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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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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방준호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3강은 3월 22일 '법치,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 라는 주제로 MB시대 법치주의에 대해 강의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2009년 용산에서 1948년의 제주를 보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2강
누구를 위한 공권력이었나 : 제주 4.3사건과 용산참사
쉽지않다; 따듯한 정의ㅠ
‘따듯한 정의’를 말하는 것으로 강의 시작됐다. 김동춘 선생의 말대로다. 우리는 모두 따듯하고 싶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세상엔 여전히 차갑고 냉철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는 좀...’ 안심하려는 순간, 용산에 불길이 솟구쳤다. 선생은 거기서 제주 4.3 떠올렸다. 강좌는 한국현대사에 영원한 상처로 남은 그 날과, 지금을 쉼 없이 오갔다.
48년, 그리고 지금을 잇는 것은...?
1948년, 그리고 2010년. 60년 간극을 매우는 어휘는 ‘공권력’이다. 선생이 묻는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향한 공권력 인가?” 이미 몇몇 학자들 대답했다.
‘지금까지 역사 상 시민들은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나라 국가권력에 의해서 훨씬 많이 죽었다
-요한 갈퉁’
'경찰은 자기 주민에 대해서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경우가 많다 - 한나 아렌트’
4.3, 지나간 비극일까?
4.3은 공권력 학살의 가장 비극적인 예다. 제주인구 15만 중 3만 정도가 죽었다. 인구 다섯 가운데 하나. 트라우마 아니 남을 수 없다. ‘어느 편에도 서지 말 것. 제주 사람임을 숨길 것’을 가슴에 새겼다. 긴 시간동안 제주사람은 그렇게 두려움에 떨었다.
▲ 살기 위해 망루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철거민들은 도심 테러범이 되었고, 살기 위해 해안가 마을을 버리고
한라산 중산간지대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제주 사람들은 빨갱이가 되었다
죽은 자 대개는 평범한 민초였다. 우익청년단과 경찰의 괴롭힘이 힘겨워 산에 올랐을 뿐. 그 순간 빨치산이 됐고, 죽어 마땅한 적으로 명명됐다.
그렇게 까지 집요하게 그들을 죽여야 했던 이유는? 이승만에게 정당성이 필요했다. 5.10 선거 반대로 불길이 번져선 안됐다. 그의 코드를 눈치 챈, 토벌대장 박진경의 공명심도 한몫했다. 여기에 향보단, 서북청년단, 실제로 학살을 자행한 경찰 끄나풀 조직이 있었다.
▲ 권력자의 코드에 맞추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권력자에 보여줄 성과만을 생각했던 사람들
살기위해 올라간 평범한 민초들. 정당성에 대한 최고 권력자의 위기감. 전과를 올리기 위한 실무자의 오바;; 권력 업은 비공식 폭력집단(혹은 깡패들).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작년 겨울, 용산이다
끝나지 않은 그날의 악몽
누군가 무리한 유추라고 말할지 모른다. ‘용산에선 겨우 여섯 명이 죽었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공권력 학살이라니 가당찮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좀 더 큰 그림이다. 구조와 구조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철거민은 살기위해 올라갔다. 정권은 두려웠다. 촛불이후 스스로의 정당성에 극도로 예민해 진 상태였다. 거기에 용산 4지구에는 28조원이라는 막대한 개발이익이 숨어있다. 갓 임명된 경찰청장은 의욕에 넘쳤다. 용역깡패들은 타이어를 태우고, 행패를 부렸다. 이 때 경찰은 그저 바라만 봤다. 끄나풀과 다르지 않았다.
▲ 경찰의 비호아래 활동했던 철거용역과 제주민의 치를 떨게 만들었던 서북청년단
48년의 공권력과 2010년의 공권력. 가난한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다. 까닭 불분명한 성급함이 같다. 감정적 편향성, 권력을 업은 MOB의 횡포까지...
OTLㅠ 그래도 힘을 합치면^_^
이렇게 다시 한 번 느낀다. 공권력은 중립적이지 않다. 약자의 편 아니다. 국민에게는 강하고, 외세/강자 에게는 굴종적이다. 6.25가 터졌을 때 미국민 피난에만 전력을 다했던 일, 노근리에서 자국민을 차갑게 내친 일을 상기하게 된다.
강의실 안, 모두가 숨죽였다. 두렵고 섬뜩했다. 지키기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던 칼날이 목 아래 차고 들어온다. ‘그들의 일이다.’ 애써 체념하고, 고개 돌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공권력을 누가 쥐는가? 이건 철저하게 힘의 관계를 반영합니다.”는 선생의 말을 듣는다. 외따로 떨어진 약자인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언제 갑자기 살기위한 몸짓이 욕심어린 선동질로 낙인찍힐지 모를 일이다.
죽어도 싼 국민은 없다. 안보 혹은 법치라는 이름 아래 죽어 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역시 어쩔 수 없다. 아직은 따듯한 정의보다, 날 선 정의가 더욱 필요하다. 선생의 마지막 당부가 귓가에 남는다.
“공짜 점심은 없다. 힘없는 시민들이 모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귀찮고,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작고 소소한 실천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