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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5강, 서양문명으로의 전환기를 맞아 동아시아 사회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동아시아 근현대사 : 전쟁의 기억, 평화의 약속] 5강 (5/08) 서양문명으로의 전환기를 맞아 동아시아 사회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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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수업 시작 전
질문 하나, 러일전쟁을 마무리하는 조약은 왜 미국 땅인 포츠머스에서 체결되었을까?
원래 전승국가에서 조약을 체결하기 마련이다. 그럼 일본이 정말 이겼을까?
미국이 러일전쟁을 중재하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이 쓰시마해전에서 이겨 강렬한 기억이 남아 일본이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기지 않았다. 즉, 전승국이 없는 전쟁이었다.
생각하나, 오키나와 평화공원에서 본 것은 대일본제국의 패망이었다.
1. 서구적 세계관의 확산
*사회진화론의 수용
동아시아는 자강논리, 침략 정당화 논리, 강자옹호논리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우승열패의 사상이었고, 청나라는 량치차오에 의해 적자생존이라는 논리가 있었고,
조선은 유길준의 경쟁논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 비슷비슷해서 조금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 경쟁논리가 뿌리 깊이 박혀있다고 한다.
*서구적 생활방식의 수용
신세대는 서구식 복장을 입고 단발이었다고 한다.
또 서구적 시간관념, 예를 들자면 시계탑, 손목시계, 24시간=1일, 7일=1주일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들은 현재 우리들이 쓰고 있는 태양력을, 일본은 1873년에, 조선은 1896년,
중국은 1912년 순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 개화의 상징은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2. 근대적 지식의 확산
*근대 교육의 등장
서구화의 수단으로서의 교육을 하였고 서양식 학교에서 서양의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일본은 학제를 제정하고 의무 교육제를 실시하였고, 도쿄대를 설립했다고 한다.
1872년 메이지 정부에서는 “사람은 배워야 한다.
동네에 배우지 않은 집이 없도록 하고, 집안에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반드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배우게 해야 한다.”고 했고
1890년 교육칙어에서는 “국가가 위급할 때는 용기를 내서,
몸을 바쳐 국가를 위해 일하고 천황가의 번영을 도와야 한다.”고 하여
충성하는 국민, 충군 애국을 위해 교육시켰다고 한다.
청나라는 청일전쟁 후 중앙에서 경사대학당이라는 현재 베이징대학이 있었고,
지방에는 중학당과 소학당을 설립하였으며, 일본의 학제를 수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은 갑오개혁으로 소학교, 중학교, 외국어 학교를 설립하였으나 대학교는 설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입국조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프랑스 총독부에 의한 서양식 교육제도에 정착했고
독립운동가의 통킹의숙 (민족운동가로 기르고 미국으로 유학)을 설립했다고 한다.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고 청나라, 대한제국, 베트남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신문의 탄생
신문은 계몽을 뜻한다고 한다. 자국어 신문을 내 민권 관념을 보급하고 여론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청나라는 영국 상인이 상하이에서 신보를 창간하고 그 이후 시보, 대공보등 여론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최초 신문은 요코하마 마이니치 신문이었고, 대중신문으로는 요미우리 신문이라고 한다.
요미우리 신문은 연예, 예술, 오락 등을 쓴 재미있는 신문으로 만들었고
나중에 일본의 신문은 전쟁보도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제국은 순 한글의 독립신문으로 여론을 주도했다고 한다.
순 한글 신문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국어 신문으로 만들자고 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와 연계되었다고 한다.
삼국의 문화 발전의 선각자들로는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와 청나라의 후스, 그리고 조선의 안창호가 있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와 후스는 국민적 소설가라고 한다. 한창호는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3. 서구 문물의 도입
*철도의 건설
철도는 인구를 이동시키고 상품을 유통하며 인적 교류를 촉진시키고 여행등 행동공간을 확대시킨다.
동아시아에서 철도는 침략의 첨병이라고 한다.
대한제국에서는 철도 부설권을 제국주의 국가간의 경쟁대상이었고
철도망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군대 수송에 활용되었으며, 의병의 저항이었다고 한다.
청나라에게 철도는 열강의 침략수단이었고 풍수로 인해 거부감이 들었으며,
이권회수 운동을 했다고 한다. 또 청나라 사람들은 소리를 내는 요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일본에게 철도는 문명의 이기였으며 철도부설유치운동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첫 탑승자는 천왕이었고 일본 사람들은 철도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대도시의 형성.
청나라는 개항도시의 조계지였고 서양상품 판매점있었다.
일본은 개항도시에 외국인 거류지를 건설하였고 도쿄의 부국강병형 도시화 계획했으며,
벽돌의 긴자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 대한제국은 개항장에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었고
경운궁 중심의 황성 만들기 사업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의 하노이는 작은 파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성교육과 여성 권리의식의 신장
대한제국은 현모양처를 지향했고, 일본은 양처현모, 청나라는 현처양모를 지향했다고 한다.
남녀 공학의 초등 중등교육을 받는 것이 일본에는 있었다.
조선에서는 선교사들이 세운 여 학교가 있었다.
일본의 일본 부인교풍회에서는 남녀동등권리, 일부다처와 매춘을 금지,
가사노동 분배를 위해 금주와 금연을 권장하며 이러한 권리를 주장했다고 한다.
대한제국에서는 여성통문과 찬양회가 있었고
중국은 신해혁명 아래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분위기를 고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