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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6강:과학기술과 시민참여
<'마지막'이라는 단어>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힘이 세다!
마지막 순간, 마지막 회, 마지막 숨소리, 마지막 세일, 마지막 사랑, 마지막 수업...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다시는 같이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엄청난 불안을 안고 있어서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단번에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마지막 강좌를 향해>
'시민의 눈으로 보는 과학기술'의 4강(회사일때문에)과 5강(황당하게 지하철사고로)을 결석해서 마지막 6강좌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강좌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에는 지금까지 함께 강좌를 들었던 분들과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마지막 강좌를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과학기술 강좌 자체의 마지막도 함께 하고 싶었다. 하여튼 마지막 강좌를 듣기 위해 긴급한 회사일도 모두 때려치우고 경복궁역을 향했다.
서둘렀지만 퇴근시간가까이에 일이 몰려서(이상하게 퇴근시간만 되면 없던 일들도 생긴다) 6시 12분을 넘기고 말았다. 6시 12분은 정자역에서 선릉역방향 지하철이 출발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6시 12분을 넘겨서 지하철을 타면 늦어지는 것 같고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나 즐거운 지하철 책읽기>
다행이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적당한 자리에 서서 '소설 기문둔갑'을 손에 받치고 읽었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은 다 읽었고 뒷부분에 부록으로 있는 기문둔갑에 대한 내용을 읽고 있었다. 정말 시간을 주관하는 신들의 방향을 알고 그 신들과 친하게 지내면 나에게 불운도 비켜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진지하게 책을 읽었다. 뒷부분에 있는 흥미로운 숫자들과(가로세로 더해서 모두 같은 수가 나오는) 붉은 부적이 인상적이었다. 도곡역에서 사람들의 파도에 잘 휩쓸려 3호선으로 잘 환승했다. 어느덧 시간은 7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언제나 지각하지만 7시를 넘겼다는 것이 마음을 급하게 한다.
<빈자리의 행운, 새로운 경험 하나>
아마 옥수역쯤이었던 것 같다. 내 앞에 자리가 하나 비는 행운을 얻었다. 게다가 7자리중에 오른쪽 끝자리였다. 나는 바로 앉았다. 나는 언젠가 왜 지하철 자리는 7자리씩 만들었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지하철 한 칸의 좌석수는 7*6 + 3*4(노약자,장애인,임신부를 위한) = 54석이다. 54라는 숫자는 예전 초등학교때 한 반의 학생수가 50여명(49, 50, 51)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안고 가방위에 책을 놓고 읽고 있었다. 아마 약수역쯤에 내 오른쪽 자리가 비더니 누군가가 앉았다. 그 누군가가 앉는 순간 시크한 냄새가 2초동안 났다가 사라졌다. 이 갑작스런 경험에 살짝 눈을 책에서 꺼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거기에 몸집에 좋은 백인 아저씨가 앉아계셨다. 그 순간 '아, 누군가가 백인에게서 난다는 특이한 냄새가 이런 냄새였구나'하고 생각했다. 누군가 백인에게서 나는 냄새를 얘기했을 때 그 때는 내가 왜 그런 냄새를 못 맡을까 혹시 내 후각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 그런 냄새를 맡았으니 내 후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새로운 냄새 하나를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단 2초동안의 경험이었지만 그리 기분좋은 냄새는 아니었던 것 같다.
<조여오는 압박 그리고 해제>
그런데 그 후각 경험은 2초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후로 또 다른 문제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 분이 나를 자꾸 압박하고 조여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분의 몸집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 분도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분에게는 자리가 좁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일어날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일어나면 누군가 앉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앉지 않는다면 내 오른쪽에 계신 백인남자분은 당황해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젊은 여자분이 서 계셨는데 그 분도 내가 일어섰을 때 앉아아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할 것이다. 앉으려니 옆에서 압박할 것이고 자리가 비어있는데 서 있으려니 옆 백인남자에게 미안해할 것이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냥 앉아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에 눈을 두고 있었지만 내 앞에 있는 여자분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일어날지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이런 긴장상황은 곧 해제되었다. 그 백인남자분이 내리셨고 그 전에 내 앞에 계신 여자분도 사라지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향한 달리기>
나는 기문둔갑을 거의 다 읽어갔고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농학교를 향한 출구를 찾아 서둘렀다. 출구를 나와 뛰기 시작했다. 매번 경복궁역 출구에서 참여연대까지는 뛰어야 했다. 이미 지각이기 때문에. 전에는 뛰는 게 힘들었고 조금 지겨웠지만 오늘은 힘들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더 켰다. 다시는 이렇게 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마지막'은 힘이 셌다.
전과 같이 참여연대 3층은 어두웠고 조용했다. 하지만 그 너머 강의실은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아는 몇몇분이 눈을 맞춰주셨고 인사하셨다. 나는 자리를 잡고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다행이 많이 진행된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은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님께서 '과학기술과 시민참여'에 대하여 강의해주셨다.
강의 내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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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만능주의에 대한 회의>
계몽주의 이후로 과학기술은 '합리성과 진보'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여러 사고들(인도 보팔(1984년): 아직도 보상못받고 있음, 체르노빌(1986) 사고)들로 인해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음.
즉,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회의이다. 점차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기존에는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의 결정에 훈련받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서 결정했다. 일반 시민들은 그 결정을 통보받는 소비자역할만 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결정한 과학기술정책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서구에서는 1990년부터 시민참여를 통해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또다른 불합리성의 생성>
근대화란 결국 모든 것의 합리화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을 통해 오랜 불확실성과 위협들을 줄였지만(합리화), 전에 없던 불확실성과 위협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결국 혹땔려다 또 다른 혹이 붙은 격이다. 기존의 불확실성을 합리화시켰지만 과학기술 자체로 인해 또 다른 불확실성이 생겼다.
일상 생활에서 과학기술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복지는 증가하지만 개인의 통제영역밖에 있는 '전문가체제'에 대한 의존이 증가함. 이 전문가체제가 안정과 안전한 생활을 보장못할 경우가 문제이다. 예를 들면, 약사가 권해준 약을 먹었을 때 부작용, 인터넷 사용시 개인정보 유출.
<지금은 '탈정상과학의 시대'>
과학기술이 점점 발달할수록 자연에 개입을 더 많이 하게 됨. 개입이 증가할수록 부작용은 복잡해지고 위험이 커짐. 예를 들면, 원자력발전,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오존층파괴'는 과학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낸 것임. 일반인은 알 수 없음. 과학 스스로가 이런 위험,현상을 설명할수록 과학자체의 불확실성이 드러나고 있음.
가치나 이해관계가 개입된다면 전문가들도 확신못하는 논쟁으로 확대됨. 예를 들면, 4대강에 대한 찬성과 반대에 대한 과학자들의 대립. 찬성과 반성에 대한 과학자(전문가)들의 논리안에는 그들만의 가치나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음. 따라서 지금 시대는 '탈정상과학의 시대'임. '탈정상과학(Post normal science)'이란 '정상과학'이 없다는 뜻. '정상과학'이란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 패러다임임. 예를 들면 과거 천동설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에는 천동설이 정상과학이었고 누구도 천동설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음.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정상과학이 있기 힘드므로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전문가들만의 검증과 관리로서는 한계가 있음. 그래서 다양한 시민들의 지식과 의견도 더해져야 함.
예를 들면, 사람들은 비행기 타는 것과 자동차 타는 것 중에 비행기 타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 통계를 내보면 자동차 타는 것이 사고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비행기 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이 비행기 타는 것을 더 위험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통제가능성과 선택의 폭이 자동차 타는 것보다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와 감정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한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만 믿고 따르는 것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어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아마 이런 측면은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전문가들과 일반시민들은 전문가 집단이 대중을 지배하는 상하관계였으나 이런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한 논쟁의 증가는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위험한 기술에 대한 대중적 논쟁들이 근대사회의 기본적 토대에 도전할 수 있는 보다 민주적인 정치의 씨앗을 그 안에 안고 있음"
(울리히 벡, <위험사회>, 1992)
<위험사회>가 출판되던 시기에 체르노빌 사고가 터져서 이 책 대박났고 저자도 덩달아 유명해졌다고 함.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에 대한 시민들의 규제 요구에 국가는 고민이 깊어간다.
<잠시 쉬는 시간>
어떤 분이 쓰시는 '종이연필'이 화제가 되었다.
김훈 작가가 쓰신 '공무도하'와 종이연필이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김훈 작가는 '마초남'이라고 하신다^^
김훈 작가는 앞에 가고 부인은 뒤에 따라오는 모습.
마초남도 귀여운 면이 있다고 함^^
일본에서는 초식남에 질려서 마초남에 대한 호응이 좋다고 함.
나는 쉬는 시간에 김밥을 몇 개 먹었다.
<과거의 모델('과학을 위한 사회계약')의 한계>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을 위한 사회계약': 국가세금으로 과학연구 지원, 그 혜택은 사회가 누림.
1960년대말에 대두된 여러 사회운동들은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를 주장하기 시작함.
미국의 환경보호청(EPA: Environment Agency), 기술영향평가국(OTA: Official Technology A~) 설치. 1970년에 이후로 유럽, 미국의 경기하락으로 자금지원 감소, 연구 부정 스캔들로 인해 '과학을 위한 사회계약'모델의 위기가 옴.-> 1980년대 '대중의 과학 이해'(PUS) 사업을 추진(과학계 자체내에서 추진됨, 영국의 왕립과학원(Royal Society))
하지만 TA 정책과 PUS 정책은 '시민참여'에 대한 한계가 있었음.
<구성주의적 과학기술학(STS)과 시민참여>
1970~1980년대에 구성주의적 과학기술학(STS) 연구가 성장함. 구성주의적 과학기술학의 발견과 통찰은 '과학과 기술은 결코 보편합리적 '지식'이 아니라 우연적, 국지적 요인들이 작용한 '실천'의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연과 국지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듯 한데... 전적으로 이 통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2/3정도는 동의함)
STS의 실천적 대안 제시: 숙의민주주의(Delivery Democracy) 이론과 참여적 공공정책분서과 결함.-> 숙의적 방식의 시민참여를 통해과학기술이 구성되는 전 과정(연구, 개발, 이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는 것이 오늘날 기술사회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
(정확히는 이해 안되지만, 과학기술이 점점 복잡해지고 통제하기 힘들어지므로 과학기술 정책을 세울 때 숙의적 방식의 시민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뜻 같음.)
<숙의적 방식의 시민참여: 유럽에서의 전환>
'숙의적 방식의 시민참여'의 예는 네덜란드의 '구성적 기술영향평가'(CTA)와 덴마크의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이다. 다양한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전문가로부터 지식과 정보를 얻고 토론하여 정책결정에 반영(보고서 작성).
전문가가 결정하고 시민에게 통보하는 모델은 과거에 해봤지만 분명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그래서 쌍방향 대화를 강조하는 모델쪽으로 변경됨.
1990년대 후반, 광우병 사건과 GMO 반대운동이 가장 심했던 영국은 새로운 과학정책으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했음(2000년에 발표한 <과학과 사회> 보고서='대중의 과학 참여'(PES) 접근으로 이행)(인터넷으로 열람가능). 이런 방향이 나노기술,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등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
유럽에서는 시민참여로 정책이 전환되었음!
<시민참여의 여러 방법들>
후원자가 존재(국가 등)하고 숙의적인(시민기여가 높은) 경우는 합의회의(검사,변호사 등의 전문가를 불러서 시민배심원들이 토의하여 영향력행사->보고서 작성), 시민배심원, 숙의적 여론조사(시민들에게 각종 정보 제공, 학습시킴, 분임토의후)가 있음.
(나는 여기서 시민들을 '학습'시킨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시민들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을 자주 듣지 못해서 그렇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닌 것이다.)
후원자가 존재(국가 등)하고 비숙의적(시민기여가 낮은) 경우는 여론조사, 공청회(우리나라의 경우는 결정을 미리 다 해놓고 공청회하여 반영안되는 경우가 많음), 주민투표(스위스는 GMO에 대하여 주민투표했음)가 있음.
자발적이고 숙의적(시민기여가 높은) 시민참여는 환자단체의 행동(에이즈 환자들의 치료제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과학상점 이 있다.
과학상점(Science Shop)은 네델란드 학생, 교수들이 시작했음. 당장 지여사회에 나가서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해줌. 지역사회 문제에 대해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함.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음. 시민들이 이에 대한 보답으로 국회에 제출-> 네델란드 대학마다 과학상점에 대한 지원이 제도화됨, 현재는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인문학적으로 확대되었음.
자발적이고 비숙의적(시민기여가 낮은) 시민참여는 주민들의 자발적 저항운동(NIMBY) 등이 있음.
<시민참여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례>
2001년 <과학기술기본법>부터 시민참여를 명시했음.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1997년 11월에 출범하면서 합의회의, 과학상점 등을 국내에 소개했음.
합의회의: 1998년 유전자조작식품, 1999년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합의회의 개최, 시민과학센터는 2004년 전력정책과 원자력발전의 미래를 주제로 합의회의 개최.
정부는 숙의적 시민참여 방법에 대해 소극적이었으나 비판을 판고 2006년 유비쿼터스컴퓨팅 기술, 2007년 기후변화협약 대응기술에 대하여시민공개포럼 실시함. 2008년 '국가재난질환(예, 광우병, 신종플루) 대응체계 시민배심원회의'를 개최.
자발적이고 숙의적 시민참여는 환자단체의 활동(의료비용 지원요구 등)과 과학상점(몇몇 대학에서 시도됐으나 큰 효과없이 중단됨, 2004년 대전지역 '시민참여연구센터'(참터) 출범->시민을 위해 연구해 줄 만한 연구자가 부족)
<지구온난화에 관한 전 세계인의 견해(WWViers)>
2009년 9월 26일 덴마크 DBT의 제안으로 38개 국가에서 총 4천명이 넘는 일반시민들이 동시에 참여한 숙의민주적 시민참여 실험을 했음(World Wide Views on Global Warning).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에 일반시민들의 견해를 알리기 위한 의도가 있었음. 코펜하게 기후회의에는 전문가, 환경단체의 견해만 의논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숙의민주적인 시민참여로 일반시민들의 의견을 알리려고 했음.
아시아는 8개국(중국, 대만, 일본 포함)이 참석했고 우리나라는 참가 초청을 받았으나 정부의 비협조로 결국 참가를 포하했음. 부끄러운 일! '환경재단'이 주도했으나 환경재단이 대운하반대 운동을 했음. 정부가 비협조. 결국 참여못하게 됨.
<국내의 후퇴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
이명박 정부는 시민참여를 확대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기술관료적인 태도도 '민주주의의 후퇴'가 벌어지고 있음.->그 결과로서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의 강호, 정책결정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불신이 심화될 것.
THE MEATRIX(동영상): http://www.themeatrix.com/intl/korean/
<질문 시간>
1) 페미니즘에서 과학기술을 비판한 이유?
-> 출산에 대하여 여성이 통제할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산부인과에 의존하여 남성에 대한 의존이 높아짐.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남성, 자연스레 남성권력이 형성, 발휘되는 분야로 인식됨. 여성이 과학기술분야에 약한건 자질부족은 아니다. 뿌리깊은 문화, 관습의 영향이 크다. WISE(Women In Science Engine)운동.
2) NIMBI 현상, 정상적인 방어현상도 NIMBI 인가?
-> 국가가 민주적으로 유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제공해야 함. 숙의과정 필요.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함.
3) 책추천해주세요.
-> 진보의 페러독스(이메일로 보내준 참고문헌에 있음), 과학기술~, 한국의 과학기술 민주화.
과학기술 이외의 다른 분야도 시민참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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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 (끝)
<참여연대 계단 명화, 마지막 한 컷>
뒷풀이를 위해 우리는 참여연대 건물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창에 걸린 명화 한점을 보고 내 디카가 담아왔다.
여전히 가로등의 하얀 빛들이 검은 기와지붕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마지막 강좌 뒷풀이(쭈꾸미집)>
경복궁역근처에 좁은 골목으로 갔다. 시골장터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우리는 쭈꾸미집으로 들어갔다. 쭈꾸미 요리가 나오고 막걸리와 소주가 몇 번 왔다간 이후에 우리는 자연스레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앞에 계신 교수님, 그리고 내옆에 계신 멋쟁이 여자분과 촛불정신과 1Q84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IQ84는 사놓고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계신분들 대부분은 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김환석 교수님은 딸이 2분인데 둘 다 대학졸업하고 20대 중반이시란다. 그런데 딸들에게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 우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결혼은 여성에게 손해가 많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교수님 소막(소주+막걸리)를 즐기신다. 저런 술조합은 처음 봤다. 한미 FTA반대를 위해 분신하신분의 3주년이 얼마전이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이신 두 분을 만나서 반가웠다(나도 10만인클럽이다^^)! 쭈꾸미 삶은 것을 파에 싸서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은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10시쯤부터 시작한 술자리가 어느새 11시 50분쯤 되어 민수 간사님이 마지막 교수님의 말씀을 청했다. 과학기술 강좌가 다음에 또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을 함께 했다. 그래서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처음, 마지막, 그리고 또 다른 만남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마지막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중간에 오셨던 한 분이 찍어주셨다. 모두 한 잔들 하셔서 얼굴이 재미있으시다^^
<집으로>
우리는 쭈꾸미집에서 나와서 서로 갈 길을 갔다.
나와 지하철을 같이 타신 분은 두 분이다.
그 두 분과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최영아님과 양재역까지 가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좋은생각 5월호를 선물했고 영아님은 양재역에서 내렸다.
나는 도곡역에서 분당선을 갈아탈려고 했지만 분당선이 끊겼다. 그 때 시간이 12시 30분쯤. 그래서 다시 3호선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플래폼. 정말 이상했다. 메트릭스에서 네오가 기차를 기다리는 장면같았다. 다음 3호선을 타고 가락시장까지 갔다. 가락시장에서 성남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보통 버스는 지하철보다 오래동안 있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에서 복정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복정에서 성남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영아씨에게 문자가 왔다. 잘 갔냐는 걱정이 묻어있는 문자였다. 그래서 복정에서 버스기다리다가 안오면 택시타고 갈 생각이라고 답문을 보냈다. 다행이 1시가까이에 407번 버스가 왔다. 이 버스는 내가 사는 신흥역 성남우체국 앞까지 간다. 1시쯤에 내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는 신기했고 고마웠다. 버스에 탔는데 버스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환자처럼 보였다. 대부분 졸고 있거나 이상하게 보였다. 하긴 새벽 1시니 무리도 아니겠지^^ 나는 집에 와서 씻고 2시쯤 잤다. 내일 아침은 피곤하겠지만 마지막 강좌는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이렇게 후기를 쓰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꼼꼼하게 정리해 주셨군요.^^ 마지막 수업이라 아쉬웠지만 그동안 앞에서 들은 수업을 정리해주기도 한 알찬 수업이었어요.
어릴 땐 나름 과학자가 꿈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여전히 과학은 늘 곁에 있긴 하죠. 잘 몰라서 그렇지!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도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