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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6강. 송미령. - '권력. 여성.'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강좌의 여섯번째 강의는 '쏭메이링(송미령)'을 만나보았습니다.
강의 후기 정리는 자원활동가 문동욱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2007년에 나와 제법 팔려나가고 서점의 진열대들을 매우던 책이다. 당당함을 뿜어내는 만큼이나 고압적으로 강제적인 책 제목이지만 생각해보면 한심스럽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 지금에 힐러리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한번 치루고, 국무장관을 역임하였으며 다시 미국의 유력한 대권후보이다. 그러나 07년에는? 그녀가 대선 후보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였다. 허나 그때까지 그녀는? 검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기억하다시피 그녀는 영부이인었으며 그게 전부였다. 물론 그녀가 단순히 빌 클린턴의 아내가 아니라,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동지적 존재였으며 정치적 지혜를 지녔으리라고는 모두들 모두들 여기고 있던 바다. 그렇지만 애초에 그 모든 것의 근원이 합당했던가?
어떤 공직도 아니고, 단지 선출된 대통령의 아내이기에, 그리고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지니는 영향력이 과연 합당하고 용인될 수 있는가? 그것이 정당한가? 그녀는 대통령이 공적으로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공적으로 나눠가지는 -부여받는- 공직자조차도 아니었다. 그녀는 대통령이 된 빌이란 한 남자의 아내,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 권력의 뿌리를 내린 존재였다. 원칙적으로 그것은 슬어버린 녹에 다름 아니다. 미국이 폐쇄적인 사회라 여성에게 그런 식 외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참작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녀 이전의 여성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백악관에서 당당한 전문가, 안보보좌관으로 시작되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기실 책이 나올때까지의 힐러리는 권력과 명성을 최악의 방식으로 누리던 여성에 불과했다. 그런대도 책 제목이 그리 역겹도록 오만방자한 것은 저자들도, 받아들일 소비자들도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권력과 여자는 그런식으로 밖에 연결되지 않았으리라. '여자'란 그들에게 그런 존재에 불과했을테니.
송미령은 장개석의 아내로서, 악의적인 비아냥 담긴 표현대로,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딱 들어맞게도 '권력을 사랑한 여인'이었다. 애초에 세상에 권력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친목모임 술자리 대화라도 화제와 흐름을 자기 바랄대로 이끌고 싶기 마련인데. 여하간 그로써 송미령에게 덧씌워진 것은 유구한 중국사의 전통에 따른 '정치적 악녀'의 표상이다.
그것은 군주를 환락에 이끄는 미색, 이른바 경국지색으로 꼽히는 서시 달기 양귀비와는 전혀 다른 증오의 대상이다. 한 고조의 아내 여후(여치), 당고종의 황후이자 후에 스스로 성신황제에 올랐던 -말년에 그 자리를 유지 못하고 끌어내려진- 무측천, 청 함풍제의 아내이자 동치-광서 연간에 섭정으로 권력을 행사한 자희태후 즉 서태후. 송미령은 신중국의 황제나 다름없는 장개석의 아내로서, 후에 그 자리를 얻는 모택동의 아내인 강청과 함께 이 이미지의 마지막 계보를 잇는다.
강청만은 다르긴 하다. 그녀는 매도당했다기에는 실제로 저열한 악인이었고 동정이나 재평가의 여지는 없으니까. 그러나 스스로 말한대로 그녀는 모택동의 개에 불과했다. 그가 짖으란 상대에게 짖었고 물란 상대를 물었다. 그의 의중을 벗어나서는 아무 힘이 없었다. 그리고는 힘의 근원이 되던 모택동의 사망 직후, 그리 기세등등히 문화대혁명 내내 날뛰던 사인방의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눈깜짝할 사이에 권력을 상실하고 숙청당할 뿐인 존재였다. 그녀는 타인의 도구에 불과했고, 그에서 알량한 권위에 취해있던 역사의 작은 벌레에 불과했다. 민자영을 미화하는 것이 우스운만큼 그녀에게 망국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강청도 마찬가지다. 강청이나 민자영이나 영사적 가치와 의의는 전혀 없는, 부정적인 영향조차 미칠 수 없는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이였으니까.
그러나 이른바 '정치적 악녀'들의 실체는 그와 조금 다르다. 그들은 혹독하고 냉정했으며 때때로 잔인했다. 그러나 그건 정치적 투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모두가 보이는 특성일 뿐이다. 그들이 여성이었기에 반발이 거세어 많은 피를 보았을 수는 있지만 그녀들이 여자이기에 잔인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한 개인으로서 그런 장벽들을 으깨어버리도록 권력의지가 강하고 지독한 성미들이었던 개인들은 맞지만, 그건 그녀이기 이전에 그 사람들의 퍼스낼러티일 뿐이다. 정치적 악녀들의 신화는 결국 그 정도 인간이 아니고서는 여자는 정치와 권력에 닿을 수 없던 시대와 환경의 적자일 뿐이다.
그러고나면 여후의 치세는 그녀에 부정적이전 사마천마저 인정하도록 '백성의 삶은 평안했다'. 무측천의 시대는 곧 중국인들이 그리 자랑스러워하던 성당기이며 노년의 그녀를 황제에서 끌어내린 복고파조차도 황실의 큰 어른으로 모셔야 하도록 그녀는 권위를 지니고 존경을 받던 존재였다. 서태후. 무수한 날조와 매도의 신화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제국의 구심점이었으며, 때문에 중국이 해체되지 않고 그로써 인도처럼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되는 것을 피했음은, 그리고 조작과 모욕이 이루어지기전까지 그녀가 인민들에게 경애받던 '노불야' 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연 송미령은 어떨까. 그것이 궁금하던 터였고 아는 바가 없었기에 기다렸던 강의였으나 아쉽기 그지없다. 솔직히 아직도 평을 할만한 여지조차 찾기가 어렵다. 그녀의 삶이 어쩔 수 없이 중국의 현대사 전체와 얽혀져 있다. 그리고 중국 전체와 국제정세까지 뒤얽힌 그 무대에서 송미령의 역할과 비중은 집어내기 어렵다. 애초에 그녀의 영향력은 결국 비공개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분에서 더욱 크니. 정적들마저 인정한 그녀의 명민함, 지식, 어학능력과 서양 사회에 익숙함은 장개석에게 큰 조력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 조언은 물론, 외국과의 협상에서도 그렇고 더더욱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리라. 하지만 도리어 장개석과 국민당의 한 하위에 불과해, 그녀의 주도적인 업적이라 할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녀는 그 전체에서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권력을 만끽하며 살았겠지만, 후대인인 나로서는 그녀에 대해 추론해볼만한 근거가 없다. 전설이 된 그녀의 명민함을 보여줄만한 결정이 그녀의 이름으로 난 적부터 없지 않은가. 그녀는 거대한 역사적 존재들의 일부이고 그림자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중국 현대아세, 아시아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1936년 서안사변이다. 시계에서 가장 크고 많으며 일체감을 지닌 4억 인구가 일치항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장개석은 반쯤은 떠밀리듯 노구교 사건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일본에 맞섰고, 중국은 4년간 일본제국과 홀로 전쟁을 벌였다. 그 4년이 흐르고나서야 미국은 이미 지치고 한계에 이르러가는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태평양전쟁을 승리해 그 힘을 제거했다.
송미령이 없었다면? 남경정권은 서안에서 체포된 장개석을 기꺼이 희생시키고 장학량 동북군-양호성 서북군-중공 홍군과의 내전을 벌였으리라. 장개석의 빈자리를 놓고 왕정위 이종인 풍옥상 하응흠 호종남 손과 송자문 공상희 등이 다투기에 바쁘고, 용운 염석산 서북삼마들은 할거했으리라. 국민당은 분열되고 혼란에 빠진 중국의 각부는 각기 일본에 공순하여 삼켜졌으리라. 미국은 홀로 큰 부담을 무릅쓰는 대신, 전격적으로 아시아에 수립된 거대한 제국을 인정했으리라. 허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천황제 군국주의의 보다 짙은 그림자 아래 놓여지고, 세계는 그 위험하고 강력한 존재를 경계하면서도 방관하고 인정했으리라.
서안사변의 수습에서, 장개석의 유고상황에서 송미령은 유일하게 그녀가 전면에 나서 주도적으로 일을 치뤘고 국민당과 중국, 아시아와 세계를 구했다. ...근데 그게 겨우 장학량과의 로맨스로 해석되다니. 트라비아에 불과할 것이 주가 되면 우스울 따름이다. 이로써 중국 현대사 최대의 사건은 단지 한 여자와 그녀의 전 애인과 현 남편의 문제로 전락할 뿐이다. 그런식으로 되면, 장경국이 계엄해제를 비롯한 국민당의 개혁 및 체제이완을 이끈 것도 생략되면서 장새석 사후 권력투쟁도 단지 집안 서열의 일에 불과하게 된다. 국민당 신구파의 갈등은 사라지고, 적장자가 아내에게 승리하는 일에 불과하게 된다.
장개석의 수년에 걸친 구애를 받아들인 시점이 그가 중국의 제1인자가 되고나서야인 것과, 그의 사후 국민당 당권 장악 투쟁에 나섰던 것으로 송미령이 권력을 사랑했음이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말했듯이 그건 그녀뿐 아니라 누구나 어느 정도는 대게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그 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이나, 그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해볼만한 것이 여전히 없다. 강의를 통해서도 그녀는 결국 권력을 사랑한 '여인'으로서만이 그려져 기억되고 있을뿐임이 새삼 확인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