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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근대한국인..> 3강 후기
7월 8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근대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근대 한반도인들의 러시아, 중국, 유럽 소국관에 관한 의식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재 남한인들의 자아의식에 각종 문제들을 제기해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3강 <유럽소국관>의 정리 후기는 자원활동가 신다음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왜 유럽 소국관인가?
근대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 이지많은 않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 제일 먼저 서울의 공사관을 철수 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체로 일본을 지지하는 쪽이었고, 한국의 식민통치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마음에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30년대 후반,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대미항쟁을 준비하던 때부터는 미국에 대한 비판이 친일지식인에게 거의 의무화 되어 있었다. 주로 미국의 인디언 학살이나, 흑인 차별, 43년 44년 무차별 폭격, 이런 것들이 비판 대상이었다.
박노자 교수
한국전쟁 이후 미군정 때부터 미국에 대한 비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해졌지만 이미 구한말 때부터 미국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는 것을 위에서 알 수 있다. 지금도 미국에 대한 전적인 찬양은 극우주의자들 아니면 잘 없다.
그런데, 유럽에 대한 인식은 좀 다르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사람들은 신식민주의 정책, 아랍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보다는 똘레랑스(관용)를 먼저 떠올린다. 인권, 평등, 박애 등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덴마크나 노르웨이 같은 북부소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긍정일방에 가깝다. 노르웨이를 생각하면 복지국가, 평등 재분배 이런 것들이 떠오르고, 핀란드는 교육제도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핀란드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징용제를 시행하며, 철저히 군사화 된 나라라는 것은 잘 모른다.
축약해서 말하자만 미국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균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에 대한 시각은 거의 찬양적인 태도로 일관된다. 이것의 시작은 무엇인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짝사랑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유럽 소국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유럽의 나라들은 어떠 의미인가?
이광수는 조선민족개조론을 주장했는데, 이 민족개조의 궁극적 목표는 앵글로색슨족으로의 개조, 성실, 자유지향, 책임감, 협동성과 독립심. 이 모든 덕목을 완벽히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에 대한 찬양적 묘사는 극우파 이광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상층인 조선 지식인에게는 보편적 감정이었다. 박승철은 1920년대에 유학을 다녀 왔는데, 그가 본 영국신사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이런 현상은 개화기 때부터 나타난다. 유럽영웅 전기는 조선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이었다. 특히 나폴레옹 전기는 최남선이 발행했던 잡지에 1호부터 연재되었다. 조선의 중산층에게는 유럽의 중산층이 모델이 되는 분위기였다.
유럽에 대한 조선인의 감정은 단연 압도감이었다. 박승철은 처음 파리에 방문 했을 때 “집이 아름답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작은 차들이 소리를 안내고 달리고 있다. 화려하고 다채롭다”고 묘사했다.
박노자 교수
그렇다면 유럽에 대한 압도감, 모범으로서의 이미지 말고 다른 시각도 있었는가.
세기말적 유럽, 퇴폐적인 이미지의 시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문명에 대한 환상이 일부분 깨지고, 유럽민족의 타락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었다. 이런 시각을 꼭 부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식민지 조선 중산층은 유럽의 에로티즘이 섞인 센세이션적인 이야기를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였다.
나혜석은 파리에 다녀와서 쓴 기행문에서 ‘혼전동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기술하기도 했으나, ‘프랑스 여성에 대한 활동성, 전문성, 직업성 등을 본받아 조선의 여성들도 신여성으로 변화하자’고 전했다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도 따지고 보면 유럽의 대국에 관계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조선인의 유럽소국관
조선인들에게 영국이나 독일은 대국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유럽의 대국처럼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소국에 대해서는 대체로 우리도 닮아 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국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못해 긍정일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개화기 1888년대부터 유럽 소국이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모델로 제시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때부터 조선에는 유럽 소국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이야기가 소개 되고, 소국에 대한 테마가 조선담론으로 제시 되곤 했다.
하지만 개화기 때에는 유럽 소국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이 소개 되는 수준이었고, 본격적으로는 식민지 시대에 독립을 찾은 폴란드와 아일랜드가 조선에 가장 근접한 모범으로 제시 되곤 했다.
북부 소국에 대한 인식
유럽소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불대칭성이 명확했다. 북유럽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조선에 왕래 할 수 있었고, 조선에 대한 기록도 남길 수 있었던 반면, 조선인이 북유럽게 가는 것은 극히 어려웠다.
개화기 때에는 스웨덴 기자들이 조선에 방문하여 자세한 기사를 쓰기도 하고, 1890년대 노르웨이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 했다. 덴마크 기술자들은 조선에 기술을 전하기도 하였지만, 조선인이 가서 활동을 하거나, 기록을 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고 할 수 있다.
2-30년대에야 비로소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갈 수 있었는데, 조선인들이 느낀 것은 강력한 압도감이었다. 사회적 조직성 안정, 단결, 기술, 문명과 자연의 균형 등 모든 측면에서 소국이지만 문명적이라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
덴마크의 농업, 농민조합 이런 것들은 조선인들, 특히 개혁파나 민족주의자들에게 강력하게 와 닿았다. 특히 독일어권의 압도적 영향 안에서도 민족 언어, 정신을 고수했다는 측면이 보수적인 기독교 우파들에게 어필했고 자신의 언어와 민족성을 계승하며 나라를 잘 보존한 측면에서 덴마크는 꿈의 나라, 문명의 최상국이라고 느꼈다.
박승철은 덴마크에 다녀와서, 그 당시 가난한 독일에 비해 덴마크는 “부유하다, 자동차도 많다, 안정적이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특히 덴마크를 여행한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농업의 효율성, 생산성에 놀라고, 덴마크의 농업 기술, 국민조합, 소농경제에 도움이 되는 조합, 농업개량 등을 벤치마킹 하고자 한 것들이 많이 있다.
스웨덴은 조선유학생들이 잘 가는 나라였다. 최영숙은 스웨덴을 보고 인간이 만든 최고의 사회로 표현했고, 돌아와서 스웨덴에 대해 “낙원에 다녀왔다.”고 극찬 할 정도로 스웨덴을 좋아했다.
안정됨, 편리함과 같은 인식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유럽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들이다. 유럽 북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의 ‘모델’로서의 위치가 강하다. 해방 이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의사들이 우리 나라에 많이 파견된 것긍정적인 인식이 더욱 강화된 계기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북부가 조선의 현실적 모델이었다면,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영국제국에서 독립을 되찾았다는 의미에서 조선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나라였다. 하지만 유럽의 소국들 중에도 에스토니아처럼 가난하고 불안정한 사회들은 조선이 벤치마킹 할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고 하고, 부유하지 않은 나라들은 배울 것이 없는 나라라고 치부하기도 하였다.
박노자 교수
마무리하자면, 대체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에 대한 긍정일변은 안정성, 조직성, 문명과 자연의 공생적 관계 등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형적으로 이런 유럽 소국과 우리를 비교하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강력한 농업이 있고,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농업사회였다고 해도 영국 독일같은 대국과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지형적 위치가 있다.
유럽 소국은 이를 이용하여 물질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20년대만 하더라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19세기 말부터 발전해온 강력한 노동운동의 기반이 다져져 있다. 민중운동이나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탄압대상이었던 조선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또한 자본과 노동의 타협이 동등한 세력 대 세력으로서 위치를 갖고 있다. 이 바탕에는 강력한 노동 운동이 받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전제 위에 복지국가가 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회를 유지해주는 안정망 등의 배경이 조선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런 차이는 간과되고, 보이는 이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