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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년 기념강좌[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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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 김동춘 교수<한국전쟁 60년, 한반도와 세계>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한국의 냉전적 사고, ‘좌파’낙인 등 현재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의문은 “우리나라는 대체 언제부터 이랬던 거야?”였다. 숨막히는 경쟁을 해야 하는 지금에는 외환위기라는 과거가 있었고, 부패와 기만의 정치 너머에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있었다. 천안함 사고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야한다는 극우들의 외침에는 ‘한국전쟁’이 자리하고 있음을 4번째 강의에서 깨달았다.
김동춘 교수
한국전쟁은 남과 북만의 전쟁이 아닌 동아시아 전쟁
4번째 강사로 나선 김동춘 교수는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일본의 후텐마기지 문제 해결이 우연인 듯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같은 문제라고 했다. 후텐마기지는 대만을 보호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에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 확대할 수 있는 곳이다. 후텐마기지문제가 일본사회에 대두되면서 하토야마 전 총리가 기지이전을 약속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을 반대하는 미국과 협상이 지연되면서 지지율은 곤두박질 쳤고 때마침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전문제가 없던 일로 결론이 났다. 비록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천안함 사고가 북한어뢰로 판명나면서 후텐마기지문제까지 해결되어버린 것은 국제적인 외교문제로 볼 때 ‘미국의 영향력’면에서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 역시 국제적으로 보면 남과 북만의 내전이 아닌 미국, 소련, 중국 등이 가세한 동아시아 전쟁”이라고 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이다. 오늘날까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하는가”이다. 그것만이 오늘과 같은 천안함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먼저 김교수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이 전쟁 후 어떤 것을 잃고 얻었는지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러시아, 중국 먼저 의견조율한 것은 맞지만 먼저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중국, 소련, 일본 등 결과적으로 이득을 얻었다. 최대 수혜자는 경제적 부흥을 할 수 있었던 일본이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미국, 중국도 막 혁명을 마친 국가가 미국과 대등한 전쟁을 했다는 면에서 국제적으로 각인되었으니 나름대로 혜택을 얻었다” 일본이 기지국가라고 불린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일본은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의 무지를 제조하고 물자조달을 하면서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했다. 한마디로 전후 패망으로 힘들었던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신이 내린 전쟁”이었다.
김동춘 교수
전쟁의 명분은 정치적 득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전쟁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말은 생소하다. 미국은 남한을 위해 북한과 싸워준 고마운 우국이 아니었던가. 도와주기만 했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김 교수는 “미국이 무엇을 얻었는지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전쟁 후 주가가 폭등했다, 45~9년에 경기침체를 겪으며 실업률이 증가하고 문제점이 대두됐었는데 한국전쟁이 호재가 됐다. 메카시즘도 50년 1월 한국전쟁 후 부활하면서 당시 미국공산당, 미국노동계(당시 전체 노동자의 30%를 차지하면서 세력이 강했다고 함)를 일거에 없애버렸다. 미국의 진보세력이 루스벨트가 있던 30년대부터 강해지다 한국전쟁 후 약해진 것이다. 또한 군사무기와 산업이 만나면서 미국보수인 군산복합체가 만들어졌다” 지금 미국 보수의 핵인 네오콘도 한국전쟁에서 출발한다고 봐야할까. 김 교수는 한국전쟁이 세계질서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냉전체제를 굳히고 미국우익세력의 헤게모니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됐다. 미-소간의 관계가 고착된 것이다” 남북한의 희생자만 300만-이것 역시 정확한 통계가 아님-혹은 그 이상인 큰 전쟁에서 남북한만 폐허가 되고 가담했던 나라들은 제 이익만 챙겨 돌아간 전쟁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전쟁을 도와준 영웅으로 보는 ‘맥아더’는 어떤 이해관계에 있었을까? 맥아더는 이승만식의 북진통일을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그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북까지 김일성 세력을 쫓아내면 중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북한까지 갔다면 러시아와 전쟁이 일어나 3차 대전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루먼 입장에서는 “북진통일을 할 이유가 없었으며 정치적으로는 전쟁보다 전쟁을 통한 국민단합과 전쟁을 통한 경제 살리기”가 먼저였다. 맥아더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었다. 김 교수는 “전쟁터에서 군인은 정치에 종속되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 중에 하나일 뿐이므로 최종지휘관은 정치가인 대통령이다. 정치는 국가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단순한 군인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트루먼은 미국의 기득권, 자본가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전쟁에서 지지도 이기지도 말자는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김동춘 교수
일방적 기억이 ‘전쟁불사론’을 만든 것.
김교수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지금까지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북한의 비극이다. “한국전쟁 후 김일성 단일권력체제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다. 내부의 견제권력이 없으니 권력이 썩게 되고 실패한 공산국가가 된 것이다. 또한 ‘선군정치’하는 것도 군을 앞세운다는 이야긴데 여전히 전시체제라는 이야기다. 60년 전과 똑같다.” 남한 역시 전쟁논리가 유지되고 있다. “천안함 발생 후 전쟁기념관에서 성명발표하고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더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승만도 권력이 유지된다면 수백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맥아더가 핵 사용하려고 할 때 이승만이 OK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전쟁논리는 60년 전과 같다. 바로 “분단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은 60년 전에 일이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정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설과 영화로 다루어지지 않은 사건은 역사가 아니다. 일반 시민들 속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 때 미군이 도와준 것은 맞지만 미군이 학살한 것은 없는 역사, 객관적으로 사실이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 없으면 없는 역사다. 미디어와 교육이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보수신문이 수개월 동안 지면을 활애해 전쟁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억정치다. 기억을 누가 선점하느냐, 과거문제가 아니라 현실정치다. 여론에 의해 정치가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전쟁불사론을 잠재울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라고 했다. 전쟁에 대한 일방적인 역사만 기억하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의 문제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젊은이들의 목숨에 대한 문제이고 현실로서 전쟁준비체제로서의 한국사회, 국가보안법, 징집체제, 미국에 무기구입에 돈을 퍼부어야하는 체제에 대한 것”이라면서 “우리사회가 어떻게 건강한 민주적인 사회가 되느냐.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군인이 되느냐”로 확장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남북한이)한국전쟁 영향 아래 여전히 있기 때문에 끌려다니지 말고 남북간의 민족적인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마무리했다.
미소냉전체제가 종식된 지금은 다른이름의 강대국들이 또한 한반도문제를 둘러싸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종식이 아니라 휴전상태라는 말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