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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1), 아리스토텔레서의 <시학>
자유인들에게 왜 연민과 공포가 ‘필요’했을까?
자유인들의 도시(국가). 그리스 아테네 하면 가장 떠오르는 말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특정 전문가가 아닌 자유인(시민)들의 토론과 합의로 법이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합의한 사항(법)에 대하여 “성벽을 지키듯이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자신들이 만든 법에 대한 준수를 강조했다. 시민들이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법에 대한 준수를 강조했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고 법에 의지하는 것을 정치의 상태로 본 것이다. 이와는 반대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야만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자유로운 시민들의 합의(법에 대한 준수)는 곧 아테네 시민들에게 공동체 안에서의 주인의식을 심어주었고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그런데 이런 자유인들의 공동체에서 시민들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비극을 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왜 아테네에서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이러한 비극들을 시민들에게 접하게 하는 것이 아테네에 무슨 도움을 준 것일까
비극의 필요성
아테네 비극에는 간사한 인물 혹은 이간질 하는 인물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우리가 기성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비극 작품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아테네에 있었던 비극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런 장치들 없이도 비극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 주인공들이 과거에 했던 선한 행동들조차도 미래에 비극적 상황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고, 비극적 상황을 인식하고 벗어나고자 노력해도 실패하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아테네 비극의 특징은 비극의 당사자인 주인공들이 어떠한 선택과 행위를 하든 비극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당사자들이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음을 이야기 한다. 모든 불행은 자신들이 했던 모든 선택과 행위에서 연유하며, 후에 이로 인한 책임에서(혹은 이러한 책임을 지우는 운명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한다.
아테네 비극 작품들의 이런 모습은 현실 정치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선택한 행위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부터 공동체에 속한 단순한 구성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적용된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 각자가 어떠한 방식으로건 결과에 대하여 자신들이 했던 선택과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선한 선택이든, 악한 선택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아테네의 비극에서는 이러한 정치에서의 책임의 중요성을 ‘극’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비극 작품을 쓴 작가들의 면모를 보면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아테네 도시 내에서 나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정치가들이었다. 비극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시민의 자율성을 형상화 했고, 이것을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통해 아테네의 시민들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로서 같은 의식을 반드시 공유함을 이야기 한다. 즉, 비극은 자유인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