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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에 갇힌 대한민국, 그리고 나[부동산 강좌 ②]
지난 주 김남근 변호사의 첫 강의에 이어 이번 주 2강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이신 손낙구 강연자를 만나는 자리였다. 강의 주제는 ‘대한민국은 부동산 계급사회다’ 였는데, 한국사회의 부동산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들을 계급적으로 다루어보고 또한 주요 통계들을 살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내 피부에 와 닿는 얘기들이라 그런지 자연스레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난 단독주택 반지하 셋방에 살았다. 어리기도 했었고 그때부터 나빴던 기억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에서의 기억은 하나밖에 없다. 시끄럽게 집 마당을 뛰어다니는 나 때문에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우리 네 식구는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처음 봐서 너무 신기했던 엘리베이터,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없는 1층이라는 게 속상하긴 했지만 아무리 뛰어놀아도 뭐라고 할 사람 없는 진짜 우리 집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한동안 밥만 먹으면 동생이랑 집을 나와서 다음 밥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놀았는데 그것도 금방 질렸다. 역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이 최고였다.
난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다. 7살 때는 운동장 같던 집이 스물아홉이 된 지금은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이사를 가고 싶지만 주변엔 평수를 늘려서 갈 곳이 없다. 22년이란 시간동안 집값은 10배가 넘게 올랐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 소용이 없다. 7살 때 천만 원만 더 보태면 옮길 수 있던 집이 이제는 3억 이상을 더 줘야 갈 수 있단다. 전에는 꿈이라도 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꿈 꿀 수 없는 집이 되어버렸다. 자산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부인데 집값은 계속 오르니 전세로 옮겼다간 전에 살던 집마저도 가질 수 없게 될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당신 소유의 집이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손낙구 강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 지금까지 아버지 덕에 '6계급'에서 '2계급'으로의 승급해서 호화스런 생활을 해왔지만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게 되면 다시 '6계급'으로 강등되는 도시빈민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너무 겁이 난다.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 하는 것일 텐데 결혼이 행복을 생각나게 하기 이전에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뿌리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 마치 쓸개에 튜브가 꼽혀 죽을 때까지 쓸개즙을 빼앗기는 곰처럼, 돈을 버는 족족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집을 마련하는 데 올인해야 할 상황들 앞에 놓인 내가 가엾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 강연이 기다려졌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게 거짓말로라도 내게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내게 부동산 문제는 답이 보이지 않는, 풀 수 없는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손낙구 강연자가 제시하는 대안인 계급별 맞춤형 주택정책이나 점진적 택지국유화를 통한 공공주택 공급 등을 들으니 공감이 가면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사실 강연 후에도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재건축 대상이 되어 집값이 오르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세 들어 장사하던 가게 주변이 재개발이 되어 보증금도 못 받고 쫓겨나 이리저리 시위하러 다녔던 우리 어머니처럼,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5적(건설재벌)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더욱 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가 될 때, 22년 전 우리 어머니처럼 집주인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재연 되는 일이 없기를, SH공사 광고 문구처럼 더 이상 집이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 되기를, 지금까지 내 걱정이 기우이기를 희망해 본다.
- 이 후기는 성남에 살고 있는 임홍재 수강생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