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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탄생[1-3강]
지난 철학 강의 후기 때도 떠들어댔던 바, 난 10대 소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30대 후반의 아줌마... 그러므로 이건 뭐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최근 즐겨듣는 노래 <sad thing>을 부른 가수의 이름처럼 ‘어른아이’이다. 그 노래의 가사는 무척이나 단순해서 단 두 줄의 가사가 전부이다. 외우기 무지 쉽다.
첫째 줄 - i saw you... you in me...
난 내 안의 너를 보았다. 이 때 내 안의 너는 나일수도 타인일수도 있는데 만약 그게 나라면... 그래, ‘나 안의 나’는 어찌 보면 익숙한 존재이다. 이 따끔 내 존재를, 내 삶을 차분히 응시하게 되는 순간은 누구한테나 있기 마련이다. 내 안에 갇혀 있는 나는 잘 살고 있는 건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건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그렇게 안부를 묻다보면 지쳐있는 내가 보이기도 하고 뒷걸음쳐 도망가는 나도 보인다.
<어른의 탄생>이라는 강의는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나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기나긴 안부들을 묻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20대의 나름 치열했던 사랑의 시기에서부터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고, 일에서 성공을 이루고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자식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이 나만의 history 안에서 ‘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느냐고 안부를 묻는 시간...
수강생들 각자의 역사 그리고 그들이 그동안 살아오며 자신들에게 물어왔던 안부의 소소한 내용들로 강의는 흘러갔다. 물론 김선주 선생님 개인의 역사와 안부들도 강의를 통해서 또 매회 이루어졌던 점심식사와 그 뒷공간들을 통해 실컷 들을 수 있었다. 강의보다 오히려 강의 뒷풀이가 더 박진감 넘쳤다고나 할까...
일에 치이고 아이에 치이고 사람들, 돈, 나이 등등에 치이고... 그렇게 마구 치이다 우리는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진지한 안부를 묻는 일의 소중함은 잊어버린 게 아닌지... 가끔 전화나 메일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그들의 일상은 어떤지는 물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렇게 사는 게 힘들진 않는지 따위를 묻는 일에는 너무 야박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의 탄생>이라는 강의가 내 안에서 <나에게 안부를 묻다>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지막 줄 - it's so sad... sad thing...
강의를 통해 그렇게 성찰의 시간들을 갖는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정신적으로 그리 독립적이지 못했다는 뼈아픈 사실을 얻었다. 거의 연애 10년 결혼생활 10년을 함께 한, 그래서 무슨 솥바닥 누룽지처럼 달라 붙어있던 내 생애 유일한 남자...
한 사람과 20년 동안 거의 한 공간에서 머물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하는 변명과 위로의 말도 좀 건네며 나는 이제 나 자신의 독립을 조용히 준비한다. 솥 안에다 물을 확 부어야겠다. 누룽지는 서서히 불어 솥바닥에서 분리될 것이고 물은 그렇게 우리 둘 사이를 별다른 상처 없이 떼어내어 줄 것이다. 그 과정이 순탄히 진행되어 우리 둘의 관계가 숭늉으로 남게 되길... 그렇게 구수함으로 남게 되길 바란다.
it's so sad...라고? 그래 그렇게 서로 분리되어 섞이는 일이 마냥 해피하지만은 않지...그래도 내 분신과 같은 사람이지 않은가... 김선주 선배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육친과 같은 관계이다. 하지만 선생님 조언대로 독립할 기회를 실기(失期)하지는 않으리라...
내가 내 안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차분히 응시하는 일 또한 언제나 행복한 작업은 아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다른 무엇이든... 말없이 들여다보면 세상에 온갖 아름다운 것들 안에는 언제나 슬픔이 함께 한다. 아름다움이 깊은 울림으로 남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슬픔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나의 시간을 벤자민 버튼식으로 되돌려 보면... 내 추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들의 공통점 또한 그 바탕은 슬픔이다.
아홉 살 무렵이었던가... 시골 야트막한 구릉에 누워 한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던 어느 봄날 오후가 있었다. 해저물녘 풍경이 간직하고 있는 비스듬한 햇살, 온 곳을 알 수 없는 바람과 구름, 나무와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
그때 알았다. 무언가를 깊게 들여다본다는 것은 슬프다.
그 기억 때문에 난 슬픔이 주는 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외로움이 주는 동력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내 안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 슬픈 일이라도, 내 일상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알고 나면 무척 외로워질지라도 이젠 잠시 짬을 내서 용감히 거울 앞에 서야할 시간이다.
그 슬픈 응시가 끝나고 나면... 그 안에서 다시 힘차게 고개를 들고 일어날 또 다른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고....... 난 믿는다.
p.s. 다음 강의 시간에, 주은경선생님이 이 쯤이 음악을 틀 때라고 말씀하시면 바로 그 순간 여러분께 <sad thing> 들려드릴께요!
성실한 자원활동가 올림
첫째 줄 - i saw you... you in me...
난 내 안의 너를 보았다. 이 때 내 안의 너는 나일수도 타인일수도 있는데 만약 그게 나라면... 그래, ‘나 안의 나’는 어찌 보면 익숙한 존재이다. 이 따끔 내 존재를, 내 삶을 차분히 응시하게 되는 순간은 누구한테나 있기 마련이다. 내 안에 갇혀 있는 나는 잘 살고 있는 건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건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그렇게 안부를 묻다보면 지쳐있는 내가 보이기도 하고 뒷걸음쳐 도망가는 나도 보인다.
<어른의 탄생>이라는 강의는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나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기나긴 안부들을 묻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20대의 나름 치열했던 사랑의 시기에서부터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고, 일에서 성공을 이루고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자식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이 나만의 history 안에서 ‘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느냐고 안부를 묻는 시간...
수강생들 각자의 역사 그리고 그들이 그동안 살아오며 자신들에게 물어왔던 안부의 소소한 내용들로 강의는 흘러갔다. 물론 김선주 선생님 개인의 역사와 안부들도 강의를 통해서 또 매회 이루어졌던 점심식사와 그 뒷공간들을 통해 실컷 들을 수 있었다. 강의보다 오히려 강의 뒷풀이가 더 박진감 넘쳤다고나 할까...
일에 치이고 아이에 치이고 사람들, 돈, 나이 등등에 치이고... 그렇게 마구 치이다 우리는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진지한 안부를 묻는 일의 소중함은 잊어버린 게 아닌지... 가끔 전화나 메일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그들의 일상은 어떤지는 물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렇게 사는 게 힘들진 않는지 따위를 묻는 일에는 너무 야박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의 탄생>이라는 강의가 내 안에서 <나에게 안부를 묻다>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지막 줄 - it's so sad... sad thing...
강의를 통해 그렇게 성찰의 시간들을 갖는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정신적으로 그리 독립적이지 못했다는 뼈아픈 사실을 얻었다. 거의 연애 10년 결혼생활 10년을 함께 한, 그래서 무슨 솥바닥 누룽지처럼 달라 붙어있던 내 생애 유일한 남자...
한 사람과 20년 동안 거의 한 공간에서 머물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하는 변명과 위로의 말도 좀 건네며 나는 이제 나 자신의 독립을 조용히 준비한다. 솥 안에다 물을 확 부어야겠다. 누룽지는 서서히 불어 솥바닥에서 분리될 것이고 물은 그렇게 우리 둘 사이를 별다른 상처 없이 떼어내어 줄 것이다. 그 과정이 순탄히 진행되어 우리 둘의 관계가 숭늉으로 남게 되길... 그렇게 구수함으로 남게 되길 바란다.
it's so sad...라고? 그래 그렇게 서로 분리되어 섞이는 일이 마냥 해피하지만은 않지...그래도 내 분신과 같은 사람이지 않은가... 김선주 선배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육친과 같은 관계이다. 하지만 선생님 조언대로 독립할 기회를 실기(失期)하지는 않으리라...
내가 내 안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차분히 응시하는 일 또한 언제나 행복한 작업은 아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다른 무엇이든... 말없이 들여다보면 세상에 온갖 아름다운 것들 안에는 언제나 슬픔이 함께 한다. 아름다움이 깊은 울림으로 남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슬픔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나의 시간을 벤자민 버튼식으로 되돌려 보면... 내 추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들의 공통점 또한 그 바탕은 슬픔이다.
아홉 살 무렵이었던가... 시골 야트막한 구릉에 누워 한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던 어느 봄날 오후가 있었다. 해저물녘 풍경이 간직하고 있는 비스듬한 햇살, 온 곳을 알 수 없는 바람과 구름, 나무와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
그때 알았다. 무언가를 깊게 들여다본다는 것은 슬프다.
그 기억 때문에 난 슬픔이 주는 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외로움이 주는 동력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내 안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 슬픈 일이라도, 내 일상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알고 나면 무척 외로워질지라도 이젠 잠시 짬을 내서 용감히 거울 앞에 서야할 시간이다.
그 슬픈 응시가 끝나고 나면... 그 안에서 다시 힘차게 고개를 들고 일어날 또 다른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고....... 난 믿는다.
p.s. 다음 강의 시간에, 주은경선생님이 이 쯤이 음악을 틀 때라고 말씀하시면 바로 그 순간 여러분께 <sad thing> 들려드릴께요!
성실한 자원활동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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