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세계 종교의 이해Ⅱ] 1강, 힌두교의 어제와 오늘
오강남 교수님의 세계 종교의 이해 동양종교 편 그 첫 시간.
개인적으로 느티나무에서 듣는 첫 강연이라 머리카락 끝부터 발톱까지 예민하게 감각을 살려놓은 참이었다.
덕분에 '역시 참여연대는 뭔가 다르구나.'하는 점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먼저 간식! 오늘은 간사님들이 손수 맛있는 김밥을 사오셨다.
간식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매 강연마다 조별로 간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간식을 먹다가 들키면 선생님께 많이 혼나던 것과 대조적이다.^^
둘째는 환경에 대한 배려! 김밥은 뻥튀기 그릇에 담아먹고, 종이컵 대신 사기컵이 정수기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런 건 대학교 엠티문화에서도 좀 배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마지막은 느티나무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 정말 다들 느티나무 그늘 아래 편히 쉬시러 오신 분들 처럼 맑고 진중한 기운을 담고 계셨다. 나도 덩달아 산뜻해지는 느낌 라라라라~!
은은한 기품을 가지신 부원장님의 오프닝에서는 도종환 시인의 '복숭아나무'를 함께 읽는 시간을 보냈다.
오강남 선생님과 함께 동양 종교를 공부하며 지나치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 내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강의는 크게 두 파트의 내용을 다루었는데,
첫날이니 만큼 종교학과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첫째, 힌두교 중 고전힌두교에 대한 설명이 둘째였다. 여기에서는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만을 정리해보았다. 마치 수업 필기하듯 교수님의 말씀을 다 노트북에 받아적었더니 교수님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강의노트가 되었었다.
그래서 다 정리해놓고 절반 정도를 지웠더니 이만큼이 나왔다. 하하!
△세계종교의 이해 1강 - 신영수님 한 마디 사진 전보임
1. 왜 이웃종교를 알아보려는가?
종교학에서는 비교가 핵심적이어서 종교학 그 자체를 비교종교학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내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알아야 하는 건지 오강남 교수님께서는 네 가지 이유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내 종교를 더욱 깊이 알기 위해서이다. 괴테는 "한 가지 언어만 아는 사람은 자기 언어도 모른다"고 말했다. 종교학의 창시자인 맥스 뮐러(Max Muller)는 이 말이 언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모든 지식은 관계에서 시작하여 비교에 근거한다. 교수님은 이를 연필에 빗대어 설명하셨다. 우리는 연필을 길다고 하지만 연필은 무엇과 비교해서 길 뿐이다. 기차와 비교한다면 연필은 짧은 것이 된다. 우리는 이 연필이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와 비교했을 때만이 내 종교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내 이웃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요즘은 다문화 시대인 만큼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그런데 세속화되어있다거나 종교가 없다는 것도 결국은 종교적 태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종교는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습관, 성격, 말투 같은 것들을 파악하듯 그 사람의 종교적 심성, 종교적 마음가짐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즉 종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단으로, 상대방을 정말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한 이해 역시 아주 중요해지는 것이다.
셋째, 인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웃 종교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정의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적인 인간 뿐만 아니라 산업시대에는 호모 파베르(Homo fabre)라 하여 공작하는 인간이 중시됐으며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심볼리쿠스(homo symbolicus)는 상징체계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인간의 정의에 쓰인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도 지능이 있고, 연장을 만들며, 놀이를 좋아하고, 상징 체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것들 보다도 인간만이 보유한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종교가 없는 곳이 없고 세계 어디를 봐도 종교를 가진 동물은 없다. 결국 인간은 호모 릴리지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적인 인간으로 정의내려지며 우리는 인간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를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이웃 종교를 공부해야 한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신학자 한스큉은 저서 <On being a Christian>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종교 간의 평화가 없다. 종교 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가 없다." 서로를 이해를 하지 못한 종교들이 전쟁을 심화시키는 사례가 많아서 나온 말인데, 올해에 새로 나온 한스큉의 책에는 이 말 뒤에 한 구절이 덧붙여졌다고 한다. "이웃종교에 대한 기초적 연구 없이는 종교 간의 대화가 없다."
즉 이웃종교에 대한 연구->종교 간의 대화->종교 간의 평화->세계 평화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종교 공부는 세계평화를 향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2. 종교란 무엇인가?
초창기 종교학의 대가였던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종교의 신비성에 주목하여 압도적이고 두려움을 일으키면서도 황홀하고 매혹적인 경험(mysterium trememdum et fascinosum)으로 종교를 정의했다. 20세기의 대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를 궁극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누군가가 무엇에 대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어떤 사람이 시간 지키는 일에 가장 관심을 갖는다면 puncutuality가 그의 종교이다. 더 나아가 그는 관심의 대상에 따라 종교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섹스, 돈, 권력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가짜종교(pseudo-religion), 공산주의, 나치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주의(ism)가 궁극 관심이 되는 것은 유사종교(quasi-religion), 마지막으로 신을 궁극 관심으로 두는 것이 궁극종교라고 불렀다.
오강남 교수님께서도 교수님만의 종교 정의를 내리신다. '궁극 실재와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변화의 체험, 그와 함께 오는 자유'.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진리가 한번에 얻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 진리는 알게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추구될 수 밖에 없으므로 궁극적인 실재를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또한 변화의 체험이라는 건 '특수인식능력의 활성화를 통해 참나를 발견'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밖으로 나가면 개구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이미 그 세계를 본 개구리는 옛날의 개구리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깨달은 개구리가 된다. 개구리의 의식이 변화하면서 개구리 자신이 변한 것이고, 이제 개구리는 더 넓은 세상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의식의 변화는 특수인식능력을 활성화를 초래하여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도 볼 수 있게 된다. '돈만이 최고다'라는 의식에서 벗어나면 나도 바뀌고 돈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면서 사물의 있는 그대로(진여 또는 실상)를 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변화해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 바꿔 말해 참나의 발견을 통한 자유가 바로 종교이다.
3. 힌두교(Hinduisms)
소를 신성시 여긴다는 것 이외엔 힌두교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드디어 떨쳐버린 시간이었다. 힌두교는 기독교처럼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가지각색의 종파들이 있기에 's'를 붙여준다고 한다. 비율적으로 가장 힌두교가 많은 곳은 네팔이고, 사실 인도(India)는 힌두와 어원이 같긴 하지만 상당수 인도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힌두교의 기원은 4대 문명 중 하나이며 이집트 문명보다도 발달한 문명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인더스 문명(Indus Valley Civilization, 기원전 2~3000년 전)에 있다. 인더스 문명에서 흥미로운 점은 풍요의 여신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샥티라고 하여 여성성을 남성성만큼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힌두교에는 남성신이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여성신이 꼭 있다고 한다. 다른 종교들이 상당히 남성중심적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정말 반가운 대목이었다.
고전 힌두교에는 <리그 베다(Rig Veda)>, <우파니샤드(Upanishads)>, <마누 법도론(The Law of Manu)>, <바그바드 기타(Bhagavad Gita)> 이렇게 네 경전이 중요하다.
3-1. 리그 베다
먼저 <리그 베다>는 기원전 15세기 경 침공한 아리안족이 가져온 베다 종교의 네 가지 경 중 하나이다. 우리 아빠께서 한창 열심히 하시던 오일 풀링이 아타르바 베다에 있는 의학이라고 하셨다. (깜놀.) 리그 베다에는 태양은 태양신으로, 달은 달의 신으로, 불은 불의 신으로 76개의 자연물을 인격화시킨 76명의 신이 등장한다. 그 중 인드라 신이 가장 중요해서 리그 베다에 나오는 1000여개의 노래 중 250개는 폭풍의 신인 인드라에게 바쳐진 것이다. 왜 폭풍의 신이 가장 중시된걸까? 우스갯소리로 인도에는 더운 계절, 더 더운 계절, 진짜 더운 계절의 세 계절이 있다고 한다. 교수님 경험으로는 진짜 더운 계절에 비가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파리, 모기, 쥐가 기승을 부려 하루 하루가 끔찍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쁜 신의 배를 찔러서 나온 피로 비를 내린다는 폭풍의 신 인드라가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리그 베다는 표층 종교에 속해서 신에게 현실적인 번영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 다른 말로 탄원 기도, 또는 기복을 가르친다. 또한 리그 베다는 단일신관(henotheism)이라고 하는데, 76개의 신이 다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 중 제일 중요한 걸 인드라신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유대교 같은 서양 종교들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유일신관(monotheism)을 가진 반면 힌두교는 다른 신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한 신을 가장 존경하는 것이다.
3-2.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9~7세기 경 구르('선생'의 인도 말)와 제자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주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토론한 것을 대화체로 옮긴 문헌이다. 오강남 교수님은 우파니샤드를 '힌두교에서 기가 막힌 것'이라 표현하셨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를 공부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우리를 고양해주는 공부는 온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힌두교와 불교를 좋아했던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은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명언을 남겼으며 니체하고 친했던 바그너 역시 작품에 동양 종교에 대한 영향을 듬뿍 담게 되었다는 후일담은 덤. 더 궁금한 분들은 J. J. Clarke의 <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Oriental Enlightenment)를 읽으시면 된다.
기도가 중요하다고 했던 리그 베다와 달리 우파니샤드의 기본 가르침은 깨달음으로, 브라흐만(Brahman)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궁극 실재(ultimate reality)라는 뜻으로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그대로를 말한다. '그래서 우주의 궁극 실재인 브라흐만이 뭔데?'에 대한 대답이 우파니샤드에는 단 한 마디, 'neti-neti'로 축약된다. neti-neti는 산스크리트어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절대는 어떤 것으로도, 말로도 제한될 수 없으므로 말을 갖다 붙일 수 없다. 문자는 어쩔 수 없이 제한을 만들고, 따라서 말로 표현한 건 절대 진리가 아니므로 우파니샤드와 같은 심층 종교는 문자주의에 매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도덕경의 제일 첫 구절에도 도가도비상도(도라고 할수있는 것은 진짜 도가 아니다.), 명가명비상명(이름을 붙여버리면 그것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이라 하여 똑같은 얘기가 나온다. 이러한 접근을 부정 신학(negative theology, apopathic theology)이라고 하여 서양 종교에도 "하느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다. 정말 하느님을 안다면 하느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모든 종교와 사상 밑바닥에 흐르는 기본적 철학의 특징 첫 번째로 꼽은 것이 'Tat tvam asi(너는 바로 그것이다).'이다. 우리말로는 '범아일여', 도덕경에는 '지자불언 언자불지(아는 사람은 말하지 못하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동학에는 '시천주(내 안에 한울님이 있다.)', '인내천(나와 하느님이 같다.)', '사인여천(따라서 내 이웃도 하느님이다. 이웃 대하기를 하느님 대하듯 하라.)'으로 나타나 있다. 우파니샤드에서도 'aham brahman asmi(내가 브라흐만이다).'라는 말로 진정한 브라흐만은 내 속에 있으며 브라흐만과 내가 하나라고 말한다. 심오해 보이지만 심오하다.
3-3. 마누 법도론
우파니샤드가 내 안에 있는 브라흐만을 깨닫는 것을 가르친다면 마누 법도론은 법에 충실할 것을 가르치는 실천적인 책이다. 이 마누 법도론 안에 사상제도가 있어 우리가 잘 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계급이 나오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마누 법도론에서는 각자 계급마다 나온 곳이 다르다며 계급을 정당화하고, 계급의 역할 충실히 따를 것을 요구한다. 마누법도론은 또한 삶을 네 단계(학생-재가자-숲속거주자-산야신)로 나누며 삶의 목적도 카마(즐거움), 재물, 의무, 목샤(해탈)의 네 가지로 나눈다. 특히 카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성적 즐거움으로 보는데, 이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바로 카마 수트라라고. 카마와 재물을 넘어서면 삶의 세 번째 목적인 의무에 다다르게 되는데 심지어 창녀에게도 창녀로서 최선을 다하라고 한단다. 끝으로 마지막 삶의 목적인 목샤는 윤회의 고리에서 튀어나오는 것으로 불교의 니르바나와 같은 개념이다.
꼭 카마나 재물을 넘어서야 좋은 건가 내가 스스로에게 따져물으려는 순간, 교수님께서는 참고로 키에르케고르 실존의 삼단계가 마누 법도론의 삶의 목적 네 단계와 비슷하다 하여 설명해주셨다. 첫 단계인 심미적 단계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쾌락은 결국 자신이 쾌락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으므로 그 게 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아, 카마나 재물만을 추구하는 것은 나를 잃는 길이구나'하고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키에르케고르 실존의 두 번째 단계는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윤리적 단계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윤리에 민감해질수록 모든 일에 윤리적일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러면 마지막인 종교적 도약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세계종교의 이해 1강 사진 전보임
교수님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얻으신 지혜와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지식에 빠져있으니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사실 교수님은 종교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계시지만 내가 보기엔 언어학이나 철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종교의 가치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한 때는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렇듯 교수님처럼 두루 세상을 둘러보고, 깊게 공부하신 분들이 종교를 사랑하시고, 나같은 애송이가 종교를 경시하고 있으니 마땅히 종교를 배우고 더 이해하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애초에 오강남 교수님의 강좌를 듣고자 마음 먹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수업에서는 또 어떤 종교들의 어떤 이야기들에게 매혹당하게 될 지 기대가 된다.
후기 | 장슬기라(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