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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쇠퇴하고 있는가?(복지국가 4강)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4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복지국가는 쇠퇴하고 있는가?
강의 :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번 복지국가 강좌 강사진에 행정학 전공 교수가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의아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금새 반가운 마음으로 변했다. 복지는 다양한 층위에서 또 동시에 총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느티나무 강좌에 대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기쁜 기대로 강좌를 시작했다.
복지국가 쇠퇴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복지국가 쇠퇴론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돼온 문제다. 세 가지 정도의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우선 네오맑시스트들의 주장이다.
60~70년대 제임스 오코너, 클라우스 오페 등의 학자들은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와 함께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계급간 모순을 감추기 위해 정당화를 추구하는데, 복지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고 지목했다. 그런데 복지는 기본적으로 투자가 아닌 소비이므로 자본주의 체제 모순이 깊어 감에 따라 정당화 비용도 늘어 생산 쪽에 투자되어야 할 자원이 자꾸 소비적인 복지로 바뀔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감소되며 정당화 비용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성장하게 되면 결국 악순환을 거쳐 복지국가 역시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965년부터 OECD 국가의 경제규모와 사회지출 규모의 증가를 비교해 보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제발전 이상으로 복지에 돈을 쓰고 있다. 네오맑시스트들의 예상과 달리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소련 사회주의가 무너져도 복지국가 체제를 자본주의 국가들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별 공공사회지출 변화 추이를 살펴보더라도 서구 복지국가의 재정적 위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네오맑시스트의 예견이 현실화 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재정적 위기에 시달리는 나라는 복지국가의 발달이 뒤쳐진 일본, 미국 등이다. 대륙형 또는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인 독일, 라틴 복지국가 대표모델인 이탈리아 등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스웨덴, 덴마크는 오히려 재정적으로 안정됐다.
국내에서는 복지가 재정위기를 불러온다고 하는데, 따져봐야겠지만 복지국가의 재정적 위기는 현실에선 부합하지 않고 있다. 복지국가의 대표격인 덴마크와 스웨덴 등은 가장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는데, 이것을 보면 복지지출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네오맑시스트의 주장과 다르게 복지 잘하는 나라가 재정적으로도 안정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 공공선택론자들의 큰 정부 실패론이다.
우파지식인들인 공공선택론자들의 비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관료들의 자기이익극대화이다. 관료들은 이익집단처럼 자기 조직의 예산증대와 조직확대에만 관심을 가지므로 복지분야를 포함해 정부 규모가 커지고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가 생산부문을 압도할 것이란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자기 조직이 생기면 되도록 조직의 일감을 줄어들지 않게 유지하려 하고,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성장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다음 거버먼스 오버로드(Government Overload)이다. 과부하란 이야기인데, 민주주의는 과도한 기대를 시민들에게 부여해 정치가들은 지키지 못할, 지켜서는 안될 복지공약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무게에 짓눌려 파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어 관료제의 병폐를 지목했다. 조직이기에 큰 정부가 되지 않고 복지생산과 전달을 위해 큰정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숙명적으로 관료제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복지국가의 몸은 커졌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거대한 조직만 군림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좌파운동가/지식인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스웨덴도 80년대 들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지방분권화와 민영화, 주민참여 등의 개혁에 나선 바 있다.
위의 세 가지 논리로 보수적인 우파 지식인/경제학자/공공선택론자들은 복지국가 성장을 비판한다. 그들의 해법은 간단하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복지를 하지말고 민영화 혹은 위탁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는 관료주의의 병폐도 없을 뿐 아니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민사회가 잘 알아서 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가 엄연히 존재했고, 시민사회 역시 결국 사익의 총집합이란 점을 감안하면 자율적 역량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익의 충돌장인 시민사회가 언제나 지고의 선일 수만은 없다. 작은 정부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면 무조건 큰 정부로 할 것인가? 이것도 아닐 것이다. 해답으로는 말하기만 쉬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능력 있고 신뢰받는 제대로 된 큰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실증적으로도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세 번째 이야기. 그 다음은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위기론이다.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이동 때문에 국가와 노동에 비해 협상력이 월등히 높아짐에 따라 국가가 친자본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조세하향 경쟁 등으로 복지국가의 재정적 기초가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커지며, 민영화와 노동시장유연화 조치 등으로 조직노동의 기반이 약화되고 좌파정당이 쇠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복지국가의 축소와 영미형으로의 수렴을 예견케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한 것처럼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와 소득세의 한계소득세율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조세추출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1991년 세제개혁을 통해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72%를 50%로 인하했다. 법인세는 57%에서 30%로 인하했다. 미국은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1960년 91%였던 것이 레이건 집권 후 감세정책의 시행으로 1980년 70%, 1986년 50%, 최저 28%로 인하됐다가 1996년 39.6%로 재조정했다. 세계화론자들 말이 맞아 보인다.
그런데 모든 나라가 그렇다고 재정기반이 약화되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윤증현 장관이 가끔 하는 말이 낮은 세율, 넓은 조세기반 실천인데, 세율 낮춰도 각종 공제제도 없애고, 그 다음 직접세 부분을 낮춘다. 그런 식으로 하향평준화했다. 그리고 조세부담율과 사회보험료 걷는 것. 지디피 대비를 보면 주요국가들 중 높은 나라는 높고, 낮은 나라는 계속 낮다. 그렇다고 해서 하향은 아니고, 세계화론자 주장처럼 세율이 낮아졌지만 조세추출능력은 그렇게 약화되지 않았다. 특히 북유럽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올라가고 있다. 재정문제가 숙명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신자유주의자/세계화론자들은 재정과 함께 노동의 약화를 지목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좌파정당의 약화,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의 약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합주의적 사회적 타협의 제도화, 여성/노인 등 신규 복지국가 지지자들의 증가, 보편주의 복지국가에서는 중산층의 지지 상승, 시장주의에 따라 발생하는 취약계층의 증가로 복지의 잠재적 지지자는 늘어갈 수 있다. 네덜란드의 바세나 협약이나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결정, 국민연금위원회 등의 노조 참여 등을 보자. 유럽은 특히 각 분야에서 제도화했다. 조직노동의 숫자는 줄어들어도 이미 제도적으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복지국가의 수혜자는 이제 여성/노인이 많다. 연금, 의료, 각종 보험, 요양서비스 등을 받는 노인인구가 늘면 늘수록 유권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들이 노동자를 대신하는 굳건한 지지자가 된다. 또한 여성 등 조직노동이 빠진 자리를 다른 지지자들이 대신하는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중산층의 지지를 이끈다. 그래서 좌파정당이 아닌 우파정당이 집권해도 그들의 모토가 복지일 수 밖에 없다. 스웨덴 사민당이 두 번 연속 총선에서 졌다. 그래도 승리한 보수당이 복지를 없앤다고 절대 내세우지 않는다. 우리가 더 효율적이다, 더 많은 복지 선택권과 질을 높이겠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 또 한 논리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로 자본주의 경제의 피해 받는 이들 늘어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늘고 취약계층이 복지의 잠재적 지지자가 되므로 노조 조직율이 약화돼도 복지국가 지지가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바탕은 무엇이어야 할까?
로드스타인이라는 스웨덴 복지국가 연구자의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 복지국가가 커지게 된 것은 단순이 노동자의 힘, 사민당의 힘이 세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정부가 신뢰를 받을 정도로 일을 잘하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공공선택론자들 이야기한 문제의 정부가 아닌 일 잘하는 정부는 사민주의 국가에서 많았다. 이런 정부가 서 있어야 시민들이 세금을 믿고 납부한다. 그 기반으로 복지국가가 성장한다. 복지국가의 성공 요인은 믿을 수 있고, 일 잘하고, 책임 있는 정부다. 그걸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크기를 가지고 복지국가의 성패를 예단할 수 없다. 정부의 질이 중요하다. 지속적인 정부개혁을 통해 정책결정의 민주화, 행정의 효율화, 재정운용의 투명성을 높여나가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의 질이 높은 나라일수록 같은 좌파정당이나 노동자의 힘이 세더라도 복지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다. 믿을 수 있는 정부를 가지는 것도 복지국가 건설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공공선택론자들의 문제제기를 보자. 마치 모든 정부와 관료제는 조직의 논리 때문에 큰 정부의 실패를 불러오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사민주의 국가 정부들은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큰 정부가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길은 무엇일까? 시장과 시민사회 다 맡길 수 없으므로 정부가 역할 해야 하고 그 정부에 무조건 맡기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진 정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좌파정당 지지도 변화추이를 보면 세계화가 진전된 80~2000년대 일본은 좌파정당 지지가 뚝 떨이지고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다른 주요 나라, 사민주의 국가나 독일을 보면 세계화론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좌파정당이 뚝 떨어지고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90년대 좌파정당이 제3의 길을 선언하며 과거 모델보다 신자유주의 우파 논리를 더 많이 받아 안는 새로운 사민주의를 앞세웠다. 그 자체가 개량이다 비판도 하지만 세계화론자 말처럼 좌파의 종말은 아니다. 의석 점유율도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네오맑시스트나 보수우파경제학자, 세계화론자 세 주장 들어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현실은 가고 있지 않다. 일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의 복지국가 쇠퇴론은 이론적 비약이다.
한국이 가야할 방향
지금까지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은 어떤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물론 쇠퇴하지 않는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2007년 기준 OECD 국가 공공사회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분야를 살펴보면 연금과 의료보장 등 전통적인 복지프로그램을 주로 하는 나라와 전통적인 프로그램 외 더 많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이 대척점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OECD 평균 이상으로 많이 지출하는 사민주의 국가들의 북유럽 모델과 사회지출이 낮은 일본, 미국, 평균 이상이지만 전통적인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있다.
한국은 이제 복지의 시작이다. 금융위기 등에서 보듯 미국은 휘청대는 국가다. 복지를 잘 하는 거소 아니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모델을 따라갈 것도 아니고. 스웨덴, 덴마크 모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2005년 기준 OECD 국가 사회지출 규모와 프로그램별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은 연금이 GDP대비 1.5% 정도다. 아직 연금이 성숙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의료보장이다. 나머지는 발달하지 않았다. 더 발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선정한 결과를 보면 종합지수에서 미국이 항상 수위다. 그 다음이 스웨덴, 덴마크이다. 복지국가이지만 기업하기 좋다. 그 다음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는 경쟁력을 지켜가면서도 복지국가인 나라일 것이다. 그 나라의 경쟁력이 높은가 낮은가의 지표는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구조조정이 원활하며,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가 등이다. 평생교육을 통해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는 사민주의 국가에선 쌍용차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당하면 높은 실업수당을 받으며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로 안정감 가지고 실직에 대처하는 등 노동시장이 안정돼 있있다. 이게 사실 경제효용을 높이는 정책이다. 낙후된 산업에서 성장하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이것을 복지가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다. 복지의 제도적 경쟁력을 우리도 찾을 필요가 있다.
미국을 제외하고 보면 스웨덴, 덴마크의 출산율이 높다. 노동력도 보전되고 성장도 확보되면서 갱쟁력을 갖는 구조다. 근로자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자기 스스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구가 제도가 많이 발달돼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그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조의 힘도 세고, 좌파정당도 마찬가지고, 정부의 질도 높아야 하는데, 우리가 거기까지 가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복지국가의 행위자들을 만드는 대표적 세 주체가 노동자, 자본가, 정치가이다. 한국은 노동자들이 복지국가/공공복지를 지향하면서 투쟁하는 구조는 아닌 상황이다. 유럽 사민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는 기업별노조로 분절도 심하다. 기업별 노조가 공공복지를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다. 사민주의 국가의 노조는 국가를 상대로 전체 계급을 위한 복지를 요구하는 차이가 있다.
재벌경제가 아닌 중소기업경제라면 대만이나 덴마크처럼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게 된다. 기업에서 얻을게 없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대기업에서 노조가 얻을 것이 많다. 이 두 조건이 마나서 공공복지를 요구하는 힘이 약하다. 시민단체 밖에 없는데, 힘이 없다. 또 소선구제라는 제약이 복지를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 만일 정치인들이 복지가 재선에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이다. 재선을 위해선 신공항 사업처럼 지역사업에 목을 매달아야 한다. 복지는 립서비스일 뿐 열성을 가지고 매달리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희망이다. 전국을 상대로 지지와 동원을 이끌어야 하는데, 복지는 중요한 주제이다. 한국이 방향을 잘 잡아서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간 수준 이상의 복지국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보수라면 복지로 방향을 잡더라도 지출 수준이 낮은 쪽으로 약하게 갈 것이다.
강의 :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번 복지국가 강좌 강사진에 행정학 전공 교수가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의아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금새 반가운 마음으로 변했다. 복지는 다양한 층위에서 또 동시에 총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느티나무 강좌에 대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기쁜 기대로 강좌를 시작했다.
복지국가 쇠퇴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복지국가 쇠퇴론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돼온 문제다. 세 가지 정도의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우선 네오맑시스트들의 주장이다.
60~70년대 제임스 오코너, 클라우스 오페 등의 학자들은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와 함께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계급간 모순을 감추기 위해 정당화를 추구하는데, 복지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고 지목했다. 그런데 복지는 기본적으로 투자가 아닌 소비이므로 자본주의 체제 모순이 깊어 감에 따라 정당화 비용도 늘어 생산 쪽에 투자되어야 할 자원이 자꾸 소비적인 복지로 바뀔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감소되며 정당화 비용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성장하게 되면 결국 악순환을 거쳐 복지국가 역시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965년부터 OECD 국가의 경제규모와 사회지출 규모의 증가를 비교해 보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제발전 이상으로 복지에 돈을 쓰고 있다. 네오맑시스트들의 예상과 달리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소련 사회주의가 무너져도 복지국가 체제를 자본주의 국가들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별 공공사회지출 변화 추이를 살펴보더라도 서구 복지국가의 재정적 위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네오맑시스트의 예견이 현실화 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재정적 위기에 시달리는 나라는 복지국가의 발달이 뒤쳐진 일본, 미국 등이다. 대륙형 또는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인 독일, 라틴 복지국가 대표모델인 이탈리아 등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스웨덴, 덴마크는 오히려 재정적으로 안정됐다.
국내에서는 복지가 재정위기를 불러온다고 하는데, 따져봐야겠지만 복지국가의 재정적 위기는 현실에선 부합하지 않고 있다. 복지국가의 대표격인 덴마크와 스웨덴 등은 가장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는데, 이것을 보면 복지지출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네오맑시스트의 주장과 다르게 복지 잘하는 나라가 재정적으로도 안정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 공공선택론자들의 큰 정부 실패론이다.
우파지식인들인 공공선택론자들의 비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관료들의 자기이익극대화이다. 관료들은 이익집단처럼 자기 조직의 예산증대와 조직확대에만 관심을 가지므로 복지분야를 포함해 정부 규모가 커지고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가 생산부문을 압도할 것이란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자기 조직이 생기면 되도록 조직의 일감을 줄어들지 않게 유지하려 하고,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성장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다음 거버먼스 오버로드(Government Overload)이다. 과부하란 이야기인데, 민주주의는 과도한 기대를 시민들에게 부여해 정치가들은 지키지 못할, 지켜서는 안될 복지공약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무게에 짓눌려 파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어 관료제의 병폐를 지목했다. 조직이기에 큰 정부가 되지 않고 복지생산과 전달을 위해 큰정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숙명적으로 관료제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복지국가의 몸은 커졌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거대한 조직만 군림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좌파운동가/지식인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스웨덴도 80년대 들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지방분권화와 민영화, 주민참여 등의 개혁에 나선 바 있다.
위의 세 가지 논리로 보수적인 우파 지식인/경제학자/공공선택론자들은 복지국가 성장을 비판한다. 그들의 해법은 간단하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복지를 하지말고 민영화 혹은 위탁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는 관료주의의 병폐도 없을 뿐 아니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민사회가 잘 알아서 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가 엄연히 존재했고, 시민사회 역시 결국 사익의 총집합이란 점을 감안하면 자율적 역량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익의 충돌장인 시민사회가 언제나 지고의 선일 수만은 없다. 작은 정부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면 무조건 큰 정부로 할 것인가? 이것도 아닐 것이다. 해답으로는 말하기만 쉬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능력 있고 신뢰받는 제대로 된 큰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실증적으로도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세 번째 이야기. 그 다음은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위기론이다.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이동 때문에 국가와 노동에 비해 협상력이 월등히 높아짐에 따라 국가가 친자본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조세하향 경쟁 등으로 복지국가의 재정적 기초가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커지며, 민영화와 노동시장유연화 조치 등으로 조직노동의 기반이 약화되고 좌파정당이 쇠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복지국가의 축소와 영미형으로의 수렴을 예견케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한 것처럼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와 소득세의 한계소득세율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조세추출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1991년 세제개혁을 통해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72%를 50%로 인하했다. 법인세는 57%에서 30%로 인하했다. 미국은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1960년 91%였던 것이 레이건 집권 후 감세정책의 시행으로 1980년 70%, 1986년 50%, 최저 28%로 인하됐다가 1996년 39.6%로 재조정했다. 세계화론자들 말이 맞아 보인다.
그런데 모든 나라가 그렇다고 재정기반이 약화되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윤증현 장관이 가끔 하는 말이 낮은 세율, 넓은 조세기반 실천인데, 세율 낮춰도 각종 공제제도 없애고, 그 다음 직접세 부분을 낮춘다. 그런 식으로 하향평준화했다. 그리고 조세부담율과 사회보험료 걷는 것. 지디피 대비를 보면 주요국가들 중 높은 나라는 높고, 낮은 나라는 계속 낮다. 그렇다고 해서 하향은 아니고, 세계화론자 주장처럼 세율이 낮아졌지만 조세추출능력은 그렇게 약화되지 않았다. 특히 북유럽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올라가고 있다. 재정문제가 숙명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신자유주의자/세계화론자들은 재정과 함께 노동의 약화를 지목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좌파정당의 약화,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의 약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합주의적 사회적 타협의 제도화, 여성/노인 등 신규 복지국가 지지자들의 증가, 보편주의 복지국가에서는 중산층의 지지 상승, 시장주의에 따라 발생하는 취약계층의 증가로 복지의 잠재적 지지자는 늘어갈 수 있다. 네덜란드의 바세나 협약이나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결정, 국민연금위원회 등의 노조 참여 등을 보자. 유럽은 특히 각 분야에서 제도화했다. 조직노동의 숫자는 줄어들어도 이미 제도적으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복지국가의 수혜자는 이제 여성/노인이 많다. 연금, 의료, 각종 보험, 요양서비스 등을 받는 노인인구가 늘면 늘수록 유권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들이 노동자를 대신하는 굳건한 지지자가 된다. 또한 여성 등 조직노동이 빠진 자리를 다른 지지자들이 대신하는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중산층의 지지를 이끈다. 그래서 좌파정당이 아닌 우파정당이 집권해도 그들의 모토가 복지일 수 밖에 없다. 스웨덴 사민당이 두 번 연속 총선에서 졌다. 그래도 승리한 보수당이 복지를 없앤다고 절대 내세우지 않는다. 우리가 더 효율적이다, 더 많은 복지 선택권과 질을 높이겠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 또 한 논리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로 자본주의 경제의 피해 받는 이들 늘어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늘고 취약계층이 복지의 잠재적 지지자가 되므로 노조 조직율이 약화돼도 복지국가 지지가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바탕은 무엇이어야 할까?
로드스타인이라는 스웨덴 복지국가 연구자의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 복지국가가 커지게 된 것은 단순이 노동자의 힘, 사민당의 힘이 세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정부가 신뢰를 받을 정도로 일을 잘하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공공선택론자들 이야기한 문제의 정부가 아닌 일 잘하는 정부는 사민주의 국가에서 많았다. 이런 정부가 서 있어야 시민들이 세금을 믿고 납부한다. 그 기반으로 복지국가가 성장한다. 복지국가의 성공 요인은 믿을 수 있고, 일 잘하고, 책임 있는 정부다. 그걸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크기를 가지고 복지국가의 성패를 예단할 수 없다. 정부의 질이 중요하다. 지속적인 정부개혁을 통해 정책결정의 민주화, 행정의 효율화, 재정운용의 투명성을 높여나가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의 질이 높은 나라일수록 같은 좌파정당이나 노동자의 힘이 세더라도 복지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다. 믿을 수 있는 정부를 가지는 것도 복지국가 건설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공공선택론자들의 문제제기를 보자. 마치 모든 정부와 관료제는 조직의 논리 때문에 큰 정부의 실패를 불러오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사민주의 국가 정부들은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큰 정부가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길은 무엇일까? 시장과 시민사회 다 맡길 수 없으므로 정부가 역할 해야 하고 그 정부에 무조건 맡기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진 정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좌파정당 지지도 변화추이를 보면 세계화가 진전된 80~2000년대 일본은 좌파정당 지지가 뚝 떨이지고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다른 주요 나라, 사민주의 국가나 독일을 보면 세계화론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좌파정당이 뚝 떨어지고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90년대 좌파정당이 제3의 길을 선언하며 과거 모델보다 신자유주의 우파 논리를 더 많이 받아 안는 새로운 사민주의를 앞세웠다. 그 자체가 개량이다 비판도 하지만 세계화론자 말처럼 좌파의 종말은 아니다. 의석 점유율도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네오맑시스트나 보수우파경제학자, 세계화론자 세 주장 들어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현실은 가고 있지 않다. 일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의 복지국가 쇠퇴론은 이론적 비약이다.
한국이 가야할 방향
지금까지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은 어떤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물론 쇠퇴하지 않는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2007년 기준 OECD 국가 공공사회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분야를 살펴보면 연금과 의료보장 등 전통적인 복지프로그램을 주로 하는 나라와 전통적인 프로그램 외 더 많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이 대척점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OECD 평균 이상으로 많이 지출하는 사민주의 국가들의 북유럽 모델과 사회지출이 낮은 일본, 미국, 평균 이상이지만 전통적인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있다.
한국은 이제 복지의 시작이다. 금융위기 등에서 보듯 미국은 휘청대는 국가다. 복지를 잘 하는 거소 아니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모델을 따라갈 것도 아니고. 스웨덴, 덴마크 모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2005년 기준 OECD 국가 사회지출 규모와 프로그램별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은 연금이 GDP대비 1.5% 정도다. 아직 연금이 성숙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의료보장이다. 나머지는 발달하지 않았다. 더 발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선정한 결과를 보면 종합지수에서 미국이 항상 수위다. 그 다음이 스웨덴, 덴마크이다. 복지국가이지만 기업하기 좋다. 그 다음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는 경쟁력을 지켜가면서도 복지국가인 나라일 것이다. 그 나라의 경쟁력이 높은가 낮은가의 지표는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구조조정이 원활하며,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가 등이다. 평생교육을 통해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는 사민주의 국가에선 쌍용차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당하면 높은 실업수당을 받으며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로 안정감 가지고 실직에 대처하는 등 노동시장이 안정돼 있있다. 이게 사실 경제효용을 높이는 정책이다. 낙후된 산업에서 성장하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이것을 복지가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다. 복지의 제도적 경쟁력을 우리도 찾을 필요가 있다.
미국을 제외하고 보면 스웨덴, 덴마크의 출산율이 높다. 노동력도 보전되고 성장도 확보되면서 갱쟁력을 갖는 구조다. 근로자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자기 스스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구가 제도가 많이 발달돼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그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조의 힘도 세고, 좌파정당도 마찬가지고, 정부의 질도 높아야 하는데, 우리가 거기까지 가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복지국가의 행위자들을 만드는 대표적 세 주체가 노동자, 자본가, 정치가이다. 한국은 노동자들이 복지국가/공공복지를 지향하면서 투쟁하는 구조는 아닌 상황이다. 유럽 사민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는 기업별노조로 분절도 심하다. 기업별 노조가 공공복지를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다. 사민주의 국가의 노조는 국가를 상대로 전체 계급을 위한 복지를 요구하는 차이가 있다.
재벌경제가 아닌 중소기업경제라면 대만이나 덴마크처럼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게 된다. 기업에서 얻을게 없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대기업에서 노조가 얻을 것이 많다. 이 두 조건이 마나서 공공복지를 요구하는 힘이 약하다. 시민단체 밖에 없는데, 힘이 없다. 또 소선구제라는 제약이 복지를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 만일 정치인들이 복지가 재선에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이다. 재선을 위해선 신공항 사업처럼 지역사업에 목을 매달아야 한다. 복지는 립서비스일 뿐 열성을 가지고 매달리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희망이다. 전국을 상대로 지지와 동원을 이끌어야 하는데, 복지는 중요한 주제이다. 한국이 방향을 잘 잡아서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간 수준 이상의 복지국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보수라면 복지로 방향을 잡더라도 지출 수준이 낮은 쪽으로 약하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