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세 번째 시간으로 ‘민주화 혁명 이후에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갈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지역이 민주화 이후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조심스런 전망과 함께, 미국이 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구정은 기자와 안주식 PD가 강의를 맡았습니다.
첫 번째 강의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으로 본 민주화 혁명 이후: 구정은 기자
오늘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역사와 전통은 없지만 사우디는 중요한 나라다. 석유지정학에서 사우디의 위상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사우디만큼 자원을 가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과정
사우디는 1902년 이븐 사우드가 건국했다. 그는 부족전쟁하면서 사우디를 장악해 나라를 건국했다. 이슬람 조직인 사우드족이 부패한 조직에 맞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와하비즘과 결합하여 1932년에 사우디라는 통일왕국을 만들었다. 미국 자본계열인 아람코가 석유를 발견해서 채굴을 시작했다. 그 후 이븐사우드가 죽고 나서 장남이 즉위했다.
수니파의 사우디
수니파와 시아파의 다른 점은 혈통을 중시하는가, 부족의 원로들이 과두지배처럼 논의해서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시아파에서는 부족장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순리여서, 장자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왕정을 이끌만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사우디는 수니파이기 때문에 장자가 주로 왕권을 이어받는다. 압둘 아이즈가 사망한 후 장남인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가가 OPEC창립을 주도했다. 사우드가 쫓겨난 이후 남동생인 파이잘이 즉위하였고 그 다음은 파드가 국왕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1995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사우디에서 시위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왕위가 형제간에 계승되었기 때문에 국정운영은 원활했으나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 진압했다. 이때부터 테러가 자주 발생하자 미국으로부터 오는 압력도 강해졌다. 파드가 사망하자 형제계승의 관습에 따라 동생인 압둘라가 즉위했다. 그는 서방에서 긍정적으로 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위가 늘어나자 시위대의 요구대로 복지지출을 늘리겠다고 하면서도 다시 시위 자체를 금지하고 강경진압했다.
사우디의 민주주의
사우디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는 거의 최하위권이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중동은 1인당 GDP에 비해 민주주의 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의 틀을 갖춰나가고 있는 만큼 과소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에 비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민주 선거가 실시되긴 했지만 부패와 유혈사태가 심각하다.
아랍의 혁명에 대해
아랍은 부족주의 전통, 군사독재정권, 전제군주정의 세 가지 억압이 있어왔다. 이번 혁명은 권위주의에 타격이 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미완의 혁명이 될 가능성 크다. 혁명을 하고 나면 피를 흘린 만큼 정치판에서 시민들이 조금 더 입지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역부족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주의가 탄생하지 않더라도 큰 변화를 모색해 볼 수는 있다. 미국도 아랍 지역의 민의를 조금 더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타리크 알리(Tariq Ali)의 시각
60년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타리크 알리는 이번 중동 사태에 대해서 두 가지로 요약했다. 1) 아랍세계 모든 이들이 전제권력에 도전했다. 2) 독재자를 지탱해주었던 서방을 향해 자유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아랍에서 혁명이 일어났나
2008년 월가의 붕괴로 인한 세계경제위기가 있었다. 이 여파로 중동지역에 실업률이 올라가고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으로 거리에 쏟아졌다. 경제적 원인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생겨난 측면이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시위를 강경 진압한다. 인도네시아는 온건파 정당이 자리 잡아 당분간 온건파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 시민들도 독재자를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지하던 무바라크도 전복된 만큼 시민 혁명이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어떻게 될까
사우디가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미국이 바레인에 자국 해군기지를 둔 것을 보면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사우디에 시위 진압을 암묵적으로 권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미국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앞으로 중동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갈 것인가?
두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1) 아랍인들은 자기가 모르는 힘을 깨닫고 있다. 2) 어떤 방향으로 가든 자유를 맛보기 전 단계로는 가지 못한다. 튀니지, 예멘 모델 또는 정권뒤집기 모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유혈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혈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사우디, 이집트, 이란은...
사우디의 경우 이집트와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정권은 뒤집히되, 방향은 아주 다를 것이다. 사우디는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없는 나라이다. 사우디의 민주화는 왜곡되어 있어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사회적 자원도 없고 극단주의자가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이집트는 야당이 있지만 시민단체는 거의 없다. 앞으로의 변화 방향은 미국이 이집트 정부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디까지 개혁을 원할 것인지에 달렸다. 미국은 시위대가 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쓸 것이다. 친미정권이 없어지면 미국의 영향력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금 아랍국들의 시위를 즐거워하고 있다. 중동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는 미국, 사우디, 이란 순이지만 앞으로 이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란은 정치력과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강의
이집트 혁명과 미국의 딜레마: 안주식 PD
지난주 목요일에 KBS '세계는 지금’에서 이집트 민주화 시위 이후 ‘격동의 중동’, ‘미국의 딜레마’ 두 편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보겠다.
이집트의 민주화 혜택이 이슬람 단체에게로
이번에 이집트에서는 헌법을 바꾸자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국가위원회가 꾸려져있고 올해 9월에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헌법을 수정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집트 헌법은 독재를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시위에 나섰던 청년, 시민단체, 재야단체는 헌법개정에 반대했다. 다가오는 6개월 내에 헌법을 수정하고 국민투표를 하면 자기들이 후보를 내고 조직화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천히 하더라도 좀 더 근본적으로 헌법을 수정하기 위해 대대적인 반대캠페인도 벌였지만 결국에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무슬림 브라더스(Muslim Brothers)가 여기에 크게 한몫을 했다. 이것은 1920년대에 생긴 집단인데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고 공식적으로 샤리아 법(Sharia Law)을 지지하고 있다. 헌법 개정의 혜택으로 무슬림 브라더스가 제1야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혁명은 형식적 민주주의, 일반민주주의 요구를 하고 있다. 즉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혁명으로 결국 무슬림 브라더스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어 제2의 충돌이 예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샤리아: 이슬람교에서, 코란을 바탕으로 한 법의 체계
이집트 엘리트 집단인 군부세력에 대해
이집트는 군부의 지위가 다른 아랍권에 비해 상당히 높다.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이 바로 군부이다. 이들은 '국가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장교가 엘리트 코스의 상징인 미국유학을 갔다와서 영어가 유창하다. 현실적으로 무바라크가 퇴진하게 된 데는 데모의 크기, 시위의 격렬함보다 군부가 무바라크를 버린 이유가 크다. 그럼 왜 군부는 무바라크를 버렸나? 군부는 무바라크를 버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컸다. 이집트 군부대는 거대하며 지방 곳곳에 군부대 시설을 갖고 있어 지방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은 무바라트를 끝까지 지지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앞으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력을 넓히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이집트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은 유동적이다. 제2의 무바라크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군부 기득권도 유지될 것이고 무슬림 브라더스도 세력을 유지할 것이다. 적어도 5-10년이상 민주화를 향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의 딜레마
미국의 핵심 중동 정책은 다음과 같다. 1) 극단적 이슬람주의 세력은 용납할 수 없다. 2) 안정적인 석유를 공급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은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써 왔다. 심지어 독재자 무바라크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반카다피 세력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미국은 이런 세력에게 권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랍국가의 독재를 지원해 왔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랍권에서 억제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민주주의를 무시한 현실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확산으로 세계에 기여한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일은 미국의 위상에 먹칠을 했다. 지금부터 이슬람이 민주화 되면 극단주의 세력 또한 정치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으로 이를 막을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중동의 GCC(Gulf Cooperation Counci:페르시아만협력회의)국가가 전세계에 공급하는 석유의 양은 전체 공급량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은 GCC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가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더 큰 혼란을 막고 민주화 진행 과정을 늦추자는 의미로 자금을 지원해서 시위를 줄이려는 논의도 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하여 미국의 민주당 씽크탱크들은 마샬플랜을 중동전체에 실행해서 빈부 차이를 없애고 민주화 정도에 따라 대규모 지원을 해주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중동 민주화 시위에서 느낀 점
이슬람이든, 아프리카든, 북극에 살든 사람이 자유를 경험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제도적 자유를 경험하면 뒤로 가지 못한다. 중동 북아프리카의 정권은 앞으로 10-20년 동안은 터진 봇물을 어떻게 수습할까를 고뇌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인데 중동이 아무리 이슬람 국가라도 형식적 민주주의의 단계는 어느 정도까지 오를 것이다.
Q&A
Q. '독재, 이슬람 근본주의, 외세'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민주화의 도래를 지연시킨 공범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이슬람 시민은 정교분리를 하면서 민주화를 실현하려하는가?
A. 구정은 - 이들은 적대적이지 않는 그냥 공범이다. 무바라크가 심할 때는 미국도 압박하지만 분명한 결탁관계에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히잡을 쓰고 싶지 않은데 안 썼다고 때리면 곤란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민주주의가 말하는 개인의 권리, 자유, 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위의 세 가지는 모두 민주주의의 적은 맞지만 공범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이란의 호메이니 체제는 반미를 이용해 국민을 억압했다. 외세의 존재를 악용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새로운 현상이기도 하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앞날이 복잡하게 꼬일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민주화의 수혜자임은 확실하다.
Q. 기독교와 기독교 근본주의가 다르듯이, 이슬람교와 이슬람 근본주의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과 근본주의를 비슷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시각 교정도 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구정은 -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을 내세우는 사람을 얘기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재산권을 법적으로 제한을 두는 사람과, 부르카를 안 썼다고 염산을 뿌리는 사람은 둘 다 나쁘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보편적 인권을 무시한 것이다. 도로에 폭탄을 설치하면 극단이고, 총을 놓고 집에 있으면 온건이니까 온건은 우리 쪽으로 용인하자고 하는 것도 지배의 방법일 뿐이다.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아프간 여성이다. 미국이 아프간에 와서 잘 한 것이 탈레반을 쫓아낸 것인데 다시 온건탈레반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이것은 여자들에 대한 온건한 탄압을 받아들이자는 것과 같다. 미국의 이런 접근은 아주 편의주의적인 것이다. 이슬람주의라는 것은 결국 맥락은 똑같다. 이슬람주의를 금지시키는 것은 탄압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부르카 때문에 염산테러를 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금지시켜야 한다.
Q. 혁명이 일어나는 이유가 실업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아랍은 경제체제가 없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체제를 도입해서 성장해야하지 않나? 그러면 시민의 힘을 더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안주식- 나라가 경제적으로 형편없다가 어느 정도 살만하니 민주주의를 해보자고 하는 시점이 되려면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된다. 사우디는 1인당 GDP가 높다. 경제적 수준은 민주주의를 진작 요구하고도 남았을 시점이다. 다만 어떻게 해서 일자리를 만들지는 얼마나 자원을 잘 팔아서 투자를 잘 할 것인지에 달렸다.
이것은 사회주의 분배체제와 비슷하다. 석유를 팔고 남은 돈으로 공무원을 만드니 중동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경제구조처럼 IT 산업을 발전시키고 산업경제구조를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민주화 시위의 성과가 온전히 유지될 것이다.
이슬람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의 횡포가 심해서 이슬람 사람들의 일부가 극단주의자로 바뀐 경우가 많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교 분리없이는 있을 수 없다. 이슬람은 미국제국주의와 종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를 가진 나라이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강의를 들으며
강의에 앞서 구정은 기자가 몇 개의 두건과 히잡을 가져와 보여주었습니다. 구정은 기자는 모래 바람이 심해서 머리에 천을 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직접 써보기도 했습니다. 색색의 히잡은 뉴스에서 탄압받는 여성의 머리에 두른 것과는 달라보였습니다. 어떤 문화가 생긴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중동 민주화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고 현장에서 느낀 바를 들을수록 중동지역에서도 결정적 변수는 미국이라는 것이 뚜렷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있다가 폭발한 시민들의 분노도 미국경제의 위기로 맞은 경제난이 큰 이유였고, 앞으로 민주주의의 발전도 결국 미국이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에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으로 ‘선의의 개입’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중동지역의 ‘석유이권’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적 사고를 비판적 시각 없이 교육받아온 한국에서 중동 민주화를 아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때까지는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 종교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관심대상에서 빠져있었지만 아직도 인권이 유린당하는 곳이며, 투쟁을 해야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민주화 혁명으로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민주주의를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다음 강의
4월26일(화)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강사: 구정은(경향신문기자) 안주식(KBS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