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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 오강남과 함께 하는 장자 읽기] 4강, 양생주(養生主)/인간세(人間世)
[비교종교학자 오강남과 함께 하는 장자 읽기] 4강(10/13), 양생주(養生主)/인간세(人間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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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4편 양생주(養生主)
p.141.
-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 Obsolite 유효기간이 지난것
- Obsoledge = Obsolite + knowledge 금방 지나서 사라져버리는 지식
- 한석훈 : '유진의 학교' '선생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 교육은 지덕체가 아니라 지덕성/ 성은 영성을 뜻하는 성이다.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유교다. 유교는 성학이라고 부른다. 요즘 교육은 성학의 요소는 빼버리고 지식만 가르친다.
- 막스 밀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자신의 종교도 모른다.
- 무한히 알아야 할 것을 끝까지 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 자신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은 깨달음이다. 남에게 들은 것을 통해 채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 고등학교 학생들을 지식위주로 : 리히텐슈타인의 수도까지 외운다. 그것에 매몰되어 버리면, 중요한 깨달음은 놓쳐 버린다. 삶의 생명력이 시들어 질 수 있다.
- 성경에도 '내 많은 지식이 너를 피곤케 하는 구나'라는 말이 나온다.
p.146 포정해우
- 포정은 유명한 요리사이다. 춤추듯이 소의 뼈와 살을 분리하자. 뇌군이 기술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지금은 신이 시키는 대로 결을 따라서 베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 理- 옥에 있는 결이다. 모든 결 중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결이 眞理다.
- 동양에는 도와 술이 있다.
○ 술은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술을 익혀서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도가 된다. 궁술은 아직 배워야 한다.
○ Eugen herrigle : 선사에게 궁술을 배우러 갔다. 선사는 모든 것을 잊고 자연스럽게 쏘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대나무잎에 눈이 쌓여서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몇 년 동안 연마하자, 어느 순간 과녁의 한가운데 맞았다. 그러자 선사가 그에게 절을 했다. 선사가 말했다. 오해 하지마라. 나는 너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네 안의 도에 절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도를 네가 방해하고 있었다.
p.152
- 마이클 머피: 우리가 쓰고 있는 능력은 진짜 가지고 있는 능력의 일부 밖에 쓰지 못한다. 그러나 능력을 갈고 닦아서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확 발전한다. 이 단계가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쓰이는 능력과 같다. 운동선수들은 그런 경험을 많이 한다. 하키선수가 어느 순간에 보면 하키의 퍽이 느리게 보인다. 그런 의식의 수준에 접어들면 zone에 들어갔다고 표현한다.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의 변화이다.
- 임금이 백정에게 배우고 있다.
- 이와 같은 경우가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타난다. 소설의 끝 장면은 실패한 상황에서 조르바는 주인에게 춤을 추자고 한다.
- 장자의 삶은 머리만 돌리는 삶이 아니다. 두뇌회전(cerebration) 축하(celebration)는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쪼고, 댓 걸음에 물 한 모금. 합쳐서 먹기를 그렇게 싫어함은 왕같이 먹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노자의 죽음
- 노자든 장자든 실제 인물과는 상관없이 이름만 빌려 썼다.
- 노자가 죽어서 진실이라는 노자의 친구가 문상을 했다. 곡을 세 번만하고 진실이 나와버렸다. 진실의 제자가 진실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노자의 친구 아닙니까? 그런데 왜 대충 곡만 하시고 나오십니까.“ ’나는 사실 노자가 훌륭한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보니까 늙은이들도 젊은이들도 울고불고 하는 것을 보니 그가 훌륭하지 않은 것을 알겠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가 물었다. “그가 잘못 가르쳤기에 그의 주위사람들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을 순명이라 한다.
- 산다는 것은 마리오네트처럼 실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죽음은 실이 끊어져 버린 상태이다. 죽음에 초연할 수 있으면 신나는 삶을 살 수 있다. = 현해(懸解)
- 숙명적인 부자유에 항거하는 것은 비극적인 얽힘이다. 영어로는 tragic intaglement. 그렇기에 받아 들여야 한다.
- 니체는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 죽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영생은 흰 옷을 입은 사람(의사)에게서 온다.
- 라인홀트 니버 ; 하나님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옵시고. 셋째로 이 둘을 분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p.163 장작불
○ 우리가 할 일을 다 하면 불이 타든지 안 타든 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가 불을 지펴서 나두면 장작은 알아서 탄다.
4편 인간세(人間世)
- 4편은 일종의 처세술이다. 4편은 도가사상이 은둔주의와 도피사상이라는 편견을 고칠 수 있게 해준다. 정치참여를 이야기 한다
안회의 이야기
- 키워드: 심재(心齋) 마음을 굶긴다.
- 이름은 같지만 유가의 공자와 안회는 아니다. 이름만 빌렸다. 생각은 장자의 생각을 대변한다.
- 안회가 말했다. “어디가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십시오.”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위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위나라에 독재자들이 생겨서 사람들이 갈대처럼 죽어가고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아서라. 네가 그곳에 가면 너도 죽고 사람들에게 보탬도 안된다. 그러니 가지마라.” “병든 사람 집에 응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겠습니다. 저는 훌륭한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독재자에 대해서 고전이나 역사에 훤하기에 제 논리로 말하지 않고 과거의 일을 인용해서 저항하겠습니다. 저는 잘 준비되어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래도 안된다.” 안회가 말했다. “부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재(齋)하라. 마음을 재(齋)하지 않고, 쉽게 된다고 여기면 저 하늘도 그것을 맑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저는 가난하여 양념이나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이미 재의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것은 제사 때의 제이다. 형식적인 제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마음을 굶기는 것이다. 마음을 굶기는 방법은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육신의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에는 마음으로 듣지 않고 귀로 들어라. 귀는 오로지 소리를 들을 뿐이다. 마음은 오직 사물을 인식 할 뿐이다. 나중에는 기(氣)로 들어라. 기(氣)는 텅 비어서 그 속에 도(道)가 들어간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심재가 되었을 때, 위나라로 가면 너도 살고 위나라 사람들도 산다.”
○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초의식, 평범하지 않은 의식, 새로운 의식 안 보이는 것도 보이고 안 들리는 것도 들린다. 유연한 사고를 가지는 것이다.
- 성경에 보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죽었을 때, 도망갔다가 오순절에 다시 모인다. 다락방에 모였다. 갑자기 천장에서 불이 혀같이 내려온다.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제자들 각자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다. 각자가 자기 말을 하는데, 상대방이 저절로 알아들었다는 의미이다.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p.183
- “제가 심재를 실천하기 전에는 제 자신이 가장 중요했지만, 심재를 실천하자 내가 없어지고, 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네가 위나라에 들어가 새장에 가서 노닐 때, 이름 같은 것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명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받아주거든 소리를 내고 받아주지 않거든 잠잠하라. 억지로 하려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런대로 성공할 것이다. 무명, 무기, 무공의 자세로 독재에 항거하면 너도 살고 그 사람들도 산다.”
○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정치참여의 기본 조건이다.
○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사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위험과 오해없이 할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치적인 것이 인간 삶에 직접적인 것이다. 종교를 하는 사람이 정치에 무관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심재는 작은 셀프에서 큰 셀프로 가는 것이다.
p.202 당신은 사마귀라는 벌레(곤충)를(을) 아십니까?
- 사마귀는 달려오는 수레를 막습니다. 이런 짓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당랑거철
○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다가 수레에 치어서 죽는다.
- 말을 사랑하는 마음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식이 틀렸다.
- 대인관계에서 세가지를 잘 알아야 한다.
정답이 없는 시간
- 살면서 도를 깨치는 것이 가능한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닐까.
○ 답: 심재하다가 죽도 안되고 밥도 안 되는 상황. 가만히 있는 심재의 과정도 있고, 정치참여 하면서 심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현실참여가 네가 나를 버리게 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작은 셀프가 없어지고 큰셀프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참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
현실참여를 하려는 안회를 공자가 막은 까닭은 무엇인가?
안회의 수준이 당랑거철 수준이라서 실력을 키우라는 의미였다.
- 심재가 스몰셀프에서 큰 셀프로 갈 수 있는가. 내 셀프의 수준에 따라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욕망을 비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가
○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 시켜보고 이게 아니구나 하는 단계에 접어 들어야 한다. 욕망을 채워보지 않고 텅텅 비어있다면, 어렵다. 아주 어릴 때부터 스님이 된 동진스님들의 경우 세상을 자꾸 부러워해서 큰 스님이 되기 어렵다.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의 마지막 장면/ 스님이 환속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전부인가라는 경지에 도달 해야 한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전에는 계속 돈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 장자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 직업적으로 장자는 신발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혜자가 왕이 오라고 해서 컨설팅을 하고 수레 100대를 얻어왔습니다. 오면서 신발을 다루고 있는 장자에게 들러서 혜자가 자랑했다. 내가 듣기로는 왕이 치질을 앓고 있는데, 똥꼬를 한번빨면 수레를 한대 준다는데, 넌 대체 얼마나 빨았길래 100대나 받았냐고 내편에 있어싿. 장자는 낚시를 좋아했다. 낚시를 하고 있는데, 재상이 와서 같이 가자고 하니 장자가 낚시만 계속하면서, 올챙이가 진흙에서 꼬리를 흔들며 사는 게 좋겠는가, 잡혀서 비단에 쌓여져서 왕궁의 제단에 있는 것이 좋겠는가. 진흙속이 좋겠지요. 나도 그것이 좋다. 왕에게 그리 일러라.
- 이단과 사이비의 차이는 무엇인가?
○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기준을 두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자기중심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 이단이고, 자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자아, 공동체 인류를 위하는 종교가 진짜라고 볼 수 있다. 교리가 이렇든 저렇든 상관이 없다. 종교를 이용해서 개인의 부를 축적한다거나 집단의 사업을 키우는 것은 정말 이단이다.
○ 한국교회에서 이단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것, 성경을 믿지 않는 것 예) 몰몬교 그 기준은 자의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돈이 선명하지 않다.
○ 사이비는 새로 생긴 이단이다.
- 비움이라고 하는 것이 자신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타자화 하는 것과 심재의 차이는 무엇인가?
- 파우스트가 여성성이 구원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 궁금하다.
○ 독일어판 파우스트 전집을 샀는데, 30년간 책장에 꽂혀있었다. 퇴임이후 독문과에 기증했다. 영문판을 샀는데 중간까지 밖에 읽지 못했다.
- 자유로움에 대한 질문인데, 조르바를 예를 드셨는데 무책임과 자유의 경계는 무엇인가?
○ 자유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네가 의에 사람이냐 리의 사람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군자는 의를 추구하고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명문상으로 의를 추구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의를 추구해야 한다.
<소감>
- 장자가 은둔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정치참여의 원칙을 이야기 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러나 그 정치참여를 할 수 있는 기준이 너무 높아서 현실정치에는 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난 문답시간에도 보았듯이 북극성을 향해가는 것을 그것을 디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다. 무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 정답이 없는 시간(제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질문의 수준이 아주 높고, 강의를 들은 내용과 이어져서 끊임없이 생각할 여지를 준다. 강의를 듣는 목적은 결론적으로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 지어서 잘 살아갈 것인가. 혹은 더 공부를 깊게 할 것인가 이다. 그런 목적에 아주 충실한 시간이 되고 있다. 무책임과 자유의 경계에 대해서 보다 더 생각해볼 것이다. 이제 강의가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 벌써부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