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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1강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박지숙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2강은 3월 15일 '누구를 위한 공권력이었나' 라는 주제로 제주 4.3사건과 용산참사에 대해 강의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1강
- 수사사찰기관(국가정보기관)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만들었나?
민주주의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지난해 참여연대가 처음으로 열었던 느티나무
<월요민주주의 학교>가 꼬박 1년 만에 시민들을 맞이한 것이다. 경제, 사회로 분야를
나눠 했던 지난해 강의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실감했던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올해 민주주의 학교는 지난해 전쟁으로 인한 국가와 사회의 모순점을 짚어주 었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를 첫 강사로 모셨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이라는 다소 무거운, 그렇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주제로 6주간 진행된다. 시린 바람이
불던 지난 8일 첫 강의가 시작됐다.
만 명의 구술기록, 물어보는 이 하나 없어
강의는 김 교수가 지난 4년 동안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마감하면서 느꼈던 단상들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됐다. “한국현대사 자료들에서 만 명의 구술기록을 살펴본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로서 오랫동안 공직자로 활동한 사람은 나뿐일 텐데 물어보는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미국이 필요로 하고 미국 7개 대학에 순회강연을 하고 돌아왔다”며 과거에 무관심한 국내사정에 대해 씁쓸해했다. 우리보다 미국이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왜 우리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 결국은 힘센 나라에 종속이 되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건가”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역사를 막는 길은 스스로 지난 역사를 살펴보고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메시지였다. 또한 경술국치 100년인 올해 일본은 3,4년 전부터 NHK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비하는 게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김 교수는 “경술국치 100년이 중요한 것은 오늘의 주제인 수사사찰기관의 뿌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본격적으로 수사사찰기관에 대해 강의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게 아는 게 아냐.
흔히 민주주의라고 하면 시민의 손으로 직접 투표권을 행사해 국회의원과,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우리가 선출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힘에 의해 대한민국 역사가 가려져 왔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모르는 그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와 사건들이 좌우됐다면 민주주의와 선거, 국회는 왜 필요한가”라고 물으며 “국회와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기관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없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반만 아는 민주주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지오웰의 <1984년>에서 사람들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상경찰’과 수사사찰기관인 기무사와 국정원을 비교하기도 했다. “음지의 기관들이 개인과 그 가족, 주변인까지 파괴하는 것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서 MB정부에서 부활한 수사사찰기관들의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증거물로 이정희 의원이 공개한 수첩 [출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
부활의 징후들, 과거의 영광을 돌려다오.
쌍용자동차 파업현장에서 민노당 당직자를 기무사가 사찰한 기록이 발견된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기무사는 원래 법적으로 군인들에 대한 기록만 하는 곳인데 일반인을 기록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 기록을 언론에 공개하자 기무사는 휴가 나온 군인을 사찰한 것이라고 했지만 파업현장에는 군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거짓말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또한 일본 행사에 참석한 어느 노래패와 노동자, 농민 사찰 등이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도 거론했다. 그러나 수사사찰기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30년 전 공공연히 있었던 일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감시와 사찰을 하는 것일까? 김 교수는 군사정권에서 빛났던 이들의 업무가 민주정권 10년 동안 소용이 없게 됐다가 다시 MB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거의 영광이란 감시와 사찰업무를 했던 이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의미한다. “관료조직의 기본속성이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밑에 있는 기무사령관에게 독대보고를 받게 한 것이 관련기관들끼리 충성경쟁을 일으키게 해 감시와 사찰이 부활한 것”이라고 했다. “권력자가 어떤 조직에게 힘을 실어주느냐가 그 기관의 요원들을 오만하게 만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런 상황을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 군사독재시절에는 군, 중앙정보부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군-CIC, 경찰-사찰계, 민간CIA(중앙정보부 ->국정원)
군대와 경찰, 민간부문에서 감시와 사찰을 맡았던 부서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군의 내부정보를 담당하는 방첩대(CIC(Counter Intelligence Corps)-지금의 기무사), 경찰 사찰계(정보과, 형사과), 민간 부문인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가 그들인데 김 교수는 “사실 이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대한민국을 지킨 애국자이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끔찍한 범죄를 일으키는 곳”이라고 했다. 특히, 역사적 사건들 중 미스테리로 남은 김구와 케네디 암살사건들을 거론하며 만약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분명 이들이 죽어 이득을 본 집단들이 있었고, 그들이 죽음으로써 역사의 물길이 달라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고 했다.
한국의 수사첩보기관 누가 만들었나?
그렇다면 이런 수사첩보기관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김 교수는 미국과 미군을 그 배후로 지목했다. 2차 대전 후 미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통치하면서 일본식민지 시절 활동했던 친일경찰, 군인들을 재기용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바로 재기용된 친일경찰 특히, 식민지시절 경찰 사찰계였던 특별고등경찰출신들과 군 방첩대(CIC)를 미군이 대거 기용해 당시 일어났던 사회주의 운동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 사찰하는 업무를 맡겼다고 했다. 일그러진 역사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배후조종자들. 제임스 만, 도날드 니콜스를 아시나요?
친일 경찰과 군인들을 재기용하고 음지에서 활약했던 미군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군대의 아버지라 불린다는 제임스 하우스 만.(J. Hausman)과 이승만 대통령과 독대보고를 할 정도의 파워를 가졌던 도날드 니콜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제임스 하우스 만은 48년 여수순천반란사건 진압에 배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또한 “육사 좌익색출 당시 남로당 간부 경력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색출 당했을 때 구명한 것은 정일권이라는 사람이었지만 실제는 당시 28세의 미 육군 중위였던 제임스 하우스 만이었다”면서 “정보요원으로서 최고의 노하우가 있어서 다시 군에 기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하우스 만은 공식적으로 직위가 없으면서 이승만 정부시절 장관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비록 회고록은 없지만 이 사람을 빼고 한국 군대를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승만과 독대를 하고 이승만 정적들을 사찰했던 사람이 도날드 니콜스(D. Nichols)였다면서 그는 북한 인민군의 동향을 알고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손바닥 보듯 알았다”고 했다. 도날드 니콜스는 회고록을 썼지만 출간되자마자 미 CIA에 의해 수거 당했다고 한다.
군 방첩대(CIC)가 오늘날의 기무사
김 교수는 “젊은 세대는 기무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라면서 “80년대 보안사 군인들은 사복에 머리를 기르고 일반 군인들을 폭행할 정도의 권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군인들 비리를 캐고 정보 다 쥐고 있어 지위에 상관없이 방첩대(CIC)에 꼼짝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50년대 국민보도연맹사건을 방첩대(CIC)의 권력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았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전향한 좌익들과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을 전부 사찰하고 처형한 사건이다. “오늘날 기무사인 방첩대(CIC)가 사찰하고 처형 결정과 명령까지 한 사건 이었다”고 했다. 7,80년대 군사독재시절에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가 그대로 장악했고 노조위원장 선거에 개입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영화의 여주인공인 영신(고 이은주 분)은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총상당하게 된다 ⓒ 태극기 휘날리며
국가의 안보에만 집중해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미 청문회에서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CIA를 두고 “첩보기관의 권력 속성상 자기 권력을 키워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려 하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또한 “과거 수사사찰기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는 국회의원과 장관이 된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증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역할은 틈만 나면 확대될 수 있다”면서 “감시, 통제되지 않은 권력에 보통사람들의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작은 병력으로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소수의 집단이 정보 장악했기 때문”이라면서 “국가 안보에 상관없는 사찰기록들을 알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고 견제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최근 연구자들과 작가들에게 서명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연구비 지원을 중단하는 데에 국정원과 기무사가 개입한 것을 두고 “연구원으로서, 작가로서 내가 누려야할 권리를 차단당하는 것은 사찰당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수사첩보기관의 권력남용에 대해서도 “첩보는 필요하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 적의 정보는 알아야하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첩보부대 권력을 강화해 국내 반대세력까지 사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것이 남용”이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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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소리
- Mar 16, 2010 (12: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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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너무 잘해주셔서 수업내용도 생각나고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어제 주간사님이 댓글 말씀을 하셔서 적습니다. 몇 개 프로그램을 들었었는데 수강생분 중 내공이 상당하신 분들이 많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면서도 간단한 댓글 달기가 두려운 점이 있었는데요.. 김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댓글달기, 이메일쓰기, 전화하기 등 귀찮을 수 있지만 시민의 권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깊은 동감을 느끼고 저도 하나하나 실천해보려 합니다.. 저도 내공이 쌓이면 기사를 쓴 필자에게 이메일쓰기에 도전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