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강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박지숙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4강은 3월 29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라는 제목으로 보도연맹 사건과 태안 기름유출 사건을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법을 지켜야 이익이 되는 사회가 돼야 권력자들은 법을 지킬 것”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강
- 법치,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 -
‘유전무죄 무전유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돈과 권력이 있어야만 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 말들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유난히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MB정부에서 고위공직자들의 범법행위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국무위원들의 청문회는 ‘강부자, 고소영 정부’라는 비아냥대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세 번째 강의는 MB정부 들어 언어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는 ‘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 지키면서 살면 성공할 수 없어?
강의는 한국인의 법의식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됐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신호를 칼같이 지키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무단횡단이나 교통법규위반을 웬만하면 하고, 안 걸리면 장땡이라 생각하는 법의식이 범법에 대한 민감성이 낮은 증거임을 설명했다.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고서는 남는 게 없는 현실이기에 세금탈루를 하는 것이 보통이고 세금을 내면 바보취급을 하는 것이 한국인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법원과 검찰, 법관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위인 것 역시 낮은 법의식을 보여준다. 그럼 이러한 낮은 법의식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김 교수는 그것은 바로 권력자들의 범법에서 출발한다고 단언한다.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목적에 도움이 될 때만 법을 지킨다. / 스피븐 홈즈
당신이 강자라면 링의 규칙을 지키겠는가? 안 지키겠는가?
권투를 예로 들어보자. 권투는 같은 체급끼리 정확한 룰 아래에서 진행되는 경기다. 그래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진정한 승부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겼을 때 권력이 있는 당신에게 확실한 이익이 생긴다면 규칙을 지키겠는가? 김 교수는 “대부분은 권력자라면 법을 안 지킬 것이다. 법을 지켜서 이익이 되면 지키고, 불이익이 되면 법을 지키지 않는”게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범법과 공권력의 범법 중 어느 것이 더 ‘법치’에 치명적일까? 김 교수는 “공권력의 범법은 그 사회의 중심이고 표준”이라고 말했다. 현 국무위원들 대부분이 위장전입은 기본으로 하고 탈세, 뇌물수여혐의, 다운계약 등 차마 셀 수 조차 없을 정도의 범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그들이 여전히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사과한마디 안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정당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기업비리에 대해서 눈감고 특별사면까지 단행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법치’를 하기엔 너무 버거운 당신
김 교수는 “법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법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 불법을 저질러서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에서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말은 법을 제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는 것”이라면서 헌법의 진보성을 역설했다. “정부수립이후 만들어진 헌법은 당시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는데 그것은 미군정 시절 미국과 독일 헌법의 좋은 것만 들여와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대로 살다간 사용자들과 권력자들이 내놓아야할 것들이 많았기에 법을 어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입되고 주어진 법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힘(정치)의 논리가 앞섰고 결국 힘없는 약자들이 착취당하는 역사가 계속됐단 얘기다.
역대 대통령들의 법 위반 사례들
김 교수는 역대 대통령들의 법위반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부정선거, 5.16, 1212 등의 군사쿠데타, 사면권 남용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소동 역시 임시정부를 적통으로 하는 헌법을 위반한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제일 많이 범법한 기관들은 1강에서 지적했던 CIC, 중정(국정원), 기무사 등 수사사찰기관들이다. 특히, 한국전쟁 후와 군사독재시절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들 기관들이 자행한 범법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국전쟁후의 국가기관이 자행한 범법들
한국전쟁 후에는 계엄법, 국방경비법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계엄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김 교수는 “계엄은 군사지도자가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하는 것”이 라면서 계엄을 설명했다. “재판에서 보통의 삼심제가 아닌 단심제로, 입법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명령이 대신하고, 행정은 군사적 목적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사실상 준 전제군주하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후 여순사건 때 계엄이 선포되었으며, 80년 5월 광주가 마지막 계엄이었다. 계엄 시에는 사람을 재판 없이 죽여도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를 살았던 한국인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피해자가 국가폭력을 당연히 여기고 이해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도 어떻게 데드냐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며, 설명 없이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는 경찰에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젊은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랑 다를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계엄의 공포가 한국인의 내면까지 자리 잡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반증일 것이다.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은 당시 계엄법이 없었는데도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한다. 또한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한국전쟁후 처음에 잡혔을 때 국방경비법으로 체포가 됐는데 당시 국방경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존재하지도 않은 법들이 헌법 위에 있었던 셈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계엄법, 국방경비법, 국가보안법 등이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했다”고 했다. 또한 재판기록이 없는 군사재판과 민간인을 재판 없이 살해한 약식처형은 사실은폐와 조작 등 모든 과정이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전쟁과 시장은 쌍둥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준전시상태’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박정희 1974.7.16)
군사독재시절에 활동했던 수사관은 당시의 불법구금, 불법수사를 관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간첩이 아닌 학생, 노동운동가들을 잡아다가 고문, 구타, 심지어 범죄사실까지 조작한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특히, 유신말기와 80,81,85년 정권이 위기를 맞을 때 정치적 목적으로 간첩사건들을 조작한 의혹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군사정권이 고기를 잡다가 파도에 밀려 이북으로 월경한 납북어부들을 이야기했다. 6.70년대 이북을 갔다 오고 중정에서 고문까지 받았지만, 한 참 지난 후에 다시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정치적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군산 앞바다 위도 사람들이 간첩으로 오해받고 동네사람들끼리 밀고를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됐다는 이야기에서는 조작간첩사건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박정희가 말한)준전시상태는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라면서 이를 “오늘날은 글로벌 경제전쟁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전쟁은 이겨야 살 수 있으니 끊임없이 싸워 살아남아야 하고 경쟁지상주의인 오늘날의 시장은 1등만이 살아남으니 “전쟁과 시장은 쌍둥이”이라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스펙을 쌓고 친구를 사귈 때도 계산을 하는 게 당연시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손에 총만 안 들었을 뿐 전시상황임은 분명하다.
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민주주의의 질(質)을 높여야.
김 교수는 독일 학자 베르너 마이호퍼의 <법치국가와 인간의 존엄>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의 질(質)을 이야기했다. “민주주의는 선거, 투표, 미디어, 관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민주주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이것은 스스로 인격적 자존심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에 신뢰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예,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권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인권이 보장되어야 참여하고 발언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발언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민주주의는 인권과 비례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스로 인격적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은 완전 밑바닥 계층이 아닌 이들보다 조금 위에 있는 계층으로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있고 조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권력자들이 법을 지키도록 하는 방법은 “법이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며 이는 대중들의 저항이 셀 때”라면서 “대중의 저항이 없으면 권력은 견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적극적 발언으로 저항을 할 때 법치가 실현이 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