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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계보학] 2강, 왜 시장의 자유일까
[자유의 계보학] 2강(1/28), 왜 시장의 자유일까? - 아담 스미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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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해결방법’이라는 시를 읽고 그의 인생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가 시작됐다. 시의 표현대로 ‘인민을 다시 뽑고 싶은 그들’은 역사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였다. 시인의 인생에 대한 설명과 함게 지난 강의 복습,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이어졌다.
이후 본론으로 들어가 애덤스미스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선생님께선 애덤스미스가 자유주의 역사에서 왜곡이 가장 큰 케이스라고 하셨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애덤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당시의 영국의 상황, [국부론]에서 [도덕감정론]으로 이어지는 설명을 하셨다.
애덤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의 영국은 정치민주화가 시작되고,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로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한편 이렇게 밝은 면과 함께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극심한 재정난과 식민지 전쟁이라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선생님께선 윌리엄 호가스의 'Beer Street'과 ‘Gin street'이라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당시의 빈부격차를 설명해주셨고 그 시대를 살앗던 애덤스미스의 과제는 ’왜 국부는 늘어나는데 빈익빈 부익부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하셨다.
먼저, 선생님의 [국부론]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애덤스미스는 분업을 강조했고 분업이 국부의 원천이라고 했다. 애덤스미스는 개인의 삶의 장은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편, 베버는 분업엔 물건을 만든 사람의 정체성이 들어있지 않았다고 여겨 분업을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애덤스미스의 생각은 달랐다. 애덤스미스는 분업을 통한 결과로써의 상품을 사회성의 결집체라고 봤다.
애덤스미스가 분업을 위해선 경제적 자유가 필요하고 국가의 간섭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맞다. 이런 최적의 경제체제를 ‘자연적 자유의 체제’라고 하는데 애덤스미스는 이 자유의 체제 안에서 자유로운 경쟁시장을 지향한다. 이 부분에서 자기 이익을 추고하는 이기심과 행위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흔히 알려진 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선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이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애덤스미스는 보통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기심(selfishness)를 써서 표현한 적이 없고 자기애(self-love)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 영국의 빈부격차를 풍자한 그림 (Beet Street)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부와 지위를 추구함으로써 사회가 번영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들에 대한 무절제한 추구는 오히려 개인의 행복을 저해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고까지 했다. 이런 생각은 도덕철학자였던 애덤스미스의 다른 저서인 [도덕감정론]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만 살 수 있다. 즉, 인간은 타인의 존재와 행복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에선 동감이 필수적이다. 동감은 합리적인 역지사지의 태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 3자의 위치와 관점이라는 ‘공정한 관찰자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동감이 무절제한 이기심을 절제해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애덤 스미스 하면 ‘이기심’의 중요성을 알려준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기존에 알고 있었던 애덤 스미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철학이나 사상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이론이나 생각을 가지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1강에서의 아렌트가 말했던 자유와 비슷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개인의 자유는 타자의 현존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혼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프린트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두 번의 강의의 공통점을 보여주신 것 같다.
“개인의 권리를 지독히 옹호하는 자유주의의 주장은 개인이 결국에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해야하고 유한한 삶 동안 공동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참여자 질문>
- 아담스미스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공자의 '측은지심'은 어떻게 다른가요?
- Giulty는 부와 권력을 갖고 난 후에 생기는 과정인가요? 부와 권력에의 '동경'하는 단계에서도 생길 수 있는 것인가요?
- "내 마음 속의 공정한 관찰자'를 얘기하면서 내가 속일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거짓말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속이게 되지 않습니까? 정말, 그 거짓말이 정말이라고 믿어버리는 거죠. 이경우 공정한 관찰자는 힘을 잃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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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EBS Docuprime, 자본주의,4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http://www.youtube.com/watch?v=LQwGLQxggx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