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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1강. 손문. -국부.영웅. 그 신화.
쑨원. 손문. 중화인민공화국가 중화민국, 세계 각지의 화예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국부. 중화'민족'의 아버지.
역사는 신화의 타파와 신화에서의 탈피로 탄생하였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이유는 그의 저작이 지니는 무수한 장점들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최로로 신이 행사하는 권능과 섭리가 아닌, 인간 행위와 의지의 소산으로 역사를 정리하였다. 그것은 단지 과거사의 문제가 아닌, 그 연원의 결과인 현재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인간에 의한 것은 신성불가침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현재는 과거에 전적으로 속박될 이유가 없으며 미지의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학의 대전제이자 근본적인 본질은 근대 이른바 '민족' 국가의 시대에 이르러 변질되고 퇴화했으며 타락했다. 역사는 유사신화로 전락했다. 기간테스로 대표되는 초자연적 거대한 힘의 존재는 '민족' 이 대체했다. 수천년동안 동질적이며 응집된 단일체라는, 마치 단순한 당구공과 같아 이리저리 움직일 뿐 본질엔 흔들림이 없는 단단한 존재로. 그리고 그 행로를 결정하는 큐대는 신이 아닌 영도자, 곧 영웅에게 들려있는 모습으로.
아예 멸망은 할지언정 그 순수성과 단일성은 결코 변함이 없다는 민족. 그것을 이끌 완전무결한, 감히 비판될 수 없는 영웅, 아니 성웅들. 이로써 역사는 존경 받아야만 하는 선대의 위대한 고락의 여정을 마냥 찬미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전락했다.
손문. 바로 이런 류의 '근대' 로의 진입과 '민족' 국가 수립에 초조히 안달내던 아시아의 근대가 최초로 창조한 성웅. 그러나 과연 그는 무오하고 완전무결할까. 아니 애초에 그럴 수 있을까.
그의 다사다난한 인생역정의 정리는 생략한다. 본 강의에서 9인 중 제일 유명하고 중국근대사와 결부되어 있는, 아니 그 자체로 다루어지는 터이니까. 그래도 골자만 꼽자면 청 말기 혁명파 중 한 사람으로 무수한 봉기와 실패 끝에, 신해혁명 당시 대총통으로 추대되어 민국시대의 첫 막을 연 사람. 혼란이 이어진 민국시대에 국민당을 창당하고 공산당을 포용하여 국내의 제세력을 통합해 하나된 중국을 이루고자 분투한 사람. 삼민주의라는, 독자적인 대원칙을 세워 민족의 길을 열고자 했던 사람.
무수한 봉기 실패는 불굴의 의지와 함께 치명적인 무능력을 보여준다. 그 어떤 정세에도 절망치 않는 모습은 극도의 안이한 낙관주의이기도 하다. 정치적 유연성은 무원칙 무정견의 기회주의자적 속성이기도 하다. 넘쳐흐르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은 독선과 오만이자 메시아 증후군적 자아도취의 광기이기도 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엘리트주의자인 것과 마찬가지 맥락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손문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의 흠결을 찾아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역사에서 실수 속에서 배울 점은 찾아도 단점 그 자체에서 배울 것은 없으니까. 문제는 위에 같은 쌍짓기가 허용조차 되지 않는 존재가 영웅이며 국부라는 것이다.
강사님께서 전해주셨듯이 몇몇 부분에서 그의 도의적 무책임을 비롯한 인격적 결함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 역시 한명의 인간인 이상 당연하다. 그 자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허나 그런 그의 한계에 대한 연구 자체가 일본 등 타자에 의해서만 가당하단 것, 중국이든 대만이든 그러한 평가 자체를 용납치 않는다는 것이 다시 관건이다. 그리고 손문의 위업 아래에서 짓눌려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상징되는 숨길 수 없는 실패로 차라리 모택동은 역사의 존재가 되었다. 공7과3. 비록 그 배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등소평의 그 단언으로 모택동은 공과를 모두 지닌 인간으로 공식적으로 남았다. 반면에 손문은 가히 전지전능하시고 무오하시며 온저하신 지고의 존재가 되어 민족의 신전에 올라서셨도다. 감히 무엇 때문에 사유다 필요하겠는가. 손문의 존재 자체가 건전한 이성과 사고의 한 부분을 거세해낸다. 영웅이란, 국부란 본질적으로 그런 존재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날 다시금 우리 사회는 '국부' 와 영웅에 목말라 하고 있다. '국부' 란 특정단어 때문에 특정인이나 성향의 사람들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차라리 어차피 진영전의 논리로 따지면 속해있는 쪽을 돌아보며 떠들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지만, 4자필승론은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논리였다는 개인 사견을 꺼내드는 순간 특정지방 죽이기란 소리를 듣는다. 인간으로서 가장 좋아하던 정치인이자 대통령이지만 그가 결국 한 건 도무지 정치가 못 되었다 라는 감상에 졸지에 벌레가 되어버린다. 혹자들은 또한 숨만 쉬고 있으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어떤 닥터께서 백마 탄 초인 마냥 여야의 '구태' -그 기준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를 쓸어버리고 새로운 정치 -마찬가지로 그 내용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를 해주리라 확신한다. 혹자들은 어디 시장의 어변 전투적으로 화려한 트윗에 열광한다. 혹자들은 인권문제를 일시적으로 행위에 대한 찬반의 문제로 전락시킨, 그로써 이제는 흔한 정치논리에 따르며 원칙을 딱히 초지일관 지키지도 않는, 자리에 따라 말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어떤 시장을 직업정치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평가했단 이유만으로 자칭 어버이들과 함께 하는 작자로 몰아간다.
각지에 신성불가침하고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 오직 찬미의 대상인 영웅과 신화가 가득 차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총천연색 위대함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어정쩡한 자칭 탈근대는 호언장담하던대로 신화를 해체하는 대신에 본능적으로 그 양식을 조잡스레 본뜬 수십 수백개의 파편적 신화를 양성해냈을 뿐이다.
아시아 근대에서부터 역사학에, 그로써 현실을 보는 눈을 다시금 신화시대로 이끌어버린 첫 존재 손문. 그의 일생보다도 사후에 추승이 아시아를 이 지옥같은 '근대' 로 '만든' 것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손문이 '우리'의 영웅은 아니기에 평가가 자유로운 덕분에 제약이 없었던 이번 강의를 통해서 영웅숭배란 끔찍한 현상 자체의 해소의 실마리가 보인 듯도 하다.
우상숭배를 끝내는 법은 나무토박이나 돌조각이란 본질을 기억하는 것이다. 영웅숭배를 끝내는 시작도 다를 바 없다. 그는 한명의 인간에 불과하단 자명한 본질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울점이 없다라고 하거나 인간적인 결함을 찾아내는데 매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수한 단점과 한계들을 직시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신을 다한 누군가들이 도리어 우리와 동떨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배우고 닮을 대상이 될 수 있음도 자명할 뿐이다. 신화를 벗어나서 역사가 가지는 참된 가치와 의의는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 우선은 장점과 단점, 악덕과 미덕, 선과 악, 단순한 호불호와 기질가지 그 모두를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자기대로 갖춘었을 뿐인 한 인간으로써 다만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과도한 기대도 사명감 어린 비판의식도 잠시 내려놓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