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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2강. 헌정사
지난 시간 우리는 헌법의 주어, ‘대한국민’이 함의하고 있는 선언에 대해 배웠습니다. 헌법에서 대한국민들은 이 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되 절대적 지도자의 통치체제에서 탈출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로써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을 헌법 전문과 제1조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1조 2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선언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특수성을 등에 업고 독재를 시도하려는 이들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국가의 부재’, ‘지도자의 부재’, ‘나약한 정치’ 등이 많이 언급되는 요즘, 우리 대한국민에게 단호한 질문과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헌법은 한 국가 구성원들의 행동 지침이면서 동시에 그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담은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국민의 대다수는 헌법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단지, 낮은 시민의식 탓일까요? 스스로 대한국민임을 선언하는 것에서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차라리 독재자가 낫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금에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누가 헌법을 국민으로부터 격리시킨 걸까요?
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선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그동안 헌법과 그와 관련된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웃을 수 없는 해프닝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대통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제헌국회의원들은 의원내각제의 정치체제를 선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씨가 ‘그러면 나 안해’라고 한 거죠. 그때 이승만씨는 부정할 수 없는 실권자였기 때문에 제헌국회의원들은 ‘그럼 하지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 이런 내용을 추가하게 됩니다. ‘대통령은 4년으로 국회의원들이 선출한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뽑고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이 뽑는 이상한 모습이었지요. 이승만씨를 달래듯이 추가 된 내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시 국민들에게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지요. 제헌헌법에서 대통령은 선출은 국민들에 의하지 않지만 군사지휘권, 비상입법권한 등 국가를 좌우할 많은 권한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니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2년 후, 제헌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고 1950년, 한국 정치 역사에서는 사실상 최초의 선거가 실시됩니다. 국민들은 새로운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표를 주었습니다. 최초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바로 ‘새정치’였던 거지요. 그러나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국회 원구성을 다 마치기도 전에 6.25 남북전쟁이 발발하였고 제2대 국회는 무산되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중에 국회의원들은 어렵게 다시 모입니다. 그러나 일부는 죽고, 일부는 월북하는 등의 이유로 애초의 선거 결과와는 다른 원구성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52년 대통령 임기의 끝을 앞두고 정치권에는 의견 충돌이 생겼고 큰 정치투쟁이 발생합니다. 바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충돌이었지요. 당연히 이승만계는 대통령제를, 한민당계는 의원내각제를 주장했고 싸움 끝에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국민 직선제로 하고 상원의원을 두는 것으로 타협되어 개헌됩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의사가 첫 번째로 왜곡 된 사건입니다. 54년이 되어야 국가의 중대사항은 국민투표를 거쳐 가결되는 조항이 신설되지요.
이후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를 거치면서 헌법은 여러 차례 바뀝니다. 독재자들에게 헌법은자기 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놀이판일 뿐이었습니다. 4.19 혁명은 의거로 절하되고 5.16이 혁명으로 명시되는가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공화국을 건설한다며 자화자찬했습니다. 특히 헌법 제1장 총강을 보면 그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가 드러나곤 하는데요, 박정희씨는 제6조에 최초로 공무원을 언급합니다.
제6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2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유신헌법에서는 ‘국민의 주권은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해 행사된다.’, ‘국가의 존립에 위해될 때 국가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고, 총강 다음 제2장에는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싣는 것으로 대통령의 위상을 국민 위에 두게 됩니다. (참고로 현재 헌법에서 제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입니다.)
제5공화국 헌법, 전두환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의 개헌 내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문입니다. 먼저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말이 추가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요, 민족과 역사적 ‘사명’이 묶인다는 것은 대한국민의 개개인의 고유성 이전에 민족과 국가가 위치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국민들은을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아닌 국가에 귀속 된 대한민국 국민들(Nation)로만 호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눈여겨 볼 것은 전문 마지막 줄입니다.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1960년 6월 15일, 1962년 12월 26일, 1972년 12월 27일에 개정 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60년 6월 15일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62년 12월 26일과 1972년 12월 27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개정 된 헌법들입니다. 특히 72년은 유신헌법입니다. 이것들을 전문에 적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그만큼의 권위를 주는 것입니다. 정당성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정하겠다는 거지요.
이후 전두환 정권이 물러가고 87년 10월 29일 개정된 것이 현재의 헌법입니다.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사명으로 하며 자율과 조화의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삼고 있습니다. 헌정사를 ’8차에 걸쳐 개정‘되었다고 정리함으로써 독재정권의 역사를 수용할 것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국운 선생님은 과거 쓰신 글, ‘미완의 프로젝트-48년 체제와 대한민국’에서 ‘아직 우리 헌법은 미완된 프로젝트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48년 스스로들을 대한국민이라고 선언한 이래 너무 많은 사건들로 인해 그 선언을 충분히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국가는 민주화 등의 사건들을 통해 법치를 원칙으로 삼으며 헌법을 판결의 기초로 삼게 되었지만 국민들은 헌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의 격리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자가 자신이 쓴 책 내용을 다 까먹어 버리고, 저자라는 정체성까지 상실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늦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구태의연하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프로젝트가 완결될 있다는 가능성으로 기울고자 한다.’
선생님이 제시하신 48년 헌법에서 주목할 부분은 네 가지입니다.
1)민주공화국: 자치 공화국, 권력의 분산과 대표기관들의 협력과 견제.
2)경건한 세속국가: 각 개인은 국가에 선행하는 절대 불가침의 존재이다.
3)공영의 논리-역사적 조건에서: 공동체로써의 국가와 민주적 자유시장경제
4)헌법적 시민들의 희생: 헌법적 가치 실천을 통한 민주시민 재생산
*사견을 덧붙이자면 현 시대의 맥락상 여기서 쓰인 ‘희생’이라는 표현이 오해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엥, 왜 여기서 또 희생이 언급되지.”라는 생각이 본능처럼 들더군요. 열정페이, 국가적, 사회적인 개인희생권유 등의 이유로 요즘 ‘희생’은 알러지를 일으키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선생님이 사용하신 희생은 종교적 의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희생에 대해 저는 ‘타인을 위한 개인적 희생이 아닌 나를 포함한 공동체를 위한 실천, 훼방세력으로부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개인적 손실들이 발생하게 될 때 그것 또한 공동체의 것으로 수용될 수 있는 상태.’ 라고 이해해 보았습니다.
물론 48년 헌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헌법보다 진보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고 특히 공동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에 있어서 과감한 선언들이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베끼는 것이 아니라 48년 헌법을 당시 시대적 맥락과 함께 헌법을 쓴 마음을 헤아리며 읽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무상교육’에 대한 선언을 이렇게 읽는 것입니다.
“독재 제국들과 왕조에게 빼앗겼던 우리 대한국민들의 노동의 산물, 그들이 도망치며 버리고 간 이 재산들을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가? 우리들의 자유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까막눈 아이들을 위해 공동의 재산으로 사용하자. 의무교육은 ..... 무상으로 하자.”
‘법은 해석의 문제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교육에서 학습한 규칙은 절대적이며 타협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규칙을 해석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알게 됐던 겁니다. 이번 수업에서 저는 좋은 해석을 위해선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법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표면에 드러난 악의적 법 적용에 휘둘리지 말고 ‘실재’를 보아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하는 일들이라 자신은 없지만요..)
경계해야 할 오해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헌법을 공부한다는 게 국가의 충성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저는 국가라는 것이 추상적이면서 폭력적인 정치적 도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폭력들이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국가라는 경계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계를 위한 울타리라는 생각 또한 합니다. 전쟁과 난민, 북한 지원 정책 등의 뉴스를 접할 때면 인터넷에선 무의미해진 국경이 왜 현실에서, 특히 정치적으론 이렇게 계속 강조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국가에 선행하는 국민(People)의 개념으로 국가를 바라보면 그런 국가와 국경은 하나의 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그 공동체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방향성을 기록한 지도가 바로 헌법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