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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5강 나라살림으로 본 한국 흥망
이번 시간에는 마침내 한국 흥망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농업이 시작되었던 선사시대부터 박정희 독재정권의 70년대까지 한반도에 있던 모든 국가와 정부들이 어떤 식으로 조세와 토지, 또 경제를 꾸려나갔는지, 어떤 제도가 훌륭했고 또 어떤 제도가 미흡했는지에 대해 전체적으로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시간이 워낙 짧아서 많은 내용들을 충분히 배우기에는 곤란했으나 그래도 가장 중요한 요점들을 짚을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살림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에 두 가지 거대한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농업의 시작이었고 둘째는 산업화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원전 3000년 잡곡 재배를 시작했고 세계사에서는 기원전 8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역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주 오랜 기간 세계는 농업을 기반으로 국가가 성립하고 성장하였으며 끊임없는 발전과 발전을 거듭해 결국 산업 혁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농업의 시대는 지금 기준의 전체 성장량으로 한없이 낮고 오랫동안 성장하지 않는 고인 물과 같은 시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모든 진보를 압도하는 가장 거대한 진보” 이며 “훗날의 군장사회와 대군장사회, 이윽고 국가와 제국까지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라는 윌슨의 말처럼 역사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습니다. 물론 이어 산업경제가 가져온 엄청난 경제 팽창에 대해 짚고 넘어갔습니다. 세계사는 멜서스 함정이라고 하는 농업 사회의 한계로부터 산업사회를 맞이하여 커다란 경제성장의 시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작에 대해 다음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에 수렵생활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아주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것은 공동소유의 재산권 제도 하에서는 인구가 늘어나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경우 자원이 고갈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생기는 비극을 뜻합니다. 어느 순간 역사는 필연적으로 농업이 유리한 시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농업은 정착생활을 전제하고 가능하게 하므로 배타적 소유의 재산권 제도로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고대 국가는 이런 시기에 맞춰 생겨난 가장 큰 발명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들은 군사력을 가지고 국민을 지키는 조직입니다. 대신 조세를 받아서 유지를 하는 것이지요. 한국도 기원전 2세기 진국이 성립하고 뒤를 이어 삼한이 등장했습니다. 점차 전쟁으로 영토를 넓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했지요. 삼국 시대에는 이러한 팽창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기술의 발달도 한몫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중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한국의 중세는 집권적, 국가적, 관료적이라는 다양한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중세가 봉건제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볼 때 관료제에 발달로 오히려 한국의 중세가 더 선진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토지와 인구를 양안과 호적으로 파악하여 직역제도와 지방제도를 통해서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고 했습니다. 고려의 경우에는 먼저 13조창을 두어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13개 창을 통해 관리하고 개경으로의 수송을 원활히 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물자이동을 최소화하고 지방 재정은 독자운영토록 하게 하는 여러 제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물자 상납을 위한 특수 행정구역은 물론 당시의 정부는 그 밖의 나라 안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이게 관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잘 발달된 중앙 집권적인 형태의 제도들은 시장발전에서 유럽의 봉건제보다 불리한 점도 있었습니다. 유럽의 봉건 사회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 도시의 상인들이 경제 통합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혹여 많이 달라보이는 유럽과 한국의 공통점을 굳인 찾는다면 농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유럽의 중세도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은 중세를 걸쳐 여러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먼저 제도 혁신과 기술 발달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되었습니다. 이 때는 노비를 이용한 집단 농장 경영보다는 소작농 체제로 이전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토지는 법적으로 영주의 소유였지만 사실상 농민의 소유나 다름 없었습니다. 고려 시대때부터 이러한 토지 소유권이 발달되기 시작했고 농업 역시도 1,2년을 묵히는 단기휴경 단계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러한 민간의 소유권 확립을 통해 점점 조세 국가로 역사가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왕조는 문벌 귀족이 독점하던 귀족의 사회에서 신흥 사대부로 권력이 이동한 크나큰 변혁이었습니다. 귀족제는 타파되고 양인과 천민만을 둔 양천제를 도입하여 신분제도를 명확히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비를 소유하고 과거를 봐서 군역을 면제 받는 양반이라고 하는 특권 신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노비제가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비제는 나중에 너도 나도 노비가 되고자 하는 나라 총체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게 되었지요.
조선은 경제 부분에서 많은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먼저 조세 징수를 더 잘 할 수 있게 3년마다 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물론 조세 회피의 목적으로 인구는 실상보다 잘 들어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쯤 되면 전체적인 식량부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인구 압력이 매우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조선의 전기 까지는 튼튼한 재정 정책과 제도들이 나타나 효율적으로 나라 살림이 운영될 수도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경지 면적을 확대했고 과세 기준을 낮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재정범위가 좁았고 모든 것들이 지방의 관행에 맞춰져 상납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 군역 부담 어려운 양인들은 몰락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후에 조선은 대동법과 같은 공납 제도의 개혁을 추구함으로서 국민의 공납 부담을 낮추고자 했습니다. 조선은 환곡제도를 통해 기근을 완화시키려는 노력 역시도 보여줬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시장경제의 발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종래의 상품화폐의 시대에서 점차 상평통보의 시대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농업의 부분에서 조선 역시도 소농 경영의 성장과 지주제가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농업 생산성도 기술의 발달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이양법의 보급으로 하층 농민들이 소농으로 자립하게 되었고 이러한 집약적 소농 경영의 성장이 지주제와 함께 조선 후기 농업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조선은 군주제 이자 엘리트 층의 특권을 부여한 기득권 중심의 국가였습니다. 양반은 국정 참여를 통해 독점 이익을 향유 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적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여러 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 부패가 심해지고 양반층에 의한 독점이 끝에 다다른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경제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구 증가이기도 했습니다. 농업생산성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고 물가는 상승했기에 국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습니다. 국가의 재정운영도 한계에 다다라 점점 나라에 망조가 들고 있었습니다. 주변국이었던 중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조선을 넘보고 있기도 해서 나라는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김옥균 등의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등을 통해 나라를 개혁하려고 일어났지만 실패로 끝났고 이후 등장한 대한제국 역시 황실의 비효율적인 재정운영과 함께 끝으로 달리게 됩니다. 이어 일본의 본격적인 침탈로 인해 결국 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은 일본의 쌀 생산기지로 쓰였습니다. 또한 광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경제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해방 후 일본과의 경제 관계가 단절되자 공업 생산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이는 일본 자본이 주도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의 그림자였습니다. 물론 해방후 일본이 두고 간 식민지 동안 축적된 물적 자본은 이후 한국의 산업 성장에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후 한국은 분단과 전쟁의 과정을 거쳐 많은 변화를 가졌습니다. 특히 가장 큰 변화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1960년 대 이후의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이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원조와 공공차관으로 제조업을 키워 수출지향적인 경제 성장에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경제 성장이 현재까지도 재벌 경제라는 형태의 부작용으로 나타났지만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른 시간 많이 성장한 나라라는 점은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총량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의 살림을 살펴보았습니다. 조세, 농업, 경제 정책, 정치 체제까지 한국 역사의 수많은 변화와 혁신 그리고 부족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 마침내 마지막 강의를 통해 현대의 살림을 살펴보게 됩니다. 금융위기를 비롯한 세계적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제적 재정 운영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갚진 시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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