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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제5강 불평등은 왜 위험한가
김만권 선생님의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다섯 번째 강의에서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토대로,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동안 '세계화가 만들어 내는 불평등의 세 가지 얼굴(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공부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불평등을 경험한 중산층들이 민주주의에 환멸을 느껴 정치에서 멀어지고 그 결과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강의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는 경제위기 이후 회복이 찾아오지 않는 불행한 시기에 살고 있다. 즉,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는 중대한 결함이 내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시스템이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게임의 규칙이 상위 1%에 의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투표를 시민의 의무, '시민적 덕목'이라 여기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투표에 참여한다. 이러한 시민적 덕목은 정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러한 신뢰가 깨지게 되면 사람들은 시민적 덕목을 벗어 던지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거나 이탈하거나 그보다 더 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부유층은 이러한 현상을 환영한다. 투표자들이 정치에서 멀어져 그들을 투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할수록 부유층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유층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의 환멸감은 더욱 거세지고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비용은 더욱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정치는 협력의 과정이며 불신을 신뢰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자본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신뢰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치 및 경제 전반에 있어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신뢰를 밑천으로 하는 금융부문에서의 신뢰가 붕괴되면서 그 파급효과가 곳곳에 스며들었고 사람들이 경제 및 정치 시스템에 가지는 환멸도 강해졌다. 이러한 불신과 환멸은 신뢰와 사회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위기를 가져온다.
이러한 환멸이 증폭되는 가운데, 상위1%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상위 계층이 그들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언론사를 매입, 지배하고 관념시장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의 정치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에 제공되는 정보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진다.
엘리트 계층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투표가 이루어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에 교묘한 방법으로 투표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들을 벌인다.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하게 되면, 유권자들의 의견이 무시되기 쉽고, 모든 유권자가 효과적으로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깨지는 것을 보며 정치 시스템에 대한 환멸감이 강화되어 그만큼 선거가 금권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험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중산층이 정치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 정치의 장으로 끌어오기 어렵고 부유층은 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즉, 양극화와 불평등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이 두 세력은 민주주의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반면, 중산층은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가지는 의미, 법치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계층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중산층이 공동화하고 있고, 남아있는 중산층마저 자신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 정치 시스템에 강한 환멸을 가진 채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Occupy Wall Street나 최근 미국 중산층 백인 젊은이를 중심으로 번진 버니 샌더스 열풍은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 폴 크루그먼은 "소득의 과도한 집중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미국 내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은 이미 전 지구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화와 함께 금융시장의 힘이 강해지면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조세제도를 제약하고 이는 곧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이 된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또 다른 세계를 이룰 수 있으며 세계화를 길들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빠져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