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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의 이해Ⅱ] 7강, 유교와 신유학
오늘은 지난번의 유교 강의에 이어 공자를 마저 배우고, 차례로 맹자, 신유학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 말마따나 드라마가 제일 중요한 장면 직전에 끝나며 다음 화를 궁금하게 하듯, 도교 맛보기도 살짝.
1. 공자의 의(義)와 맹자의 사양지심(辭讓之心)
공자가 말한 ‘의’는 옳은 일이면 상관하지 않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득을 추구하는 태도인 ‘이’와 대조되는 개념이죠. 교수님께서는 요즘은 다들 ‘이’를 따져서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요즘 말로 바꾸면 ‘경제’잖아요.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제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이’를 따지는 데 익숙한 나머지 그 폐해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생각하면 경우에 상관없이 자연히 ‘의’가 상하게 됩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이치를 나무 베는 것에 비유해서 풀어주셨는데 참 잘 와 닿더라고요.
맹자 또한 양혜왕이 나라에 무엇이 이로울지 말해 달라 하자 ‘왜 이를 말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왕이 이를 말하면 신하도, 백성도 할 것 없이 이를 추구하게 될 것이고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라면서요. 이러한 유교 사상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인을 가장 천하게 보았던 것이고, ‘이’를 추구하는 자는 도둑이라는 말까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시민, 공무원, 대통령 할 것 없이 ‘이’를 말하지, ‘의’를 말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교수님께서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은 남의 나라, 내 나라 할 것 없이 나라를 훔쳐 먹고, 성직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훔쳐서 먹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공자는 “언제나 사람의 인격을 목적으로 대하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했거늘 이 세상에는 물질을 갖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일이 너무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오늘날의 사양지심이 드문 세태 또한 ‘이’를 추구하는 태도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양지심은 유교에서 중시되는 맹자의 '사단'의 세 번째 덕목입니다. 사양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죠.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에는 이제 사양지심이 없다며 아는 사람끼리만 양보하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남을 모르고, 내 인격은 뒷전으로 한 채 이익 챙기는 데 급급한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에서는 양보와 사양을 기대하기가 힘들겠죠.
2. 고래도 춤추게 하는 성선설, 노력하도록 채찍질해주는 성악설
맹자는 성선설을 말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반대로 순자는 성악설을 가르치죠. 중학교 때 친구들과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놓고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교수님께서는 이 둘이 궁극적으로는 같은 바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소인에서 군자, 성인으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단지 변화를 위한 성선설의 방법과 성악설의 방법이 다른 겁니다. 맹자의 성선설은 ‘너는 군자의 기질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성인으로 거듭나거라’하면서 칭찬을 통해 동기부여를 합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너는 소인배에 불과하니 정신 차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위대한 성인이 되거라’는 식으로 자극하여 변화를 유도합니다. 오강남 교수님께서는 요즘의 트렌드는 맹자의 성선설에 가깝다고 하시네요. 제가 보기에도 기왕이면 좋은 말로 격려를 해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우리나라의 보배, 신유학
신유학은 유교 2탄이라기 보다는 불교, 도가 사상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거대한 종합 사상체계입니다. 수, 당대를 지나 송대에 와서 일종의 유교 부흥 운동처럼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우리가 신유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모았다고 하여 성학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만주족의 청 왕조가 들어서면서 신유학의 계보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대신 우리나라에서 주자학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신유학이 발전할 수 있었고, 현재 한국은 유교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생활 속에 유교 전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한국에 이렇게 기독교인이 많은 게 부끄러운 거다’라고 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우리의 유교를 놔두고 왜 남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는 거죠.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유교를 청산해야 할 악습처럼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남녀, 스승과 제자, 부모, 형제 등의 관계 간에 서열을 만든 것은 유교의 잘못된 형식주의입니다. 사실 유교는 ‘의’를 비롯하여 마음에 새기고, 머리에 담아두었다가 계속해서 꺼내보아야 할 좋은 가르침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신유학을 연구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부터도 그동안은 ‘유교’하면 고리타분하다거나 딱딱하다는 인상부터 떠올렸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유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강의 내용 중에서도 몇 가지만 추려서 후기를 썼습니다. 맹자의 다른 가르침들이나 신유학의 구체적인 내용, 도교 이야기를 빠뜨려 성에 차지는 않지만 간결한 후기도 괜찮지요? 사실 이 게 저의 마지막 후기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다음 주에 있을 마지막 강의에는 갈 수가 없어서요. 성대한 뒷풀이도 있을 텐데...... 씁쓸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도교를 마저 배우고 동학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니 다른 분들이 잘 들으신 뒤에 저 대신 후기 좀 올려주세요.ㅎㅎ
저의 굴곡의 2013년을 세계종교 강의로 어루만져주신 오강남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강의를 위해 힘쓰신 참여연대 분들, 함께 수업을 들은 다른 수강생 분들도 모두 수고하셨어요.
또 만나요. 언젠가, 어딘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