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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5강, 나의 삶은 진보적인가?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5강(10/22)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② 2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③ 3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③ 4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나의 삶은 진보적인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가을, 다섯 번에 걸친 만남을 통해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진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사회에 떠도는 수많은 진보 담론들 중에 어떤 것이 진보이고 어떤 것이 진보의 탈을 쓴 보수인지를! 우리는 만남이 이어질수록 ‘멘붕’에 빠져들었고 드디어 마지막 수업, 우리는 “나의 삶은 진보적인가?” 라는 질문 앞에 섰습니다.
마지막 강의답게 세 분의 선생님이 오셨는데요, 각자 젊음, 돈, 예술이 어떻게 진보와 만났는지 재밌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떤 진보와 맞닿아 있을까요?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 불량소녀 백서’ 등 김현진 선생님은 여러 저작을 통해 젊음과 진보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습니다. “진보적 매체에 지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를 진보적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매체와 나의 글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는 김 선생님은 진보가 무엇인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다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비위에 맞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요.
김현진 선생님이 처음으로 삐딱(?)하게 나가게 된 계기는 대안학교 1세대인 자신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장선생님과 대판 싸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어떤 것이 내 비위를 상하게 하는지, 그것을 면밀히 검토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요. 한예종 사태 때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러한 고민은 홍대청소노동자 문제, 고공농성장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김현진 선생님은 RT진보, 입진보를 경계하자고 합니다. 내 자식이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내 자식만큼은 서울대에 다니는 진보적인 청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말과 생각이 따로 노는 입진보가 될 뿐이라고요. 진보란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을 듣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각오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에듀머니, 대부업체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이 이름의 사회적 기업은 말 그대로 ‘돈을 가르칩니다.’ 돈, 엄밀히 얘기하면 ‘돈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죠.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돈을 주체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대표인 제윤경 선생님은 신용카드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광고를 가급적 멀리하고, 보게 되면 욕을 하라고도 합니다. 신용카드나 광고는 사람들이 필요와 선호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선 충동적으로 그 물건을 구매하게 함으로써 결국 제돈 쓰고 유쾌하지도 않은 소비를 하게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돈을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신을 유쾌하게 하는 소비를 오히려 최우선순위에 두라고 합니다. 저축을 하되 자산을 형성하지 않는 저축을 하라고도 하십니다.
제 선생님이 만난 한 택시기사 분은 자신도 사업이 망해서 노숙을 하다 택시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승객들이 동전까지 탈탈 털어 택시를 타는 모습을 보고 짠한 마음이 들어서 이와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시더랍니다. 진보란 함께 공감하고 더불어 살며 분노하고 그래서 뭔가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실천을 위해서는 쫄지 말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겠죠.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예사롭지 않은 김강 선생님은 강의 내내 혁명가에 어울릴 법한 엄청난 스케일의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아님 말고!”를 외칩니다. 문래동 예술인 마을에서 오신 김강 선생님은 진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다만 “문래동에 처음 들어갈 때 우리 예술인들은 가난했고, 저기 빈 공간이 있으니 한번 들어가보자. 안되면 말고!”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문래동의 빈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그러니까 남의 건물에 불법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점거연습까지 하는 철저한 이들은, 점잖은 윗분들이 보시기에는 정말 위험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수강생들조차도 “저래도 되나~” 싶었을 겁니다. 온 몸을 이용한 의사 표현은 물론이고, 주거권이나 공간의 확보 등을 위해 대사관 앞에서 침낭을 칭칭 감고 자면서 1인 시위를 한다거나, 캠핑카를 주거공간으로 개조해서 유쾌한 주장을 펼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만의 진보의 틀 안에 갇혀 유쾌한 저항의 상상력을 자꾸만 상식 또는 법체계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저질러 놓고 보는 거죠, 안되면 말고! 그게 원래 늘 ‘합리’를 얘기하는 ‘보수’와는 다른, ‘진보’의 무기 아니었나요?
진보에 대한 다섯 번의 강의를 듣고나니, 언젠가 혜민스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들은 이외수 선생님의 ‘존버 정신’에 대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이외수 선생님이 혜민 스님을 만나 “우리에겐 존버 정신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답니다. 혜민 스님은 “존버 정신이 뭐죠?” 라고 물었고 이외수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스님, 존버 정신은 ‘존나게 버티는 정신’입니다.”라고요.
진보들의 ‘멘붕 탈출’을 위한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납니다. 누군가는 그 답을 찾고 누군가는 여전히 멘붕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하나의 깨달음은 얻은 것 같습니다. 진보의 길은 한계도 없고 끝도 없다. 다만 늘 고민하고, 버티며, 계속해서 걸어하는 것 뿐이라고요.
후기 글 : 자원활동가 김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