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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7강, 대통령과 재야의 대통령 : 박정희와 장준하
최근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박정희와 그와 반대편에 서있었던 장준하에 대한
연혁을 살펴보며, 그들의 삶과 그 시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1. 박정희
'박정희'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고 계실텐데요~
3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것, 쿠데타를 모의하던 과정 등 제가 새롭게 알게된 내용위주로 간단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경/만주군관학교 -> 일본육사 3학년에 편입 -> 만주군 보병에 소위로 부임
1946 5.6
조선경비사관학교 제 2기생 재학 중 “10월 인민 항쟁” 발발
남노당 이재복이 박정희를 주목, 군사훈련경험/인맥/경상도출신/능력이 돋보였기 때문.
1949 박정희 무기징역(국방경비법 위반)-> 현역복귀, 육군8기생을 만나게 됨.
1952.5.29. 장면, 이종찬 -> 미대사관에 쿠테타 계획을 타진
1959.2 송요찬 – 부정선거를 명령
1960 박정희 – 쿠데타를 도모했으나 4.19로 인해 무산
1961 4.15 해병대 단독 쿠데타 모의 이후 몇 차례 준비했고 결국 5.16일에 실행하게 된다.
- 박정희의 연혁을 통해 살펴 본 내용 외의 것
(전 왜 이런 내용이 더 기억에 남을까요....?)
정인숙 사건, 한일협정, 베트남 전쟁, 문익환
2. 장준하
-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가
- <사상계>를 출판
* 이는 당시 자유당 정권을 신랄하게 규탄하며 4·19 혁명의 단초가 되었으며, 대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통일운동의 중심세력=학생)
중요 연혁 (+ 수업시간에 다뤘던)
1944 학병 자원입대
1945 광복군에 편입
1963 이후 야당의 길을 걷게 됨 -> 제 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당선
제 3공화국 당시, 한일회담 반대와 박정희 비판 내용(출처 : 위키백과)
대선에서 장준하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있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준하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 협정을 일본 제국주의 군인 출신이 침략자이며 전범자 집단인 일본 자민당과 매국협상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1964년 4월호를 긴급 임시증간호로 내놓았다. '한일회담의 제문제'는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이 나라 지식층의 의사를 비판적으로 담아낸 한일회담 반대진영의 교과서가 됐다. 이어서 1965년 7월에 '신(新) 을사조약의 해부' 를 또다시 긴급 증간호로 발행해 한일회담 반대진영의 이론적 교두보가 됐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집권층과 삼성의 이병철 사이에 유착이 있었다는 정보가 새어 나왔고, 야당과 대학생들이 전국적인 규탄대회를 열었다. 1966년 10월26일 민중당 주최 '특정재벌 밀수진상 폭로 및 규탄 국민대회' 에 연사로 참석했다. 장준하는 규탄대회에서 재벌총수와 정부 고위층 사이에 오간 내용을 폭로하면서 “우리나라 밀수 왕초는 바로 박정희”라고 비판하였다. 이어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은 박정희 씨가 잘났다고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청년의 피가 더 필요해서 오는 것" 이라는 발언도 주목을 받게 됐다.
장준하는 박정희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박정희 밀수왕초 발언 등이 문제되어 구속, 한 달간 수감됐다가 1966년 12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 뒤 1967년 2월의 공판에서는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 박정희의 반대편에 서있던 인물에 대한 탐구와 함께 더 생각해 볼 문제
1965 한일협정 이후 동아시아에 대한 개념 : 한·중·일+미국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고 북한은 제외된 점
이상으로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머릿속에 정리가 더 잘 되고 있어요.
앞으로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해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