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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5강 (5.02) 서재필과 윤치호
주진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명제 중 하나는 한 인물을 어떻게 하나의 수식어로만 규정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우리들 대부분은 ‘무슨 사건이나 단체하면 누구’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에 단순했던 인물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은 평면그림이 입체로 변하듯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특히나 ‘독립운동가’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던 서재필이 ‘필립 제이슨’이 되어 살아간 삶은 너무 놀라웠다. 갑신정병에서 행동파를 맡았던 그는 정변실패 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냉대를 받았고 미국으로 떠나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또한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며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가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김홍집 정권의 요청에 따라 중추원 고문으로 취임되었고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를 하게 된다, 더욱이 모든 비용과 건물을 조선정부가 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 신문사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등록하였으며 자신의 주택구입비까지 받았다. 독립운동을 정치활동보다는 경제활동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등 민족지도자가 지닌 희생적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은 식민지배에 대해 순응하기를 권유 하였으며 식민지배의 책임은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 때문이라고 하였다. 3·1운동 후에는 태평양군축회의에 조선 문제 상정을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러한 그를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윤치호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그는 개화파의 막내로써 미 공사관 통역관을 맡았으며 일본과 상하이,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을 때에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민족의 역량을 기르고 민족성을 개조하기 위한 계몽운동에 힘썼다.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열강이 조선을 도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을 위한 활동의사는 없었다. 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있어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자가 되는 길보다는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2시간 반 수업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수업 후기를 마친다.
참고자료
선택역사를 갈랐다. 서재필과 윤치호 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02202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