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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주의 복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복지?(복지국가 7강)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7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7강 보편주의 복지는 무책임한 퍼주기 복지인가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보편주의가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보편적’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불편한 말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서두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 손주들도 무상급식을 주어야 하는가?" 찬성하는 쪽도 이 지점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번 강의는 바로 이 부분에서 불편한 양 쪽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원칙은 무엇인가
참여연대에서 30여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두 달 여간 매주 세미나와 토론을 벌여 한국사회에서 보편주의 복지를 한다면 어떤 원칙들이 지켜져야 할 것인가를 논의한 바 있다. 그 결과 6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번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보장하는 복지국가이다.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계급과, 성, 학력, 거주지역 할 것 없이 시민으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 가져야 한다는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실질적 민주주의와 좋은 경제성장의 동반자인 복지국가이다. 최근 수치를 보면 97년 이후 빈곤과 불평등 수치가 97년 직전보다 훨씬 높다. 복지국가 하자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 이뤄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는 경제에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견인차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세 번째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국가이다. 일자리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이다. 경쟁하는 사회가 됐지만 태반이 백수이고, 일자리를 가진 청년의 태반은 88만원을 받는다.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결코 시장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문의 지표 보라. 기업의 규모와 투자 규모는 늘지만 고용지수는 좋은 기업일수록 줄어들고, 나쁜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네 번째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저소득층, 중산층이 함께하는 복지국가이다. 사실 한국에서 불안한 계층이 중산층이다. 몸 하나 믿고 노동력을 파는데 직업을 잃으면 바로 빈곤층으로 미끌어질 수 있다. 이에 대비한 사회서비스도 없다. 이들 중산층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이들 모두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섯번째 여성이 춤추는 복지국가이다. 한국사회는 지독히 성차별이 심하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남도에 불구하고 홑벌이 부부와 맞벌이 부부의 남성 가사노동 시간 차이는 2분여 밖에 안된다.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 강제되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남성도 돌봄에 참여하는 사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젠더’라는 측면이 중요한 원칙이다.
여섯째는 인간안보를 지키는 복지국가이다. 그동안은 외부의 위험만이 안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위협하는 것은 일상의 실업과 빈곤 등이다. 이같은 인간안보 지키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이 여섯가지 원칙이 참여연대가 올 하반기부터 진행할 복지국가 운동을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준다?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점은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로 나뉜다. 보편은 진보고 선별은 보수라는 이분법적 구조다. 사실 쉽게 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주는”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복지는 세 가지 선별기제를 가진다. 우선 65세 이상이냐, 아동이 있냐와 같은 인구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이어 기여여부이다. 국민연금 납부 정도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자산과 소득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한다. 돈 있고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선별원칙 중 어떤 것을 취하냐가 중요하다. 모든 복지 정책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가지거나 또는 세 가지를 조합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의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선별 할 경우 보편주의 복지, 마지막을 적용하면 잔여주의적 복지라고 한다.
선별원칙은 보편주의 복지 원칙의 반대가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는 잔여주의 복지이다. 보편주의 복지도 차이를 인정한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육아/보육 욕구 비용 들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단 돈이 많은 사람에겐 하루 세끼, 적은 사람에겐 두끼를 주는 것처럼 경제수준과 소득에 따라 기본적 욕구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 안한다. 자산조사와 소득에 따라 선별하는 잔여주의적 복지에 반대하는 것이다.
통상 선별주의는 원칙이 아니다. 선별적 잔여주의라고 부르는 게 맞다. 자산과 소득에 따라 정책대상에서 선별하는 이러한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별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대중화 되어 되돌리기 힘들지만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를 잘 구분해야 한다.
잔여주의적 선별주의 대 보편적 선별주의의 대립은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의 대립으로 가져갈 때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 입장은 무조건 주자 아니냐고 지적한다. 결국 이런 지적에 취약해지고, 선별주의 복지를 대항으로 설정할 때 보편주의 복지는 방어가 어렵다. 선별적 잔여주의, 또는 잔여주의적 선별주의라 지칭하는게 타당하다.
보편주의의 재원은 어디서 와야 할까?
가장 중요하고 논란거리는 진보는 증세를 지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걷자고 하면 반대가 별로 없다. 돈 많은 이들이 돈 좀 내라는 것인데, 한겨레 조사에 따르면, 어떤 나라를 꿈꾸냐는 질문에 국민 70%가 스웨덴 같은 나라라고 답했다. 이어 스웨덴처럼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냐고 묻자 20%만 더 내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지금만큼만 내거나 덜 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 재원조달 방식을 묻자 잘 사는 사람이 더 내야 다라는 답이 60% 이상이었다. 이게 맞을까? 가진 사람 것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것인데, 그들의 작태를 보면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고, 통쾌해 보이기도 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세, 소득세, 담배 술 등에 부과하는 죄악세 등의 세금이 무척 강하다.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스웨덴에선 25%이다. 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2천5백원이 세금이다. 한국은 10%정도다. 소득역진적이라고도 지적된다. 볼펜 하나를 살 때 이건희 회장과 노동자가 같아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진보에서는 소비세, 부가가치세가 맞지 않다, 소득역진적이라고 지적한다. 비역진적인 소득세, 자산/법인세 확대 등을 이야기 한다. 이건 다시 말하고, 그런데 북유럽 세제를 보니 법인세와 자산에 대한 세금이 영국과 미국보다도 낮다. 80년대에 보면 법인세가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친화적 조세는 소득세 등이라며 법인세 확대 등은 투자 의지 꺾는다고 말한다. 주류가 싫어하는 세금인 셈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 활성화 국가인 미국과 영국 등이 북유럽보다 훨씬 세다. 북유럽은 오히려 약하다. 역설적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소득세와 죄악세를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왜 그럴까. 그것은 보편주의 복지에 대한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주의 복지는 남의 것을 뺏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는 우리가 낸 것을 우리가 돌려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지 확대를 위해선 보다 많은 사람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 수급자가 재원 담세자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원리이다.
보편주의는 누가 주도하는가
한나라당을 보면 세출구조에서 조세감면을 말하고 민주당은 전면감세철회를 이야기 한다. 박근혜는 부분감세철회 입장이다. 이 그림을 보면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모습이다. 진보는 부유세에 대해 지지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 중이다. 그렇다면 보편주의 복지는 진보의 것이냐는 문제도 나올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반값 등록금과 무상교육, 기초노령연금 확대 등을 이야기 했다. 열린우리당은 현실성이 결여 됐다며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그것은 표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른 후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급식, 의료를 이야기 하면 한나라당이 현실성이 결여된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과연 진보만 보편주의 복지를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서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인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1930년대 사민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기 전에 보수당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사민당은 처음부터 보편주의 복지를 지지하진 않았다. 당시 사민당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했는데, 좌파의 핵심 테제는 당파성이다. 그런데 맑스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 계급은 전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집권을 위해 노동자 외에 중소상공인, 소자본가, 쁘띠 브르주아 등 다른 계층과 연대가 필요했다. 사민당 초기 우선 농민과 손을 잡았다. 50~70년대에는 화이트칼라, 중산층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사실상 좌우 날개로 함께 날아야 한다. 노동자 중소상공인 농어민 중산층 여성 진보적 지식인 저소득층이 함께 이끌어야 한다.
이것을 오해하면 보수도 보편주의 복지를 할 수 있냐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나라당은 자발적으로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서구도 마찬가지다. 왜 한나라당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이명박 대통령이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을 말했을까. 기층민중과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도 조직된 시민이 요구했기에 보편주의 복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스웨덴 우파가 집권해도 보편주의 복지를 철회하지 못한 것은 스웨덴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우의 날개로 보편주의 복지는 난다.
이건희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을!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 무상급식에 대한 설문을 돌렸더니 과반수가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이건희 손자도 무상급식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런 주장을 할까? 첫째는 중산층이 참여하지 않는 복지서비스는 질이 담보가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아동센터를 중산층 아이가 이용한다고 보자. 지금과 같은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은 만족 안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할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복지서비스 수준이 중산층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만약 공적 제공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이 불만을 가진다면 서비스를 이용 안하고 시장에서 구매를 할 것이다. 대부분 이용을 안하면 세금도 안내려고 할 것이다. 이건희 손자도 같이 먹을 급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 꿈꾸는 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아이들이 수준 높은 급식을 먹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예전엔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해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미국의 자료에 의하면, 75세가 될 때까지 빈곤을 한번 이상 경험한 확률이 76.0%였다. 미국이 경우지만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대다수가 빈곤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적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가난해 질 가능성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세 번째, 그러면 부자에게 걷어 가난한 사람을 주면 불평등이 줄까? 그게 논리적임에도 실제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은 전체 복지 지출에서 가난한 사람이 차지 비율이 60%이다. 북유럽의 최고 다섯 배인 점은 논리적으로는 빈곤과 불평등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재분배의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은 나와 우리가 낸 것, 보편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으로 돌려받는 구조이다. 세금을 내야 하는데 나를 위해 쓰이지 않고 저소득층, 가난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면 고귀한 사회적 이상과 철학 때문에 일정 부분 기꺼이 낼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러긴 어렵다. 그것이 결정적이다. 보편적으로 세금을 내는 나라에선 복지자원총량이 훨씬 크다. 그 총량에서 n분의 일을 나누니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커진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만 공적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보편주의에 어디쯤인가
한국사회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가 첫 번째 가난한 사람들만 지지하느냐, 두 번째는 보편주의가 경제성장 도움이 되는가, 세 번째 정치적 조합이냐 시스템과 체제로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보편주의 복지와 잔여주의 복지는 극명해 진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보편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는 잔여주의를 지지한다. 사회보장법 전부개정안 토론회 안을 보면 가능한 많은 사람을 포괄 구제하고 사각지대를 효율화시키자인데, 이게 주로 잔여주의 복지국가 방식이다. 시민권에 기반한 정책이 아니다. 반면 손학규를 제외한 민주당 주류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 국가를 지지한다. 다만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뭘 지지하는지 모르겠다. 아동양육을 보면 시장지향적이고 일부는 진보적이다. 아직까진 판단이 어렵다.
이전까지 정치 쟁점은 민주 대 반민주, 친북 대 반북 등이었지만 2012년엔 보편주의 대 잔여주의 복지의 논쟁이 일 것이다. 시민들이 복지를 경험하게 되면 결국 복지의 확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조응하는 정치체제는 비례대표제라고 본다. 또한 조응하는 복지정책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보편주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와 철학에 대한 것이다. 북유럽의 경우 아동의 천부적 인권을 인정한다. 미래 사회를 이끌 동량이나 노동력 차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아동 자체를 완전히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필요한 질 높은 서비스에 대해 그 사회에서는 이견이 없다. 과연 한국사회에선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 근로동기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누구나 복지를 보장하는 가치에 동의할까? 우리나라는 경제중심적이다. 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에게도 복지를 준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삼십년 넘게 걸려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박정희가 한국사회 모든 돈을 끌어들여 재벌에 집중투자를 하면서 나머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리고 현재 복지가 이 수준이다. 그런데 다음 정권을 진보신당이 잡는다면 복지국가 될까? 보편주의는 정치적 결단의 출발점이지만 시간을 요구한다. 몇 개의 정책 조합이 아닌 체제 변화는 많은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국민들도 다음 정권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5년 내 다 한다 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출발점이다. 집권 하자마자 5년간 복지 확대 마스터플랜을 보여주고 추진해야 하지만 그 5년이 모든 것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적어도 수 십년은 흘러야 한다. 앞으로 수 십년간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해야 된다. 다른 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이 방향으로 국민이 요구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일상에서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조직된 힘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문제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보편주의가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보편적’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불편한 말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서두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 손주들도 무상급식을 주어야 하는가?" 찬성하는 쪽도 이 지점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번 강의는 바로 이 부분에서 불편한 양 쪽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원칙은 무엇인가
참여연대에서 30여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두 달 여간 매주 세미나와 토론을 벌여 한국사회에서 보편주의 복지를 한다면 어떤 원칙들이 지켜져야 할 것인가를 논의한 바 있다. 그 결과 6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번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보장하는 복지국가이다.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계급과, 성, 학력, 거주지역 할 것 없이 시민으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 가져야 한다는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실질적 민주주의와 좋은 경제성장의 동반자인 복지국가이다. 최근 수치를 보면 97년 이후 빈곤과 불평등 수치가 97년 직전보다 훨씬 높다. 복지국가 하자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 이뤄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는 경제에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견인차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세 번째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국가이다. 일자리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이다. 경쟁하는 사회가 됐지만 태반이 백수이고, 일자리를 가진 청년의 태반은 88만원을 받는다.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결코 시장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문의 지표 보라. 기업의 규모와 투자 규모는 늘지만 고용지수는 좋은 기업일수록 줄어들고, 나쁜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네 번째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저소득층, 중산층이 함께하는 복지국가이다. 사실 한국에서 불안한 계층이 중산층이다. 몸 하나 믿고 노동력을 파는데 직업을 잃으면 바로 빈곤층으로 미끌어질 수 있다. 이에 대비한 사회서비스도 없다. 이들 중산층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이들 모두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섯번째 여성이 춤추는 복지국가이다. 한국사회는 지독히 성차별이 심하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남도에 불구하고 홑벌이 부부와 맞벌이 부부의 남성 가사노동 시간 차이는 2분여 밖에 안된다.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 강제되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남성도 돌봄에 참여하는 사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젠더’라는 측면이 중요한 원칙이다.
여섯째는 인간안보를 지키는 복지국가이다. 그동안은 외부의 위험만이 안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위협하는 것은 일상의 실업과 빈곤 등이다. 이같은 인간안보 지키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이 여섯가지 원칙이 참여연대가 올 하반기부터 진행할 복지국가 운동을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준다?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점은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로 나뉜다. 보편은 진보고 선별은 보수라는 이분법적 구조다. 사실 쉽게 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주는”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복지는 세 가지 선별기제를 가진다. 우선 65세 이상이냐, 아동이 있냐와 같은 인구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이어 기여여부이다. 국민연금 납부 정도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자산과 소득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한다. 돈 있고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선별원칙 중 어떤 것을 취하냐가 중요하다. 모든 복지 정책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가지거나 또는 세 가지를 조합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의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선별 할 경우 보편주의 복지, 마지막을 적용하면 잔여주의적 복지라고 한다.
선별원칙은 보편주의 복지 원칙의 반대가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는 잔여주의 복지이다. 보편주의 복지도 차이를 인정한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육아/보육 욕구 비용 들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단 돈이 많은 사람에겐 하루 세끼, 적은 사람에겐 두끼를 주는 것처럼 경제수준과 소득에 따라 기본적 욕구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 안한다. 자산조사와 소득에 따라 선별하는 잔여주의적 복지에 반대하는 것이다.
통상 선별주의는 원칙이 아니다. 선별적 잔여주의라고 부르는 게 맞다. 자산과 소득에 따라 정책대상에서 선별하는 이러한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별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대중화 되어 되돌리기 힘들지만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를 잘 구분해야 한다.
잔여주의적 선별주의 대 보편적 선별주의의 대립은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의 대립으로 가져갈 때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 입장은 무조건 주자 아니냐고 지적한다. 결국 이런 지적에 취약해지고, 선별주의 복지를 대항으로 설정할 때 보편주의 복지는 방어가 어렵다. 선별적 잔여주의, 또는 잔여주의적 선별주의라 지칭하는게 타당하다.
보편주의의 재원은 어디서 와야 할까?
가장 중요하고 논란거리는 진보는 증세를 지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걷자고 하면 반대가 별로 없다. 돈 많은 이들이 돈 좀 내라는 것인데, 한겨레 조사에 따르면, 어떤 나라를 꿈꾸냐는 질문에 국민 70%가 스웨덴 같은 나라라고 답했다. 이어 스웨덴처럼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냐고 묻자 20%만 더 내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지금만큼만 내거나 덜 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 재원조달 방식을 묻자 잘 사는 사람이 더 내야 다라는 답이 60% 이상이었다. 이게 맞을까? 가진 사람 것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것인데, 그들의 작태를 보면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고, 통쾌해 보이기도 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세, 소득세, 담배 술 등에 부과하는 죄악세 등의 세금이 무척 강하다.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스웨덴에선 25%이다. 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2천5백원이 세금이다. 한국은 10%정도다. 소득역진적이라고도 지적된다. 볼펜 하나를 살 때 이건희 회장과 노동자가 같아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진보에서는 소비세, 부가가치세가 맞지 않다, 소득역진적이라고 지적한다. 비역진적인 소득세, 자산/법인세 확대 등을 이야기 한다. 이건 다시 말하고, 그런데 북유럽 세제를 보니 법인세와 자산에 대한 세금이 영국과 미국보다도 낮다. 80년대에 보면 법인세가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친화적 조세는 소득세 등이라며 법인세 확대 등은 투자 의지 꺾는다고 말한다. 주류가 싫어하는 세금인 셈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 활성화 국가인 미국과 영국 등이 북유럽보다 훨씬 세다. 북유럽은 오히려 약하다. 역설적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소득세와 죄악세를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왜 그럴까. 그것은 보편주의 복지에 대한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주의 복지는 남의 것을 뺏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는 우리가 낸 것을 우리가 돌려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지 확대를 위해선 보다 많은 사람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 수급자가 재원 담세자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원리이다.
보편주의는 누가 주도하는가
한나라당을 보면 세출구조에서 조세감면을 말하고 민주당은 전면감세철회를 이야기 한다. 박근혜는 부분감세철회 입장이다. 이 그림을 보면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모습이다. 진보는 부유세에 대해 지지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 중이다. 그렇다면 보편주의 복지는 진보의 것이냐는 문제도 나올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반값 등록금과 무상교육, 기초노령연금 확대 등을 이야기 했다. 열린우리당은 현실성이 결여 됐다며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그것은 표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른 후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급식, 의료를 이야기 하면 한나라당이 현실성이 결여된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과연 진보만 보편주의 복지를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서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인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1930년대 사민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기 전에 보수당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사민당은 처음부터 보편주의 복지를 지지하진 않았다. 당시 사민당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했는데, 좌파의 핵심 테제는 당파성이다. 그런데 맑스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 계급은 전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집권을 위해 노동자 외에 중소상공인, 소자본가, 쁘띠 브르주아 등 다른 계층과 연대가 필요했다. 사민당 초기 우선 농민과 손을 잡았다. 50~70년대에는 화이트칼라, 중산층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사실상 좌우 날개로 함께 날아야 한다. 노동자 중소상공인 농어민 중산층 여성 진보적 지식인 저소득층이 함께 이끌어야 한다.
이것을 오해하면 보수도 보편주의 복지를 할 수 있냐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나라당은 자발적으로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서구도 마찬가지다. 왜 한나라당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이명박 대통령이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을 말했을까. 기층민중과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도 조직된 시민이 요구했기에 보편주의 복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스웨덴 우파가 집권해도 보편주의 복지를 철회하지 못한 것은 스웨덴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우의 날개로 보편주의 복지는 난다.
이건희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을!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 무상급식에 대한 설문을 돌렸더니 과반수가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이건희 손자도 무상급식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런 주장을 할까? 첫째는 중산층이 참여하지 않는 복지서비스는 질이 담보가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아동센터를 중산층 아이가 이용한다고 보자. 지금과 같은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은 만족 안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할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복지서비스 수준이 중산층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만약 공적 제공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이 불만을 가진다면 서비스를 이용 안하고 시장에서 구매를 할 것이다. 대부분 이용을 안하면 세금도 안내려고 할 것이다. 이건희 손자도 같이 먹을 급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 꿈꾸는 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아이들이 수준 높은 급식을 먹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예전엔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해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미국의 자료에 의하면, 75세가 될 때까지 빈곤을 한번 이상 경험한 확률이 76.0%였다. 미국이 경우지만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대다수가 빈곤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적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가난해 질 가능성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세 번째, 그러면 부자에게 걷어 가난한 사람을 주면 불평등이 줄까? 그게 논리적임에도 실제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은 전체 복지 지출에서 가난한 사람이 차지 비율이 60%이다. 북유럽의 최고 다섯 배인 점은 논리적으로는 빈곤과 불평등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재분배의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은 나와 우리가 낸 것, 보편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으로 돌려받는 구조이다. 세금을 내야 하는데 나를 위해 쓰이지 않고 저소득층, 가난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면 고귀한 사회적 이상과 철학 때문에 일정 부분 기꺼이 낼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러긴 어렵다. 그것이 결정적이다. 보편적으로 세금을 내는 나라에선 복지자원총량이 훨씬 크다. 그 총량에서 n분의 일을 나누니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커진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만 공적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보편주의에 어디쯤인가
한국사회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가 첫 번째 가난한 사람들만 지지하느냐, 두 번째는 보편주의가 경제성장 도움이 되는가, 세 번째 정치적 조합이냐 시스템과 체제로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보편주의 복지와 잔여주의 복지는 극명해 진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보편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는 잔여주의를 지지한다. 사회보장법 전부개정안 토론회 안을 보면 가능한 많은 사람을 포괄 구제하고 사각지대를 효율화시키자인데, 이게 주로 잔여주의 복지국가 방식이다. 시민권에 기반한 정책이 아니다. 반면 손학규를 제외한 민주당 주류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 국가를 지지한다. 다만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뭘 지지하는지 모르겠다. 아동양육을 보면 시장지향적이고 일부는 진보적이다. 아직까진 판단이 어렵다.
이전까지 정치 쟁점은 민주 대 반민주, 친북 대 반북 등이었지만 2012년엔 보편주의 대 잔여주의 복지의 논쟁이 일 것이다. 시민들이 복지를 경험하게 되면 결국 복지의 확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조응하는 정치체제는 비례대표제라고 본다. 또한 조응하는 복지정책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보편주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와 철학에 대한 것이다. 북유럽의 경우 아동의 천부적 인권을 인정한다. 미래 사회를 이끌 동량이나 노동력 차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아동 자체를 완전히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필요한 질 높은 서비스에 대해 그 사회에서는 이견이 없다. 과연 한국사회에선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 근로동기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누구나 복지를 보장하는 가치에 동의할까? 우리나라는 경제중심적이다. 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에게도 복지를 준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삼십년 넘게 걸려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박정희가 한국사회 모든 돈을 끌어들여 재벌에 집중투자를 하면서 나머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리고 현재 복지가 이 수준이다. 그런데 다음 정권을 진보신당이 잡는다면 복지국가 될까? 보편주의는 정치적 결단의 출발점이지만 시간을 요구한다. 몇 개의 정책 조합이 아닌 체제 변화는 많은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국민들도 다음 정권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5년 내 다 한다 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출발점이다. 집권 하자마자 5년간 복지 확대 마스터플랜을 보여주고 추진해야 하지만 그 5년이 모든 것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적어도 수 십년은 흘러야 한다. 앞으로 수 십년간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해야 된다. 다른 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이 방향으로 국민이 요구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일상에서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조직된 힘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