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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4강. 시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4강 시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헌법 제 2장은 제10조에서 39조까지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익숙한 구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 및 구성을 살펴볼까요?
2장의 시작, 10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이 내용은 헌법 전문의 내용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니까, 10조는 제2장의 전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기본 정신이자 중심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다음은 11조는 이렇습니다.
(1)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3)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표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11조의 내용의 핵심은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법치정신의 기본에 대한 내용이면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사회구조는 어떠한 계급도, 특권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조는 10조를 보완해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앞선 수업에서 배웠듯이 자유와 평등은 충돌이 불가피한 가치입니다. ‘권력도 나의 자유다.’ ‘내 돈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왜 국가가 막아서느냐.’ 등의 주장 앞에서 항상 자유와 평등의 딜레마가 발생하지요. 헌법은 이에 대해 어떠한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유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보아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같은 죄를 저지르면 항상 같은 형량을 내리는 것이 평등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냉철함을 유지하며 법의 항목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 다음 12조에서 23조까지는 모든 조항 끝에 ‘자유를 가진다.’는 말이 붙습니다. 그리고 24조부터는 ‘권리를 가진다.’는 말이 나오는데, 24조에서 30조는 정부 구성과 정치적 행동에 대한 권리에 대한 내용이고 31조에서 36조까지는 국가에 요구할 권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37조는 헌법에 열거 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예외 상황에 대해서, 38조, 39조는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부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12조입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시작이 ‘신체의 자유’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이 조항은 헌법 조문들 중 가장 긴 내용을 담고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신체의 자유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을 국가는 존중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에 선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조항들은 신체의 자유에 귀속되는 것들로 거주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유를 위해 가져야 할 책임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이행해야 할 책무 또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육, 근로, 사회보장, 환경, 가정에 대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지침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국가가 일자리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하며 선발 과정에서의 불합리함, 불평등 또한 관여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제22조 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2항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의 학습권이 금전적 상황과 무관하게 평등하도록 보호해야 하고 블랙리스트 따위로 예술 활동의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법은 무엇인가?
법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말이었지요. 저는 이 말에 대해 주로 악법도 법이니 지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라는 해석으로 배워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의문이 들더군요.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상황도 같은 것일까?
과거 절대군주 사회에서는 그러한 해석이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하지요. 신의 말씀이니 감히 어길 수 없지요. 그러나 현재의 근대사회에서 법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사회 규칙이 아니라 반대로 권력에 대한 인간의 독점을 방지하고 사회 구성원들을 권리와 의무로 연결시켜 정치 활동의 틀을 제공하면서 역동을 불러일으키지요. 더군다나 민주사회에서 법은 모든 구성원이 법 제정과 수행자로 참여할 가능성을 갖습니다. 대의정치란 법 제정과 수행의 역할을 나눈 것으로 법 집행의 합리성을 보장하면서도 견제 가능성을 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민주사회에서 법이 악하다면 바뀔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민주사회에서 이렇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법은 악법이다. 그러니 법을 맹목하지 마라. 법은 변한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최근 통과 된 김영란법만 하더라도 만들어지기까지 몇 해가 걸렸습니다. 그러한 숙고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문제는 발생하고 문제제기도 계속 되고 있지요. 이렇게 보면 법은 아주 단단하고 보수적이고 굳건한, 변하지 않을 기둥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법에도 진보는 있습니다.
이국운 선생님은 법 내부에 아주 재밌는 모순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법 창조’와 ‘법 발견’의 다이내믹스입니다. 법 창조는 법 제정을 말하는 것으로 법 제정자의 욕망과 의지의 결합을 중요시 합니다. 법 발견은 법의 해석을 중요시하며 욕망보다는 이성적 법원리와 의지의 결합입니다. 말이 너무 어렵지요. 저의 식대로 쉽게 풀어보자면, 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지켜지도록 하고자하는 어떤 욕망의 발현이며,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욕망을 관통하면서도 어떻게 법이 집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지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성과 욕망의 다이내믹스가 아닐까요?
법은 욕망의 의지이기에 진보할 수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사람들의 욕망은 변화하고 때문에 법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법은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진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타당했던 법이 현재엔 악법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인식 변화에 맞추어 과거 판례를 뒤집는 사례가 가능한 것이지요. 근대사회에서 이 다이내믹스는 이런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법 창조의 우위-법발견의 요청-법발견의 우위-법창조의 요청’
헌법재판소는 누구인가?
다시 헌법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수업은 10조와 37조2항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진행되었습니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37조
(1)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37조 2항은 국가에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국가가 책임을 다 하지 못했을 때 면죄부의 근거로 쓰여 왔습니다. 선생님은 10조에 대해 ‘마르지 않는 샘’이라 표현하셨고, 37조 2항에 대해서는 ‘마스터키’라고 하셨습니다. 10조를 근거로 한 소송이 끊이지 않고, 37조2항을 근거로 패소하는 국민 또한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판결들은 37조 2항을 근거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소송을 패소 판결 내려왔습니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또는 공공복리의 측면을 따졌을 때 ‘그다지 위법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선생님은 ‘헌법 재판관들은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던지셨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자신들은 국민이 아닌 척 헌법의 화자에서 빠져나와, 국가와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고 있지 않는가? 하며 통탄하셨습니다.
법률가들은 자신들이 법의 화자라는 것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선 저 피고인과 내가 같다, 내가 읽고 있는 이 법문 앞에 나는 얼마나 떳떳한가, 이 법을 나는 따르고 싶은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법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벌의 편이 아닌 국민의 편에, 정부의 편이 아닌 정의의 편에 서는 이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명한 ‘배심원’으로써의 헌법재판소가 되는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