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포스트 민주주의] 제1강.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포스트 민주주의인가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를 함께 공부하는 김만권 선생님의 독서클럽 겨울학기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저자 콜린 크라우치 및 그의 저서 '포스트 민주주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함께 시작된 강의에서는 우선, '포스트'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알아 보고, '포스트 민주주의'의 배경과 현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포스트'의 개념은 아직 불명확 한 것으로 그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포스트'는 '포스트산업', '포스트모던'에서와 같은 용례로 사용되었다. 즉, 민주주의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민주주의가 가지는 특성은 그대로 보유한 채로 새로운 요소들이 도입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당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개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법치주의 간의 관계를 파악해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본래 Demos가 주인인 '정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매우 독특한 '체제', '시스템'이다. 반면, 자유주의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자유주의 사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정체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자신의 자유를 보장받는 방법으로 모든 이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평등'의 이념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의 결합은 매우 우연한 것이었다.
현재 '자유민주주의'의 용어는 '입헌민주주의'의 용어에 의해 대체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많은 경우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다수의 의사와 충돌한다. 이에 이러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기본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로 규정하여 전체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이를 보호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관계를 살펴보면, 민주주의가 반드시 법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법치는 인간이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화주의에서 파생된 것인데, 공화국에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굴종하지 않기 위하여 모두가 모여 만든 법에 자신을 종속시킨다.
이와 같이, 시스템으로서의 민주주의에 자유주의와 법치라는 공화주의적 아이디어가 결합한 것이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이다.
콜린 크라우치는 그의 저서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보장하는 권리와 권력을 대중이 행사하지 못하고 정치 에너지가 소수의 엘리트와 부유한 집단에게 회귀하는 포스트 민주주의의 권력공백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지구화'가 있다.
1980년대 이후의 지구화 현상은 이전에 비해 광범위하며 금융영역과 맞물려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자본과 기업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초국가기업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서와 환경을 형성하고자 한다. 정치인들 역시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는 국민/유권자들이 이에 대하여 불평은 하되 저항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 이유로 우선, 직업구조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이전의 산업사회에서는 육체 노동자 계급이 사회의 특권계급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주체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소비사회로 변화하면서 육체 노동자의 수가 급감하였고 이를 대체할 정치주체가 등장하지 않아 '정치주체의 공백'이 발생하였다. 신자유주의를 경험하면서 불평등과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게 된 것 역시 정치주체의 공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공백은 정치고문과 기업 로비스트로 이루어진 새로운 정치계급이 메우게 되었다.
계급구조가 무너지면서 이를 기반으로 했던 정당정치가 무너진 것 또한 포스트 민주주의의 배경이 된다. 정당은 더 이상 보통사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정당은 인기 정치인을 발굴하고 선전과 광고를 통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의 의사결정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유권자 집단은 정치의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소규모 엘리트들이 만들어 내는 신호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서양에서는 불평등을 경험한 청년세력이 이러한 현상에 맞서 새로운 정치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기업들은 초국가기업이 되었고 그들과 정치엘리트 간의 긴밀한 관계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포스트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은가? 크라우치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