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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 2강 - 유대교 ①
세계 종교의 이해 : 2강 (3/12) 유대교Ⅰ
나는 오강남 교수님의 책을 매우매우 좋아해서 강좌를 신청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개신교 교회에서 출석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해) 유달리 배타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배우고 키워왔다. 그래서 나는 세계의 다양한 종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평화와 비폭력의 정신으로 모든 종교인,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때문에 4월 23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는 오강남님의 강의와, 교재인 「세계 종교 둘러보기」, 집단지성의 아름다운 힘을 확인시켜줄 모든 수강생 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1. 시 낭송, 나눔의 시간
나는 지난 주 화요일 첫 시간을 결석했다. 낯선 수강생 사이에 둘러싸여 강의를 들었다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테다. 그런데 (어떤 분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다같이 시를 읽고 가슴에 와닿은 구절을 서로 이야기 나누는 오프닝 시간을 가졌다. 앞자리 어르신들(?)과 옆자리 여대생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느낌을 공유했다. 강의에 앞서 “이나단”이라는 여인숙에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던 손님들이 모두 퇴실하는 기분이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2. 출애굽, 이것이야말로 유대교의 시작!!
오강남 교수님은 유대인들의 경전인 ‘Tanakh’에 대한 언급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유대인(고대 히브리인)들의 출애굽, 또는 탈출기(Exodus)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셨다. 교회학교에서 배우거나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보았던 ‘모세’와 갈라지는 홍해 이야기는 내게 친숙했다. 그러나 유대민족이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기까지 오랜 광야생활 겪는 동안, 그들 공동체에게 새로운 종교-부족신관, 십계명-헌법, 자의식-택한 백성 등 엄청난 결과물들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이야말로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유대민족과 유대교의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나보다.
오교수님은 출애굽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서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창세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은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이삭을 제물로 받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동안 나는 신에게 자기 아들까지도 희생할 수 있다는 엄청난 신앙심에 대한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다. 오교수님은 ‘십대 이상의 자녀는 더 이상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제2의 탯줄을 끊어라!’라는 메시지로 모리아산 사건을 풀어냈다. 대오각성하는 순간이었다. 하하핫!(아직 자녀를 낳아 길러보지는 못해서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만...)
3. 역사비평과 문자주의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오해하고 있듯이 모세오경의 저자는 ‘모세’라는 자연인 한 사람이 아니다. 모세오경은 서로 다른 저자에 의해 기록된 네 가지 문서의 적당한 짜깁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창세기 1장과 2장 후반 사이의 신에 대한 이미지 및 급격한 분위기 변화가 하나의 텍스트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성서가 그 몇몇의 저자들이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일관된 논리로 적은 것임을 믿는 것은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서는 성서는 우리에게 정보를 주기위한 백과사전이라기보다, 인간의 내적 변혁을 위한 소설에 가깝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좋은 말씀이다.
위대한 신학자 폴틸리히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성서를 진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를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다.”라며, 성서에 써있는 문자 그대로를 믿고,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창조론과 배타적인 구원관을 고집하며, 나아가 타종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성서를 삼는 이들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문자주의가 나타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이러한 관점을 고수함으로써 종교인들이 얻는 유익은 도대체 무엇인지 하는 궁금증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4. 에필로그
여러 가지 해석을 통해,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일이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잘 들어맞는구나 하며 감탄하다보니 어느새 강의와 질문시간이 모두 지났다. 다음 시간에는 이사야 선지자 이후로, (역사적으로는 유대민족의 바벨론 포로시기 이후로) 부족신관에서 보편신관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으로부터 새롭게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다. 부족신관이나 문자주의는 결국 냐냐주의, 진영논리로 이어지게 하는 초석인양 느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잘 배우고, 익혀야겠다.
글 : 이나단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