회의 '가치다원주의'가 선택의 딜레마와 판단의 부담 문제를 불러온다고 지적합니다. 주어진 선택지들이 서로 다른 신념의 차원에 존재하고, 또한 모두 합당하기 때문에(또는 합당해 보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의의 원칙에 '서열'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 전체가 보편적으로 따를 수 있는 선택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롤스는 현대사회에선 전체 생산량의 성장보다 분배에서 정의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의 원칙을 스스로 제시합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공리주의는 '쾌락은 늘리고 고통은 줄이라'는 원칙을 내세우지만 개개인의 쾌락/고통을 측정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효용에만 집중하는 폐해에 빠집니다.) 이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원칙(정치원칙):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제2원칙(사회경제원칙)
- (a)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사회적 우연성 혹은 타고난 개인적 능력이 분배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 (b) 차등의 원칙: 사회적 불평등은 모든 사람, 특히 사회의 '최소수혜자'에게 불평등을 보상할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
이들 원칙에는 '서열'이 부여되어 있어 제1원칙은 제2원칙보다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하고, 제2원칙 내에서도 (b) 원칙은 (a) 원칙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 원칙에 기반해 롤스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이유로 기본적 자유, 개인의 인생 전망을 실현할 기회 등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여러 다양한 사회에서 분배의 정의가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려면 가장 적게 분배받는 '최소수혜자'의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는 결론도 이끌어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김만권 선생님의 과거 롤스 관련 강의 내용을 찾아보시면 좋습니다.)
다양한 사회에 정의의 원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롤스의 정의론은 자유주의자임에도 평등의 문제를 다룬 경우라는점에서 주목할만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로 잠잠해진 서양 학계의 정의론 논의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의의 딜레마는 현대 우리 사회에서도 여러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 조작 사건의 경우를 보면, 한 쪽엔 논문을 조작해선 안된다는 연구윤리가 있고, 다른 한 쪽엔 장기적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조작된 논문을 용인하지 않으면 국익에 해가 된다"는 주장이 선택이 가능한 문제, 판단의 부담 문제로 돌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롤스가 제시한 원칙을 적용해 보면 이러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난자 추출, 연구결과 조작 등 논문작성 과정 자체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이유로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최근 백남기 농민의 '병사' 사망진단서를 둘러싸고 불거진 논란 역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잘못된 판단이 논쟁의 대상으로 둔갑하는 현상이 사회 내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의사의 사망진단서나 법원의 판결 등 사회 전체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적 판단과 일반 구성원의 보편적인 믿음 사이에 격차가 커지는 현상은 한국을 비롯한 현대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공적 판단에 대한 신뢰가 사라질 때 우리는 차라리 인공지능에게 판단의 역할을 맡기는 게 낫겠다는 상상을 막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티고네와 롤스의 정의론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참고할 좋은 지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