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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8강. 진독수. -불꽃.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강좌의 여덟번째 강의는 '천두슈(진독수)'를 만나보았습니다.
강의 후기 정리는 자원활동가 문동욱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주-
조직이나 단체가 이름을 정할 때에는 적어도 그들 나름대로라도 그 본의에 가장 걸맞는 것을 심사숙고하여 골라 정하기 마련이다. 물론 때때로 A와 B가 단지 기계적 통합을 하여 AB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경악스럽도록 저열한 일도 일어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 논할 가치조차 없는 대상이니 젖혀둔다.
언론이나 기관지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경우라면 그렇다. 민족정론지를 자칭하며 시작된 조선일보가 그렇고, 남북 평화와 하나된 민중의 표방에서 출발한 -그리고 '우리'말 애호도- 한겨례가 그러며, 시민에 의한 시민의 언론을 칭하는 오마이 뉴스가 그렇다. 외국과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인본주의를 표방한 프랑스의 '뤼마니테' 나치 기관지이던 '민족의 감시자'와 '돌진' 이 그렇다. 마찬가지가 소련의 관영 기관지이던 '프라우다'와 '이스크라' 이다. 너무 거대한 소련 정권의 관영기관지로서만 인식되서 문제이지, 그 두개는 본래 혁명조직의 것으로 탄생하였다. 그런만큼 프라우다와 이스크라는 그들의 사명과 각오를 담고 있다. 그들 세계관의 근간인 계급주의적 입장에서 고찰과 계급의식 각성을 위한 '진실' (프라우다) , 그리고 혁명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불꽃'(이스크라). 그것은 집권 이전 소수 혁명가 집단이던 사회주의자들의 나아가고 살아갈 방식에 대한 맹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와 직접 관련되지는 않으나, 결국에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인 때문일까. 아니면 바로 그러한 기질의 귀결로 공산주의자 그 중에서도 끝내 좌익 반대파에 이른 것일까. 진독수는 철저하게 그 자신의 의지로 집요하도록 진실을 쫓으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당대인들과 구별되는 그의 유학 이력부터가 그렇다. 도피성 혹은 그럴듯한 학위를 얻는 대신에 산만하도록 다만 수개월 필요를 느낀 학문을 공부하다 사회문제 역사적 흐름과 사건을 마주하면 미련없이 귀국하여 이에 투신하기를 반복한다. 결국 대다수의 잘나빠진 이른바 신지식인들과 달리 그는 그의 부귀영달을 보증해줄 학력도 이력도 뚜렷히 갖지 못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사유와 경험을 통해 직접 도달하고 한편으로 끝도 없이 변화해간 사상 뿐이다. 누구도 배신 한 적 없고 어떤 영달이나 기회주의적 처신과도 무관한 그의 변화는 변절이라 부를 수 없다. 그에 있는 것은 끝도 없는 고민 뿐이다.
인민에게 국가는 왜 필요한가? 그에 합당한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을 건설하기 위해 새 세대는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학, 그보다도 언어는 어떻게 정제되어야 하는가? 이런 끝도 없는 고민을 개진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한편으로, 시대적 흐름에 바쁘게 뛰어들었던 그는 마침내 하나의 답이던 공산주의에 이르러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초대 중앙 총서기가 된다.
이에서 사상의 궤적이 종국에 이르는 자들도 많다. 그러나 그의 불꽃은 아직도 심지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코민테른과 모스크바로 대표되는 국제 공산주의의 교조적 지시에 대한 반발과 의구의 결과는 직의 상실이었으며, 그 자신이 만든 중국공산당에서의 출당이었다. 진독수는 당내 독재, 관료주의, 일방적 지시자로 변한 프롤레타리아 제구궂의를 느낀 순간 마침내 이에서 돌아섰다. 그가 걸어간 길은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또한 걷는 길이었으며 때문에 트로츠키주의로 폄하되고 있는 좌익반대파의 길이었다. 당내 민주주의, 민중 여론의 반영, 노동자 국가에서 실제적인 노동자와 당간부-국가관료의 관계 등.
여하간에 결국은 좌익이기에 국민당에 의해 체포된 그는 재판에서 망설임 없이 신념을 드러내고 그에 따라 투옥되었다. 실제적 행위와 무관히, 단지 사상과 신조로 이루어진 감금에서 양심수 정치범이라면 응당 받을만한 성원과 탄원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져 마침내 그는 석방되었다. 이후 그를 짓밟은 국민-공산 양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을 반제 반파쇼 투쟁의 대승적 차원에서 축성하고 지지하는 한편, 그 자신의 신조와 고귀한 자존심으로 이 모든 것을 꺽는 대신에 양당의 회유를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는 끝내 진독수는 마침내 고립무원의, 하지만 철저하게 오롯이 자존하는 한 사상가로서 여생을 보내다 생을 마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천착한 문제는 인권 및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 원칙,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였다.
그의 일생을 통틀어 그는 숨가쁘도록 달렸으며, 고민을 멈추지 않았고 무언가와 누군가를 추종하는 대신에 스스로의 사유로 나름의 답을 찾아 쫓았다. 그 결과 무엇에 적이 된다 해도 머뭇거리지 않았고 숙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감수하는 동시에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는 진실을 위해 불꽃처럼 살았다. 가장 고결한 인간 정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삶의 궤적을 남긴 몇 안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의 모든 단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진정되기 이를데 없던 불꽃이었던 것은 부정될 수 없다. 여전히 그를 우경분자로서 -비록 '착오'로 감면해 주었어도- 규정하며 아직도 완전히 복권시키지 않은 중국공산당에서조차 그러하다. 당의 공식 선전물인 영화 건당위업에서 표현되는 진독수는 그야말로 영웅적인 투사에 다름아니다. 일방적으로 추앙되길 요구하는 이른바 위대함은 반드시 검증받고 난도질 당해야 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그럴 대상이 아니다. 진독수가, 아니 그 이름을 지닌 한 인간이 살아간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듣는 소리는 딱 두 종류다. 혹자들은 그것을 진영으로 나누려고 하는데 다르다. 이른바 민주화니 산업화니 하는 것보다는 개개인 퍼스낼러티에 따라 갈릴 뿐이지 대동소이하다. 결론도 같다. 한쪽에서는 질타한다. 무기력하다, 흐리멍텅하다, 고민이 없다, 열정이 없다, 왜 우리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가, 왜 우리처럼 처절히 투쟁하지 않고 이 좋은 여건에서 비관주의에나 사로잡혀 있는가. 다른 한쪽은 참 너그럽기도 하다. 모든 것을 이해해주신단다. 힐링을 해주시겠단다. 그 너른 품안에 잠시 안겨 쓰다듬을 받으랜다.
어느쪽이든지간에 결론은 같다. 여하튼 그들은 다 겪어보았고 해보았는데, 다 풀릴 것이란다. 그리고나면 그들은 할만큼 했기에 때가 지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네가 바톤을 이어받아 분골쇄신 할 차례라 떠민다. 너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미래는 너희의 것이다. ....그러니 좀 잘 좀 해봐라 쫌. 결국에 모든 것의 저변에 담겨있는 그 마지막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바보는 청년 중 아무도 없다.
1919년 6월 8일. 진독수는 '연구실과 감옥'이란 글을 매주평론에 기고하였다. 연구실에 들어가는 (당대 중국에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과 감옥에 가는 (현실 정치와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청년들의 인생에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청년들에 대한 요구이자 응원이며 진타였다. 흔한 말이었다. 그리고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진독수는 그런 말을 하며 지휘봉, 아니 그보다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말채찍을 멋지게 휘두를만한 입장에 있었으니 말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중년이었고, 북경대학 문과대학 학장까지 역임하였으며, 잡지 '신청년' 발간으로 대표되듯 청년운동의 창시자이자 주창자였으며, 호적과 함께 백화문 보급을 통한 문학혁명의 첨병에 서있었으며, 그 전달에 있었던 중국 현대사의 최대 사건 5.4운동에 참여한 정신적 지주로서 대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가 이미 그와 같은 많은 위업들을 통해 당대에 가장 명망 높은 지식인었으니 말이다. 그는 기꺼이 명령하고 훈계할 법 했다.
그런 진독수는 기고 바로 다음날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북양군벌에 반대하는 '북경시민선언'을 발표하고, 이틀 후인 6월 11일 시내에서 그 전단 인쇄물들을 홀로 직접 뿌려 베포하다 체포되어 구속되어 청년들에게 말하던대로, 연구실을 거쳐 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한마디를 남들에게 뱉고나면 스스로가 그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간 자였다. 누구도 그를 찾으려면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최선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쫓아야 하는.
진독수가 아름답노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