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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문화로 보는 현대일본] 두번째 강좌 오카모토 타로이야기 (11월 11일)
11월 11일 화요일
어떤 예술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했는가
- 오카모토 타로에 관한 이야기
이번 수업시간에 배웠던 오카모토 타로는 일본의 주목 받았던 예술가이다. 수업을 듣기전에는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얼핏 조영남과 비슷한 이미지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수업 이후에 이런 사고에서 벗어난 것이 이 수업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오카모토 타로는 고요한 일본사회에 파문을 던지는 예술가였다. 예술은 폭발이라고 주장하며 그 폭발은 목적 없이 우주로 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꽤나 의미가 있을 만한 응원인 이겨도 좋고 져도 좋으니 완전하게 전력을 다하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 사상을 전파하며 프로그램이나 씨에프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예술가의 성장과정이 궁금했다.
그의 아버지는 잇페이라고 유명한 만화가였다. 어머니도 불교 연구가이자 소설가였다. 타로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가져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어머니는 타로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타로와 그의 어머니는 예술가적 기질이 닮아있었고, ‘아내가 결혼했다’의 실제 모티브로 생각이 될 정도로 대단한 스토리를 가졌다. 잇페이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의 생활을 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것이 예술가의 허세인지 진짜 사랑인지 평범한 사람인 나는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 가족들은 프랑스로 떠난다. 타로는 프랑스 유학 중에 피카소와 세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이후에 징용되어 중국으로 간다. 전쟁에서 살아남아서 반전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던진다. 그리하여 오카모토 타로의 역작인 태양의 탑이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우뚝 선다. 전후에 다시 일어선 일본의 발전된 기술을 보여주는 장소에 터무니 없는 것, 바보 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하고 실제로 그것을 만든다. 여기서 일본의 유연함과 희망을 본다. 적어도 어떤 메시지도 타당하다면 정부나 시민들이 허용한다는 것 그 자리에 어떤 바뀔 희망이 보인다.
그 이후에 타로는 본인이 주장한 대극주의에 따라서 본인이 신성화되는 예술가처럼 보이는 것에 저항하여 티비프로그램이나 씨에프에 출현해서 신비주의를 타파한다. 그리고 3/11 이후 다시 재평가 되는 ‘내일의 신화’를 그린다. 이 그림은 20세기에 히로시마 원폭투하 사건과 54년에 피폭된 어선이 모티브가 되었다. 이 후에 이 그림은 시부야역에 전시되었고, 침폰이라 불리는 예술가 그룹이 <LEVEL7> 이라는 그림을 덧붙여서 그렸다.
이 수업을 듣고 한국 사회는 어떤 예술가를 가졌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타로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예술가가 공영방송이나 광고에 나올 수 있는가. 혹은 예술가가 티비에 출연해서 정부의 핵 발전소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사회의 우열을 나눌 수 없지만 세계의 여러 기구들은 각자가 수치를 만들어서 국가들을 서열화 한다.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는 우리는 케냐보다도 더 환경이 좋지 않다. 우리는 언제쯤 타로같은 예술가를 가지고 그들의 사상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답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