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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6강, 나는 마을에서 논다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의 가능성
[나의 시민정치학교Ⅱ] 6강(11/19), 나는 마을에서 논다 -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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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미산마을에 대한 소개
성미산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작은 야산이다. 성미산은 해발 70미터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산으로, 마을 어디에서 출발하든 어른 걸음으로 5분, 아이 걸음으로 십여 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이 성미산 자락에는 성산동,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 그리고 서교동이라는 행정구역상의 동네들이 있다. 우리가 ‘성미산 마을’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이 성미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단어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낯설다. 우리의 기억에 마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한적한 농촌이나 영화 속에만 머무르는 골목길 사람들뿐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저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재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상이 있다. 하나는 세계를 도시로 나누려는 것이고, 하나는 마을들로 나누려는 것이다. 마을문명과 도시문명은 전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기계와 산업화에 의존하고, 다른 하나는 수공업에 의존한다. 우리는 후자를 택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와 마을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난 역사 속에서 한국의 서울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철저하게 도시화되어왔다. 90년대를 전후해서 도시에서 태어난 학생들이 마을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성미산마을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동체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관계를 만들고 싶었고, 체벌이나 과잉 경쟁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원했고, 하고 싶은 문화생활을 생활공간에서 누리고 싶었고,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생활을 좀 더 윤리적으로 하고 싶었다. 자신이 배운 바를 실천하는 삶을 나 혼자가 아닌 이웃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미산마을은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관계’에 기반을 둔 공간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그리고 이 마을을 보는 마을 바깥의 사람들이 부여한 정체성이다.
성미산마을의 시작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을 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자!’라고 해서 모인 주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4년, 아이들에게 한글과 영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던 부모들이 의기투합해 공동육아 협동조합 ‘우리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추가로 ‘날으는 어린이집’이 만들어지면서 입소문이 났고, 공동육아에 뜻을 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이후 공동육아운동은 꾸준히 발전하여 2002년 ‘참나무 어린이집’이, 2005년에는 ‘성미산 어린이집’이 추가로 설립되었다.
공동육아로 시작한 공동체는 아이들이 크면서 대안교육에까지 관심을 넓혀가기 시작했고, 이후 부모들이 확장된 ‘마을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마을극장, 두레생협, 공동주거 등의 새로운 시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현재 이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가구 수는 500~700여개에 달하고, 그 안에서 약 70여개의 커뮤니티들이 운영되고 있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친목 모임정도의 성격을 가졌던 공동체가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걸림돌과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계기들이 있었다. 2001년 서울시는 성미산에 배수지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의 유일한 녹지인 성미산은 주민들의 휴식, 산책, 운동 공간이며, 어린이집 아이들이 매일같이 오르는 놀이터이자 교육장이었다. 생태론에 기반을 둔 공동육아협동조합이나 두레생활협동조합은 당연히 이에 반대하였고,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성미산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펼쳤다. 마침내 서울시가 기습적인 벌목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사수대를 결성하여 물리적으로 개발을 저지하였고, 촛불집회나 음악축제 등 다양한 문화활동과 항의 전화 걸기, 시청 앞 집회, 공청회 등을 조직하여 2003년 서울시의 공사 유보 결정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는 마을축제를 열었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던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이러한 주민자치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이를 주도할 단체로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가 결성되었고, 2005년에는 정부의 시범사업으로 소출력 마을 방송국 ‘마포FM’이 만들어졌다. 생협 조합원이 만든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 부엌’,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자동차 정비소 ‘차병원’등도 이 때 만들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4년 9월 마을학교를 표방한 ‘성미산학교’가 개교하였고, 이듬해 건물이 완공되어 초·중·고등학교 신입생을 받았다.
2. 마을기업에 대한 이해
선생님은 마을기업을 ‘출자와 자원조달’, ‘운영과 마을고용’, ‘이용과 확보된 시장’, 이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해주셨다. 우선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한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관심이 많은 사람은 많은 구좌를 신청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만 신청해 돈을 출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주고 끝나는 기부와는 다르다. (투자의 개념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곧 출자자이고, 출자자가 곧 주인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마을기업은 ‘하고 싶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기가 사는 마을 안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노인들에게는 큰 메리트일 것이다.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가정을 돌보는 주부들이나 은퇴자분들이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마을기업의 역할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을기업은 ‘확보된 시장’을 가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곧 소비자이고, 마을에 사는 이웃들이다. 그들은 또한 가게에 어느 정도 출자를 한 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깐깐한 소비자가 되기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업의 발전을 바라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소비자층이 된다. 등가교환과 경쟁, 마케팅 공략 등이 떠오르는 일반 기업의 이미지와는 다른 점이다.
3. 수업에서 나온 질문들
서울시는 과연 지속적인 마을 만들기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시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의 어려움은 없을까? 시간과 자원이 풍부한 중산층 이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까지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미산마을이 가진 특수성과 보편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4. 간단한 소감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세계평화’나 ‘사회개혁’과 같은 거창한 구호로부터 출발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합리적인 조건에서 기르고자 한 노력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공권력에 의해 불합리하게 침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온몸을 다해 지켜내었다. 이러한 시도와 행동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적 문화와 방식이 옳지 않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왔다. 누군가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상상을 할 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어쩌면 사회 변화는 항상 가장 가까운 곳으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려고 할 때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회학도로서 항상 큰 그림과 구조를 보려고 하고, 책으로부터 익힌 일상적이지 않은 개념들을 쓰려다보니 글에는 거품이 끼어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나도 ‘지켜보고 감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몸을 직접 움직여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몸담은 학교, 학과에서조차 작게나마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망설여진다.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아직 살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기에 내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보호막과 핑계들이 있다. 선생님은 분명 희망찬 마을 만들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저리주저리 개인적으로 했던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