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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정치와 현대사, 그리고 주체> 4강
<인문정치와 현대사, 그리고 주체> 4강은 "5.18 광주 항쟁과 저항주체"라는 제목으로 김정하 선생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벌써 4강이네요! 다음 강의가 마지막 강의입니다.
이후 편의를 위해 존대말은 생략하고 '-하다'체로 쓰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재현의 문제
재현은 현실 재구성 과정을 수반한다. 재구성 과정은 해석하는 주체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5.18 광주항쟁 또한 재현의 문제를 갖는다. 광주항쟁의 재현을 둘러싸고 많은 담론이 각축을 벌였으며, 다음에서 발펴볼 것이다.
국가 중심적 재현
국가 중심적 재현은 시민군의 형상에 주목한다. 먼저 사회 운동의 재현으로서 5.18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민중 항쟁이 아니라 혁명에서 5.18을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주 항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뉠 수 있는데, 5월 18일부터 21일/5월 21일부터 26일/5월 27일 “최후의 항전”이다. 마지막 시기인 5월 26일에는 “수습파”에 반대하면서 항전을 주장하는 “항전파”가 전체 조직을 장악하는데, 사회운동의 관점은 바로 이 항전파를 국가에 대항하는 대안국가 내지는 대항국가로 바라본다. 이들 시민군은 하나의 민중 권력이었으며, “임시 혁명 권력”이었으며 “광주 코뮌”이었다. 더욱이 항전파의 주체는 노동자 계급, 사회 하층민 등의 소외계층이었다는 점은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이 해석은 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급진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현실 문제 의식에 기인한다. 비록 광주항쟁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광주항쟁을 맑스주의의 복원과 연결지어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역사를 이념에 끼워 맞춘다는 비판에 의해 영향력을 상실했다.
사회 운동론의 뒤를 이은 해석은 바로 민주화운동론으로, 민주 정부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담론을 만들면서 재현된 것이다. 이 관점은 광주항쟁을 군부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바라봄으로써 사회 운동적 관점에서 강조했던 “새로운 국가”는 민주국가가 되므로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해석했던 광주항쟁의 반자본주의적 성격은 사라진다. 항쟁의 주체 또한 시민으로 일컬어지며 탈계급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등 저항성이 약화된다. 이후 광주 항쟁의 연구가 인권, 평화 등을 중심으로 정체화 된 측면이 있다.
주체 중심적 재현
사회 운동론 이후 침체된 저항적 면모를 보존하면서도 개념을 새로이 하는 가운데 등장한 이 관점은 광주 항쟁을 “새로운 주체의 탄생”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광주 항쟁은 “가난한 사람들의 잡색 부대”였던 다중이 직업, 신분,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초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이들은 기존 사회로부터 부여된 정체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서며 “유목민”으로 재탄생하는 것이었다. 기존 사회의 인칭은 사라지고 항쟁의 주체들은 “비인칭적” 존재가 되었다고 이 관점은 해석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가 중심적 재현에 대한 비판적 측면을 갖는다. 국가 중심적 재현은 광주 항쟁을 기존 국가 권력을 전복하고 새로운 민중 권력을 수립하는 행위로 해석하였다. 주체 중심적 재현은 이러한 국가 중심적 재현에 대해 권력의 중심만 바뀔 뿐 기존 질서는 그대로라는 점에서 이를 진정한 혁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주체 중심적 재현은 기존 질서마저도 새롭게 의미부여하는 시도로 광주 항쟁을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광주 항쟁민들을 “초인” “영웅”으로 표현함으로써 광주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과장하는 면이 있다. 도청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사람들조차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면모를 이 관점은 간과하는 면이 있다.
주체 구성과 사건
주체의 구성 양상은 정체화(identification), 반정체화(counter-identification), 탈정체화(dis-identification)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정체화는 주체화라 할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버지라는 역할기대에 맞추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식이다. 반정체화란 그러한 위치 부여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히피, 6,70년 대 문화 운동 등의 하위문화 및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한다. 탈정체화란 주어진 위치를 벗어나 자기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이루는 것이다. 바로 이 탈정체화를 행하는 것이 저항주체라 할 수 있다 (랑시에르). 탈정체화의 전개는 두 가지 정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상징계(이미 주어진 의미체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즉 주어진 주체 위치 자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그 하나이며, 주체 위치 자체보다는 주체 위치가 담고 있는 의미, 기능들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그렇다면 5.18에서 저항주체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자신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군대가 어떻게!”라는 분노에 찬 시민들은 국민으로 과잉정체된 (over-identified) 상태였다 할 수 있으며, 도청에서 최후의 항전 참여자들은 새롭게 형성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탈정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은 “상징 질서의 파열”이다. 사건은 막 발생한 상황에서는 충격이지만 사회적으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짐에 따라 기존 상징 질서로 포섭된다. 사건을 상징 질서로 포섭하는 과정, 의미부여하는 과정에서 기존 상징 질서를 재구성하게 되고, 이는 주어진 주체-위치의 탈 정체화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웠던 사건이 점차 사회적으로 의미 부여됨에 따라 그 의미를 부여하는 기존 사회 질서 또한 재구성되고 기존 의미에 균열이 간다는 것이다. 5.18은 처음에는 “빨갱이 폭도”라 규정되었으나 이는 맞지 않는 위치지음이었고, 이에 새로운 상징의 필요성이 제기된 가운데 기존 주체 위치를 파열시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인문정치와 주체
위까지가 5.18과 관련된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고, 마지막에는 강의 제목이기도 한 “인문 정치와 주체”의 뜻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서 “주체”는 누구이고 “인문정치”는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였다. 우선 배제된 사람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배제와 보편의 동일성을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는 “추방된 자, 배제된 자, 몫없는 자, 아무것도 없는자”라 할 수 있으며 인문정치는 이들 “‘추방된 자의 시선’(이명원)으로 보고 듣고 행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배제된 자들(“서발턴”)의 문제는 구조적 힘을 결여한다는 것으로, 이들이 연합적 힘을 만들어 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알 수 있도록 하고 부여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나가며
5.18 광주항쟁 하면 떠오르는 것은 민주화 운동인데, 5.18 광주항쟁의 재현 양상들의 변화를 보니 흥미로웠다. 시민군을 새로운 혁명권력으로 보고 코뮌으로까지 간주하는 사회 운동 재현 관점이나 새로운 질서를 가지는 초인으로 바라보는 주체 중심적 재현까지. 하나하나 각 관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솔직히 말하자면 “해석에 저항”하고픈 심정도 있었다. 거대 담론이 사람들을 가려버리고, 사람들의 생동감을 앗아버리는 느낌이었다. 좀 격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거대 담론 내지는 이념의 도구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5.18이라는 사건이 어떤 식으로 재현되어 왔고, 어떤 식으로 의미부여 되어왔는가를 살펴보고, 이 사건에서 주체들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훑어보았던 이 강의는 흥미로웠다.
아울러 인문정치와 주체에 대한 설명은 비록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과는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설명을 들으니 서로 다른 선생님들의, 서로 다른 강의 전반의 기저에 깔린 문제의식이 좀 더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정말 주변부 존재들 예컨대 ‘폐지 줍는 할머니’와 같은 분들의 몫은 어떻게 주장될 수 있을까.
자원활동가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