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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시민연극단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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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시민연극단 첫 번째 이야기
주은경(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원장)
“지금도 실감나지 않아요. 그저 살아만 있으면 좋겠어요. 살아만 있으면.”(건이 엄마)
“그날 이후 결혼식 같은 곳엔 갈 수가 없어요. 지인들이 저를 보면 난처해해요.”(지성이 아버지)
참여연대 아카데미 시민연극단은 <기억을 기억하라>를 대학로 혜화당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어떤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그 시작을 위해 우리는 어제 416 안산순례 “기억과 약속의 길”에 다녀왔다.
현장의 힘은 강력하다. 순례의 순서는 세월호 기억 전시관 - 단원고 학생들의 교실 - 분향소와 유가족과의 대화.
첫 번째 공간 세월호 기억전시관은 아름다운 재단이 장소를 후원하고, 인테리어 등을 자원활동으로 지원받아 만든 기록의 장소다. 벽에는 아이들의 방 사진들이, 천장에는 아이들을 기념하는 등 250개를 달았다. 가운데엔 이불이 쌓여 있다. 진도체육관에서 사용했던 이불들을 가져온 것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살아 있는 부모에게 죽은 아이들의 방은 아이의 숨결이자 존재다. 그러나 그 공간은 하나둘 사라져간다. 계약기간이 끝나서 이사를 해야 하고. 이사를 하고도 부모는 아이와 함께 살던 옛집을 찾아와 서성인다. 아이의 방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 속에만 존재할지 모른다.
두 번째 공간 단원고. 교실마다 아이들의 자리가 하나의 분향소다. 2학년이었던 아이들의 교실은 3학년 교실로 옮겨져 있다.
후배와 친구들은 이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노트에 담아 두고 있다. 같은 서클의 후배가 오빠에게 쓴 편지, 교회에 함께 다녔던 어른의 노트글... “그때 못한 말 지금해요....” 그리고 아이들의 책상위엔 유난히 <허니 버터칩>이 많이 올려져 있다. 허니버터칩으로 연결되는 마음이 뭘까? 먹먹하다.
편지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너를 몰라. 하지만 만약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 부모님도 너희 부모처럼 열심히 싸웠을 거야. 난 너희 부모님들을 존경해...”
고통은 가족들의 생명력을 박탈한다. 기억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엄마와 아버지. 눈에 띄게 늙고, 시력이 나빠졌다. 희생자 아이의 누나는 대학에 가서, 자신이 세월호 유가족임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남자 동생은 분노조절이 어려워 욕을 퍼부었다가 영문을 모르는 친구에게 묵사발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생존자 아이들의 3학년 교실. 애써 고통을 참고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너희들 노는 애라서 갑판위에 나와 있었다며?” 등 상처 주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고... 있다니. 폭력은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기억을 둘러싼 대립은 단원고 교실에서도 진행 중이다. 내년 3학년을 위해 교실을 비워달라는 학교측과 절대 안 된다는 유가족의 입장. 416 이후 진상규명과 기억과 관련에 대해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 이 상황은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세 번째 공간은 단원고를 나와서 20분 거리의 분향소. 부끄럽지만 나는 안산분향소는 처음이다. 304개의 영정, 그곳의 250명의 아이들과 12명의 선생님. 영정 앞에도 단원고 교실처럼 역시 고인에게 보내는 글들이 수북하다. 아이의 친구가 보낸 편지, 또 그 친구의 친구가 쓴 편지... 모두가 기억의 옷자락을 움켜잡고 있는 손길이다.
분향소 앞 유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건이 엄마와 지성 아버지, 그리고 순례의 길을 함께한 수녀님들과 함께 한 대화의 시간. 이곳에 파견 나와 1년여를 유가족과 함께 했던 수녀님은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난 4월, 가톨릭 수원교구 신부님과 신도들이 이곳 마당을 꽉 메워줬을 때 감동을 잊지 못한다.” “내 편이 하나둘씩 사라질까 그것이 가장 두렵다”는 지성아버지. “결혼식에 갈 수가 없어요. 내가 가면 지인들이 난처해해요. 그래도 장례식에는 가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이들이 빼앗긴 건 아이의 생명만이 아니구나. 자연스러운 희로애락 일상의 감정을 박탈당했구나. 함께 슬퍼하고 기억하려는 우리도 어쩌면 이들의 감정을 박탈하고 있지는 않은가?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더불어 웃고 기뻐하며 손을 잡아야 한다. 그분들 앞에서 늘 슬픈 표정만 짓고 있다면 이것 역시 또다른 억압 아닐까?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 생명의 힘은 강력하다. 지성아버지는 인터넷방송으로 416TV를 내보낸다. 함께하는 방송국멤버는 아이의 엄마뿐. 부부가 카메라 촬영에 편집 모든 것을 다 해낸다.
<416 희망목공방>에서는 대패질에 드릴작업이 한창이다. 유가족 엄마 아버지들이 손을 움직여 테이블 의자도 만들고 나무쟁반도 만든다. 유가족협의회 사무실 큰방에서는 뜨개질, 마사지 등 다양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어제 순례를 마치면서, “감히 우리가 무엇을 하자고 한 건가?” 과연 어떤 연극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두려움이 올라온다.
그래도 스스로를 격려하자. 우리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원 모두 연기를 특별히 잘 하려는 마음 따위는 당연히 없다. 이 연극 하나로 무슨 대단한 걸 이룰 생각도 없다. 모두 연극엔 생자 초보 일반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을 기억하라”는 마음으로 함께 한다면, 내안의 살아 있는 세월호 이야기를 대면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한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이를 통해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세월호에 말을 걸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유가족 여러분을 초대할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천천히 생각하자. 다만 어제 함께 한 수녀님들을 초대하고,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진정한 마음으로 초대한다.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한다.
ps. <기억을 기억하라>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인권연극제 참여작품.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 11월 7-8일 오후 3시. 공연시간 70분. 자유후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