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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고전으로 보는 정치철학 당대편]1강 롤스의 정의론
지난 목요일(3월12일) 김만권 선생님의 정치철학 당대편, 첫 수업이 있었습니다. 수업은 수강생 분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는데요, 1)수업을 듣게 된 동기와 기대 2)강좌 목록 중 가장 기대되는 학자와 질문거리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수강생 분들 중에는 김만권 선생님의 지난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 여럿 계셨는데요, 다들 김만권 선생님의 수업에 감명을 받아 또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수업은 ‘시’ 로 시작되었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였습니다. 이 시는 김만권 선생님이 대학원에서 방황하던 시절 교수님의 권유로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수업을 나가게 됐을 때 원주 가는 버스를 타기 전 뽑아갔던 시라고 하는데요,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읽으며 “이런 세상은 만들지 말자.”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달빛이 새파랗게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점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히
메밀묵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되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번 수업의 주제, 존 롤스가 말한 정의는 바로 이 화자와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말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 말이지요.
존 롤스는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난 후 세상을 휩쓴 인간성에 대한 회의감, 근대를 지켜준 이성과 과학에 대한 의심으로 인해 ‘옳고 그름이란 없다.’는 쪽으로 사람들의 논쟁이 옮겨갔을 때 “아니, 그래도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은 있다.”고 외친 철학자입니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유년 시절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워낙 허약했는데 자신에게 디프테리아가 옮은 동생 두 명이 죽자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았고 그 이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유난히 강의록을 꼼꼼히 준비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지요. 볼티모어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흑인과 백인의 차이를 느꼈고 그것은 점점 ‘차별’로 인식되었습니다. 여성운동가인 어머니마저 그 차별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며 롤스는 ‘뭔가 잘못됐다.’ 고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후에 의료, 기회의 평등, 인종 차별과 같은 문제들을 사회의 주요 과제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롤스는 많은 여성 제자들을 양성했고 제자들이 내놓은 롤스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성의를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이기려 하거나 입을 막으려 하기 보다는 그들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신념은 지켜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롤스가 실천한 민주주의이자 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빌 클린턴은 롤스 사망 후 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교육받은 모든 미국세대들에게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신념을 부활시켰다.”
롤스의 책 청의론The theory of Justice는 롤스의 여러 논문을 합쳐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롤스는 이 책에 대해 “읽기 어려우니, 일반인은 **정도만 읽으면 된다.”는 안내를 붙였다고 합니다!!!!!!) 흔히 정의론에 대해 갖는 사람들의 오해가 있는데요,
1. 롤스는 불평등을 정당화 한다.
2. 무지의 베일은 인간의 양심과 도덕에 정의를 맡기는 것이다.
3. 롤스는 모두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막시스트(공산주의)다.
이것들이 왜 오해인지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의론의 주제는 ‘정당화 될 수 있는 불평등은 있는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당화될 수 있는 불평등은 없다는 것이 정의론에서 말하고 있는 정의입니다. 롤스는 집안 배경, 신체적 조건, 사회 구조적 차별과 같은 태생적인 불평등을 정당화 하는 특수한 조건들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러한 조건들을 최대한 평등하게 만들어야 사회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도’로써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국가주의와는 다릅니다. 롤스가 말하는 제도는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러 도덕적, 양심적 판단을 할 때 제도로써 사회 정의의 근거와 기준을 제시하여 판단의 부담을 덜고 보다 정의에 가까운 선택들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틀입니다.
현실 사회에서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공익 제보자들이 후에 겪게 되는 사회적 압박감 또는 개인적 데미지, 증인들이 증인 보호 신청을 하는 순간 포기해야 하는 개인의 자유와 삶 등이 정의가 가진 비용Cost이지요. 사람들은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정의를 선택하기를 꺼려하기도 합니다. 롤스는 제도가 이 비용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정의를 선택할 테니까요.
“정의의 일차적 주제는 사회기본구조가, 말하자면 사회 주요 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이 된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으로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제 1원칙(정치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여기에서 그 유명한 ‘무지의 베일’이 나온 것입니다. 무지의 베일은 한 개인이 자신의 조건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최소한의 기본권만을 지키려 할 것이며 그것이 평등한 사회조건을 만들 것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공개되는 공적 장소에서는 개개인은 자신의 조건에만 갇히게 되며 때문에 자신의 조건에만 유리한 것들에 합의하려 할 거라는 것이 롤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롤스는 제도는 합리적 절차를 따라 정해져야 하며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그 제도의 수혜를 가장 최후에 받게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피자 배분’을 예로 들었는데요, 피자를 가장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은 피자를 나눠 주는 사람이 가장 나중에 피자를 갖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수 절차’라고 합니다.
롤스는 제도의 역할은 분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어떻게 생산하고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것에 무엇을 가장 우선 가치로 둘 것인지에 대한 사회관은 제도로 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배는 사회 갈등의 핵심이며 정의는 그것들을 조정하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도는 사람들에게 공정에의 우선성을 제시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 하는 역할을 합니다.
롤스가 말하는 공정은 절대 평등이 아닌 롤스가 ‘분배’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극심한 빈곤과 무지가 개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평등, 정의를 포기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모두가 최소한의 수준의 생활 조건과 지식을 공유해야 가치가 공유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진 자들의 것을 나누는 재분배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한 수혜가 아니라 시작이 공정한 ‘원래적 분배’입니다.
“기본적 자유들은 하나의 전체, 즉 하나의 체계다. 하나의 자유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다른 자유들을 명시함에 달려 있다.”
덧붙여 김만권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장 자유로운 상태는 내 옆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상태다.” 내 아무리 자유로워도 내 옆 사람이 자유를 잃었다면 언제든 나의 자유로 침해당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의미이며 때문에 내 옆 사람의 자유의 수준이 곧 나의 자유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의 공정성과 최소한의 생활수준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롤스가 막시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자유가, 평등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2원칙(사회경제원칙): 민주적 평등의 조건
a차등의 원칙: 사회 최소 수혜자의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불평등은 정당화 될 수 있다. 그러면서 롤스는 진정 자유로운 사회는 마음껏 갖게 하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가질 수 있는 최대량을 제한하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극심한 불평등이 낳는 상대적 박탈감은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니까요.
롤스가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비판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공리주의는 사회의 모든 것을 Pleasure과 Pain으로 나눴고 행복Pleasure 총량이 최대일 때가 좋은 사회라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선 소수의 고통은 감수해야 할 몫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계급사회에서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다수일 때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임무가 소수자의 보호로 전환되면서 문제적 이론이 되었지요.
b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사회적 우연성, 천부적 능력이 불평등을 정당화 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분배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상속세와 누진세가 높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롤스의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성과주의나, 이를테면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딴 소수의 사람들만 고수익 연봉을 받게 되고 좋은 선생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부정의인 것 같습니다. 성과에 상관없이 공정한 배움의 기회, 최소한의 수익 보장이 되는 것이 진정한 정의겠죠. 메달을 딴 사람의 수고를 부정하거나 개인이 그 성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메달을 딴 사람과 따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어느 이상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제도가 하는 몫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롤스의 전체 이론에서 가장 오해해선 안 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롤스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시켜서 민주주의나 자유를 완성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민주주의와 자유가 보장되어야 사람들의 기본권이 충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먹고 살기 좋아지면 그때 가서..”라는 말은 말 그래도 말.도.안.돼.는 말인 겁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면 우린 모두 먹고 살기 좋아질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게 돼냐, 국민이 정치에도 관심 없고, 투표도 안 하는 걸 보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는 거 아니냐, 라고 반박하시는 데에 롤스는 미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유의 하나하나의 핵심적인 부분을 다 같이 확고히 적용할 수 있으며 이를 보장할 수 있도록 자유를 정의하는 길이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롤스는 우리의 책무는 정치를 참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정치 참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투표는 승리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소수의 의견인지 알고 그것까지도 보호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하는 것이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유, 민주주의, 평등,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관입니다. 롤스는 이것들을 개인이 독단적으로 또는 일부 집단이 주도적으로 추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이 수립한 민주주의의 전제는 평등이며 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가능성이 주어졌을 때,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정의는 그것으로 가는 길이자 방법입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강의 말미에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고요 제 나름의 정리를 적겠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문제와 계속 함께 있기 위해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옳다고 믿는 것과 세계 작동 방식 사이의 간격이 커질수록 우리는 문제제기를 하게 됩니다. 그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들이 자꾸 좌절 될수록 우리는 침체되고 정체된 것처럼 느끼게 되고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고전은 그럴 때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왜냐하면 고전은, 세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함께 있으려 했던 사람들의 기록이자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짜라투스트라가 하루 종일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밤에 산에 올라 펑펑 울고도 다음날 아침 다시 마을을 내려오는 그 마음으로 우리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1. 신분에 따른 분배의 차등이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논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되나, 현실적으로 그 사람의 기능, 업적, 재능, 노력에 따라 분배의 차등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움. 더군다나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 조세정의를 통해 재분배를 이야기하면, 점잖은 지식인들조차도 고생해서 자신의 부를 이룬 이들을 질투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탐욕이라고 꾸짓는 현실. 분배에 있어 응분주의적 정의관에 대한 롤즈의 비판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함
2. 현실적으로 신분과 재능에 따른 분배의 차등이 벌어지고 있고, 격차가 확산됨. 롤즈는 사회공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을 분배하는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이들은 두개의 국가 두개의 공동체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듯. 이건희는 "천재 1명이 100만명을 먹여살린다"면서 인재를 찾을 것을 주문했는데, 천재 1명이 만들어낸 부를 공동체와 고루 나눌 의사는 없을 것이 현실. 무연고적 자아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논리의 문제때문에 샌델이 공동체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는데, 사실 공동체가 이를 조정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것도 사실임. 정부여당마저도 경기악화의 불을 끄기 위해 최저임금을 조금 올리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자본은 이마저도 거절하는 한국의 상황.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정부여당의 주장도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제순환의 최소한의 필요때문에 이를 주장하는 것.
3. 롤즈의 [정의론]이 학계에 영향을 미친 것 뿐만 아니라 당대 미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롤즈의 이야기처럼 분배의 정의가 공공정책에 반영되는 사회적 담론 형성에 기여했는가, 아니면 학계의 담론에 그치고 말았는가. 결국 정치철학이 현실에서 힘을 갖고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동체의 동의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최종 목표를 성취하기까지 우리는 공유하는 가치에 호소합니다. 지금은 자본이 중요한 사회로 자본이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나 그래도 거쳐야하는 평등은 광고에서 푸르른 자연과 사랑스러운 아기와 감성적인 문구로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상품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참정권과 사회권이 보장되고 기술은 나날이 좋아져 문화적이며 여유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인바 어김없이 선거날은 오고 자유의사로 직접 투표하며 공공기관 직원 친절품질도는 평가 중이고 식사준비에 청소, 빨래는 자질구레한 일상이 되어 기술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때 경제 구조조정으로 대량실업이 생겼고 사회안전망이 부족하여 가족해체가 많아서 큰 문제였는데요 기초생활보장법은 학문적 담론에서 해결방안으로써 사회적 담론이 됩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 근로능력 평가 후 수급권 인정으로 이전 생활보호법에 비해 수급자가 많지 않았는바 당시 자본이 중요한 시대에 편입 중 강구한 해결방안이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2015년 기초생활보장법은 경기불황으로 살기 어렵다는 중에 형편이 열악한 송파 세 모녀에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근로능력 평가, 추정소득 현실화가 사회적 담론이 됐으나 지금도 경제는 살아야하는 시대로 “맞춤급여로 수급탈퇴”가 기조되어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보장생활영역이 각 독립했으나 계속 담론 중인 부양의무자기준, 근로능력평가, 간주소득은 지속으로 송파 세 모녀를 비롯해서 수급자 독립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은 자본이 중요한 사회이고 경제가 살아야하는 시대이나 결국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에 호소하여 사회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민주주의 체제로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소수자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요 이것이 희망이고 이 질문에 담론 참여자를 확장하여 일상화하는 것이 정의가 제도화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추신 : 다수 중증장애인 직원과 근무했을 때 소수 비장애인으로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꼈는데요 처음 저는 그들과 동등하지 않았으며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고양과 부담으로 엉킨 긴장관계였고 나중 혼자 지쳐 도움을 당연히 생각하는 점에 화가 났습니다. 결국 회사이고 국장님이고 직장동료이고 하면서 일원이 됐는바 되돌아보면, 어쨌든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하니 적정히 타협하고 서로 할 수 있는 일을 정하면서 티격태격 중에도 나름 평화롭게 근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나 생활공간에서 자꾸 만나고 부대껴야 서로 조정하는 중에 현실적 담론을 형성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질문이 많았는데요 생각할 여지를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