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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9강. 안창호. -'≠?'
안창호는 이름은 무수히 들어왔으나, 아는 바는 기실 없는 인물이다. 내가 안창호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연관검색어 마냥 늘 따라붙는 '도산' 이란 호와, 교과서 늘 나오는 단정한 콧수염과 세련된 정장차림 신사의 사진 뿐이다. 그나마 누군가에게 들은 서북사투리가 심했으리란 말과 엮여져 '그거 좀 안 어울리는데.' 하다가는 사투리가 어때서란 핀잔에 스스로의 편견을 부끄러워했던 기억 정도 뿐이다.
정직히 말하자면 강의를 듣고난 지금도 그에 대해 잘 모르겠거니와, 그 이전에 그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가지도 않는다. 강의의 부제대로 그는 철저하게 '민족'과 결부된 삶으 살았다. 그것은 내게는 별 감흥을 자아내지 못하는 점이고, 보다 솔직해지자면 경계심과 불안감으로 채색된 혐오감을 이끌어낼 뿐이다.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
라는 말은 내 자신 그 당시 살았더라면 소극적인 체제순응자로라도 위험 대신 친일을 택했을 비루한 종자라서인지는 몰라도 이해할 수 없다.
우선 뒤엣 말은 왜 그것이 '민족'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밖에는 남기지 않는다. 닮아있는 듯 하나 근본적인 차이점에서 출발한 호세 마르티의 말에 감동했던 십대때부터의 기억에 붙들려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사람 이라도 고통받는 자가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편안히 잠자리에 들 권리 따위는 없다." 사실 안창호의 말이 내게는 훨씬 편한데 말이다. 호세 마르티의 말은 아직도 때때도 문득 드러눕기 전에 떠오르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도 있을 것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모든 일과 모든 이에 대한 죄책으로 나를 짓누른다. 그래봐야 잠에 들 것이고, 남기는 것은 싸구려 위선에 불과할 부채감 뿐이지만. 여하간에 비단 나 혼자 누리는 특별한 영광은 없는지라, 안창호의 말이 적당히 내게 신조삼기에는 편리하겠지만, 그 말은 내게 일말의 공명도 불러 일으키지를 못한다.
앞에 말은 마치 무솔리니의 말을 연상시킨다.
"국가를 떠나서는 인간과 영혼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차이인지, 차이가 존재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물론 역사에서 IF 를 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견을 가지고 속단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행인지 불행인지 안창호는 38년에 사망했다. 지극한 민족주의자였던 대부분의 임정 요인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정치의 공간에서 그들이 바라던 나라를 건설하지 못했고 그들의 신념을 유의미한 실재적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들의 신조가 어떤 결과를 배태했을지는 다행히도 증명되지 못했다.
비록 권력의 핵심에 거의 근접했던 철기께서 '파시즘이 뭐가 나쁜가. 개인주의에 찌들은 요즘 젊은이들이야 민족을 위한단 것에 질색을 하겠지만.' 란 희대의 명 망언을 당당히 남겨주셔 그들의 의식구조를 선명히 엿보게 해주긴 하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안창호 또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대공大公' 곧 민족을 위하여 온 국민의 생활이 공헌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립해 내세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극단적'이란 표현은 모호하여 무엇을 극단적이라 할지야 안창호의 속내에 달린 일이지만. 다행히도 우린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휘둘러질 전가보도인지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비록 안창호가 딱 잘라,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 전반의 이익이 우선해야 했다고는 했지만. 그의 대공은 어디까지나 민족이었던 것과 연계해 짐작할 수는 충분히 있겠지만.
어쨌든 안창호에게는 그런 전제 아래에서나마 민주적 토론과 공론의 중요성에 대한 존중이 있지 않은가? 안창호는 그것을 강조하지 않았나? 그러니 우리는 안창호를 믿고 신뢰해도 된다. 비록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결론이 전제되어 있는 하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이란 정권을 잡은 무정부주의자 같은 소리지만. 물론 다르긴 하겠다.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얼마나 기꺼이 얼마나 한 개인을 사회에 제물로 바쳐야 하는가, 정도라도 정할 수 있으니까. 팔 하나를 제단에 잘라 올리면 될지, 자비롭게 손가락 하나 그냥 끊어 바치면 될지, 아니면 심장까지 꺼내어 올릴지. 물론 한 개인의 감히 희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절대 없겠지만.
그의 포용력의 상징 대공주의. 요컨데 대공을 위한 좌우익의 화합과 단결. 그 대공은 다른 어떤 가치나 정의가 아니라 오직 민족이지만. 이미 우익의 관념인 '민족'을 논의가 허용되지 않는 '대공'의 상위차원으로 올리고 그 아래 좌우를 뭉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비록 민족이 전제이자, 기반으로서 민족의 힘을 키우기 위한 응집의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전락시켜 활용한다는, 근본적 세계관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가 영 껄끄럽지만 넘어가자.
비록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당시 독일 지역에서 활동하던 이들 중에 슈트라서 형제가 있지만. 그들이 당내 좌파로서 그런 방향으로 이끌고자 애썼던 당이 비록 민족사회주의노동자당이지만. 그 당을 통칭 나치라고 부르지만.
'특수 계급에 좌우되지 않는' '민중 혁명' 의 고아함이 있지 않은가. 비록 같은 맥락으로 계급이 아닌 전민에 기반한 대중혁명을 줄기차게 주장하던 에른스트 룀이 있지만. 비록 그의 소속정당은 슈트라서 형제와 같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대표하던 조직이 SA, 통칭 돌격대이지만.
넘어가자. 넘어가자. 38년에 죽은 안창호이고, 그의 이념을 계승한 자들이 권력을 잡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 이루어져 검증된 적 없는 일들이다.
다만 그리하여 민족주의를 떼어놓고 난다면 안창호에 대해 말할 것은 없다. 그의 활동이 그렇고 사상이 그렇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앞서와 같은 불길함의 그림자밖는 드리워지지 않는다. 하여 나는 더 이상 그에 대해 논할 길이 없거니와, 살펴볼 용기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민족운동가들의 대다수들이 흔히 그렇듯이.
p.s.
분명히 안창호는 민족을 내세우고 사회 전반의 이익을 우선하긴 했으나 그의 훌륭한 공언들에서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았다. 비록 민족과 국가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하겠지만, 그러고나면 남은 영역에서는 '자유'를 약속했으니 결코 파시즘과는 다른 것이다. 절대. 틀림없이.
"The Fascist State organizes the nation, but leaves a sufficient margin of liberty to the individual; the latter is deprived of all useless and possibly harmful freedom, but retains what is essential; the deciding power in this question cannot be the individual, but the State alone"
-Benito Mussolini: What is Fascism, 1932
"파시스트들은 국가를 조직할 것이나, 개인에게 충분한 자유를 남길 것이다. 후자에는 모든 무익하고 해로운 자유들이 제해질 것이나, 본질적인 것들은 보전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 결정권자는 개인일 수 없으며, 오직 국가 뿐이다."
-베니토 무솔리니 :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1932
<중용>에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수신을 먼저 완성하고 난 다음에 제가를 하고, 그런 뒤에 치국을 하고, 그런 뒤에 평천하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뜻입니다. 지금 일본이 사악한 짓을 해서 조선이 위기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조선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지요. 그런데 만일 상황이 바뀌어서 조선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고 칩시다. 그럼 안창호 선생 같은 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침략 행위를 규탄해야지요.
그런 마음가짐을 “단 한 사람이라도 고통받는 자가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편안히 잠자리에 들 권리 따위는 없다”라고 하는 대신 ‘우환의식’이라고 했습니다. 들어보셨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우환의식을 지녔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하려고 격물치지성의정심하는 사람이라 해도, 강도가 집에 들어와서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강간하고 재산을 약탈해가려고 한다면 그 강도를 물리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세계평화를 주장하지 않고 강도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입니까?
식민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추구했고,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끔찍한 폭력을 썼지요. 그런 사람을 우리는 ‘깡패’라고 부릅니다. 그게 국가라면 ‘깡패 국가’이겠지요. 그런 깡패짓(파시즘)과 그걸 막는 행위(독립운동)가 똑같습니까? 말하자면 식민주의 국가들은 “똘똘 뭉쳐서 강도질하자!”라고 주장했고, 안창호 선생은 “똘똘 뭉쳐서 강도질 막자!”라고 주장한 셈인데, 이게 어떻게 똑같습니까?
p.s.
문동욱 선생이 그토록 비난하는 근대 국가 사상, 그러니까 각 개인은 국가 단위로 똘똘 뭉쳐서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사상은 식민주의 국가들이 만든 겁니다. 반면 조선 사람들은 그런 사상을 춘추전국시대에나 존재했다가 사라진 야만적인 사상으로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