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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독서클럽-위기의 국가] 3강: 제2부 근대성의 위기
'1부 국가의 위기'에서 글로벌리제이션과 그에 따른 위기와 국가의 변화에 대한 두 학자의 생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몇몇 지점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으나, 현재를 '위기'로 본다는 점, 근대 국민국가가 더 이상 국민 보호라는 자신의 역할을 하려들지 않는다는 점, 그 결과 개인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2부 근대성의 위기'에서는 두 사람의 견해가 갈리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무척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강의록에 100페이지 가량 되는 2부 전체가 무척 꼼꼼하고 이해하기 쉽게 요약.정리 되어 있어, 저는 두 사람의 견해가 갈리는 포인트에 대해서 정리.인용 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Point 1] 근대는 과거인가 현재인가
보르도니는 '이미 근대와 포스트 모더니즘을 건너왔다. (아직 어떤 시대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는 또 다른 시대'라고 봅니다. 세계대전 이후 노동의 변화, 탈물질화, 이데올로기의 쇠락이 근대의 붕괴를 보여주며, 그 후 혼란했던 1970년부터 20세기 끝날 때까지가 포스트 모던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대전 이후에 노동의 변화와 점진적인 탈물질화 및 이것들로 인한 불안정성은 근대의 토대들이 흔들리게 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근대의 구조는 여러개의 기둥들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지도적인 열할을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입니다. (...)근대의 역사상 최악의 범죄들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 (...) 이제 이에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낡은 도구의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pp.142-145)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1970년대에서 시작해 20세기가 끝날 때까지의 얼마 안 되는 역사적 시기, 근대의 모든 가치와 확실성들이 회의의 대상이 되었던 혼돈의 시대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p.152)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은 가 버렸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종말을 고했고, 뱃사공 역할도 끝났습니다. (...)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와 아직 이름은 없지만 이미 본질적 특징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하고 있는 새로운 단계 사이에 놓인 과도기입니다." (p.178)
이에 반해 바우만은 '우리는 근대가 끝났다는 것을 당장 확신할 수 없으며, 여전히 (액체화 된) 근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당신은 우리가 근대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설령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시대의 시작이나 끝을 알 수 있다고 쳐도,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 역사의 천사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지는 알지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pp.146, 148)
"우리는 근대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의 약속을의 결실들을 기다리고 있고 (...) 소비를 통한 행복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를 압도, 정복, 소멸시킬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이데올로기입니다. (...) 근대의 거대 서사 중에서 가장 거대한 서사, 즉 경제, 과학, 기술의 삼위일체가 주도하는 지구에 대한 인간 통제의 진보라는 서사는 그 어느때보다도 건강한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pp.149-151)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기술하기 위해서는 수정을 거쳤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분석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과거에 저는 이런 변화를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다른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를 사용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저는 새로운 현실들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용어를 만들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액체 상태;라는 은유였습니다." (pp.168, 170)
[Point 2] 근대국가가 떠난 자리에 설 새로운 주체는 누구인가?
보르도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남긴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중 (multitude)이 새로운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중'은 인민(the people), 시민(citizen), 국민과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주권자와 사회계약을 맺지 않고, 계속해서 (국가라는) 정치사회 바깥에 있던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보르도니는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단련된 다중으로서의 개인이 국민국가의 빈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티는 개인주의는 찬양하면서 근대가 발흥기에 보여주었던 연대, 타인과 문명화된 행동에 대한 존중은 거부함으로써, 가장 잘 적응하는 영리한 자들이 살아남는 상황으로 퇴보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 포스트모던적 개인은 가능한 유일한 수단인 주관주의의 정신을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합니다. (...) 그러나 주관주의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중의 회귀입니다. (...) 봉건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국민국가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에는 아직 미덥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던 다중은 이제 명예를 회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 다중은 사회적 통제를 다른 형태들로 재수립하고자 하는 강력한 압력을 견디어내게 될 최초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pp.162-164)
"(액체 사회의) 수면 밑에서는 계속 바뀌어가는 환경에 매일 적응하는 숨겨진 사회가 형성됩니다. (...) 이러한 숨은 사회의 구성원은 다중입니다. (...) 숨은 사회의 삶은 저항의 연속입니다. 증가와 감소, 예외적 사건, 자연적.도덕적 재난, 깨진 약속, 화보된 것으로 보이는 확실성들을 수정하는 법률, 붕괴, 갑작스러운 직장 폐쇄, 배제, 주변화, 차별, 좌절된 기대, 제한적 해석, 우리의 프르그램에 들어 있지 않은 계획, 신용 사기, 심각한 범죄, 급여 미수급, 사고, 기능 장애, 실망 등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들로 점철된 삶입니다. (...) 이것이 포스트모더니티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지 무수한 위기의 순간 중의 하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항입니다." (pp.184-185)
한편 바우만은 '우리는 여전히 공위기 상태, 즉 주체의 부재에 따른 위기에 직면 해 있으며, 보르도니가 말하는 다중은 해답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공시적이든 통시적이든 모든 질서에 대한 불신, '질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회의, '유연성'과 '혁신'이라는 가치를 '안정성'과 '연속성'이라는 가치보다 위에 놓는 경향, 거푸집도 마련하지 않은 채 금속부터 녹이는 것. 이 모든 것은 현재의 공위기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p.167)
두 가지 포인트에 대한 두 사람의 신경전이 젠틀한 단어들 사이에서도 비쳐보여 읽는 내내 매우 흥미로웠던 파트였습니다.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은 두 사람 중 누구에게 좀 더 설득 당했는지, 혹은 두 사람의 견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더 나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누가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머리를 쥐어짤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여러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머지 모든 위기를 해결 불가능하게 하는 '메타 위기'인 주체의 위기입니다. (...) 국가라는 주체의 위기입니다. (...) 부재하는 국가에 대한 간으한 대안이 될 만한 집단 행동의 새로운 형식들을 모색/실험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합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변화의 여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현상입니다. (...) 그것은 아직 실험 단계에 있습니다. 이 실험 동안에 수집된 증거는 아무리 호의적으로 보더라도 애매모호한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따라서 (...) 합의에 이르지 못해 (...)" (p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