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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와 공간의 인문학[7강]
‘노래=음악’인 걸까요? 물론 노래는 음악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가사 덕에 문학일 수도 있죠. <서울, 도시와 공간의 인문학> 일곱 번째 강의는 대중가요를 문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거기에 비친 서울과 도시민의 모습을 엿보았습니다. 강의를 해주신 분은 ‘음악 평론가’ 말고 '노래 평론가‘라 불리길 원하신 이영미 선생님입니다.
‘대중가요’라면 아무래도 소비주체인 ‘대중’의 존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죠.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전근대적 공동체를 중심으로 점점이 조직된 것과는 다른, 대규모로 조직된 근대적 인간 집단이래야 ‘대중(大衆)’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광범위한 동원의 과정에서 대중매체의 개입은 필수적입니다. 이 “대중매체에 의해 상업적으로 대량생산되고 대량유통되는” 것이 바로 대중가요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자본주의니 시장경제니 하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중심인 도시와도요. 대중가요가 도시인의 경험과 욕망을 노래하게 되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중가요가 시작된 시점 역시 대중매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인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제작된 것이 1926년입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 일본어 방송이 시작된 것이 1927년이고 한국어 방송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두 해 뒤니까, 대략 그즈음을 우리나라에도 대중가요라는 것이 본격 시작된 시점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1934~35년 무렵에 식민지 조선의 대중가요는 전성시대를 맞게 됩니다. 이영미 선생님은 전성기가 이 시기에 찾아온 이유로 세대의 문제를 짚습니다. 1930년대 중반에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는 1910년대, 즉 이미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라는 점이지요. 이들은 독립운동에 대한 이렇다 할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방을 상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어쩌면 일본 중심의 아시아 질서가 이들에게는 당연히 주어진 전제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 식민지 시대의 신세대들이 당대 일본에서 유행한 최첨단 스타일을 들여온 것이지요.
하지만 외부로부터 이식된 유행은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긴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대중가요에서 그려지는 서울은 그러한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과장될 정도의 화려한 불야성과 미개발된 자연녹지. 그것은 이상과 현실, 외래와 토착의 먼 간극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또한 욕망과 억압이라는 모순된 방식으로 수용된 근대화의 부조리함을 보여줍니다. 가령 김해송의 <꽃서울> 속 다음과 같은 가사에서는 화려하지만 무언가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하는 도시를 그려냅니다.
“수박냄새 흩날리는 노들강 / 꽃잎 시든 비단물결 으스름 / 인사않는 고운 눈동자 고운 눈동자 / 마셔라 마셔 사랑의 까페 / 오색꽃 뿌려서 춤추는 꽃서울 / 꿈속의 파라다이스여 청춘의 불야성”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이상과 현실이라는 딜레마가 치유될 수 있을까요? 한 켠에서는 서양식 선진화의 논리가, 다른 켠에서는 민족주의의 논리가, 아직까지도 힘을 얻는 우리나라에서 외래와 토착의 갈등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50, 60년대의 대중가요는 상대를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꾸었을 뿐, 식민지 시대와 똑같은 갈등을 반복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실제보다 과장해서 서양화한 것으로 그려낸 가사는, 서양이 욕망과 동일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어를 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그러한 사례가 될 수 있겠네요. 현인의 <서울야곡>처럼 말이죠.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에 /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밤도 울어야 하나 / 베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서양의 어설픈 아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 서울은 시골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이촌향도의 시대였지요. 정부의 중앙집중식 개발 계획 하에서 지방은 서울의 내부식민지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마치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일본과 미국을 동경했던 것처럼, 식민지 지방은 서울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새빨간 장미보다 새하얀 백합보다 천 배나 만 배나”(봉봉사중창단 <꽃집의 아가씨>) 예쁜 서울의 아가씨의 화려함 이면에는,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이미자 <흑산도 아가씨>)의 동경과 소외감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세대가 바뀌고 70, 80년대에 들어서게 되면 이러한 서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의 삶을 일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거꾸로 전원을 꿈꿀 수 있습니다. 도시가 준 희망보다 상처를 더 많이 기억하게 된 세대니까요. “나는 돌아가리라 쓸쓸한 바닷가로 / 그곳에 작은 집을 짓고 돌담 쌓으면 / 영원한 행복이 찾아오리라”(양희은 <한계령>) “저 푸른 초원 위에 /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사랑하는 우리 님과 / 한 평생 살고 싶어”(남진 <임과 함께>) 하지만 이들이 그렸던 전원은 다분히 이상화된 것이었습니다. 희망만 있을 것 같았던 서울이 좌절을 안겨준 것처럼, 현실의 전원은 또 다시 기대를 배신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다른 한 편에서는 고달픔을 안고 서울의 삶을 수용하는 태도도 나타납니다. 윤수일의 <아파트> 같은 곡이 그리듯이요.
도시의 삶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자각과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낙원으로 회피하거나 도시를 수용하는 것과는 다른 목소리로 출구를 열기도 합니다. 가령 정태춘의 곡들이 그런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의 초기작들이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표출했다면, 8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문명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작품을 내놓습니다.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 정태춘 <북한강에서>
그리고 조금 덜 정제된,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가 가사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붙인 민중가요지만, 적나라한 감정 묘사가 감정을 쥐고 흔듭니다.
“너희집은 큰 집에서 네 명이 살지 우리 집은 작은 방에 일곱이 산다 /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또 사니 너희는 집 많아서 좋겠다 /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우리 집도 하얗지
내일이면 우리 집이 헐리워진다 쌓아놓은 행복들도 무너지겠지 / 오늘도 그 사람이 겁주고 갔다 가엾은 우리 엄마 한숨만 쉬네 / 개새끼 개새끼 나쁜 사람들 엄마 울지 마세요
아버지를 따라서 일터 나갔지 처음 잡은 삽자루에 손이 아파서 / 땀흘리는 아버지를 바라다보니 나도 몰래 내 눈에서 눈물이 났다 / 하늘에 태양아 잘난 척 마라 자랑스런 우리 아버지“ - 양병집 <못생긴 얼굴>
참담하게도 여전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모자라 강의는 70, 80년대의 대중가요를 살펴보는 것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여기의 대중가요를 돌아보게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걸그룹의 <텔미 Tellme>나 <지 Gee>같은 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처럼 루저의 감성을 드러내는 곡이 간간히 주목받는, 그리고 홍대 앞 철거건물 두리반을 중심으로 일군의 문화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의 대중가요가 그리는 여기 서울의 풍경은 어떤가요? 혹 여전히 팍팍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민중가요가 사라진 원인이 궁금하신가요?
“민중가요 문화가 정치적인 진보성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중가요는 매체를 통해 유지되지 않습니다. 80년대에는 구전됐지요. 대안적 문화를 꿈꾸는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민중가요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여성운동, 시민운동에서 민중가요가 생겨날 수 없는 것은 삶을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디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그 역시도 메인스트림 곁에 있으니 힘이 부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수용자인 대중인데, 주류의 흐름을 거슬러 문화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구라가 좋아한다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같은 노래들이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