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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2강 '시민의 불복종'
류은숙 선생님과 함께 한 인권문헌읽기 2강의 주제는 “시민의 불복종”입니다. 사실 ‘시민의 불복종’은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데요. 아마 “인권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인권활동하시는 분들이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번 강의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시민의 불복종이 뭔가요?”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민불복종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공개성, 공공성, 의도성, 비폭력성, 위법성, 불가피성, 처벌감수 정도가 있습니다. 아, 너무 많아요. 이럴 때는 제 뇌를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한 줄짜리 단답형 모범답안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주에 시민의 불복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함께 읽은 문헌은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마틴 루터 킹의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7년 <뉴욕타임스>에서 저술자들에게 요청한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답변 중 하나인 노암 촘스키의 글 총 세 편입니다. 이 부분을 공부할 때는 류은숙 선생님의 저서 『인권을 외치다』 316-322쪽을 참고하면 좋아요.
먼저 ‘시민의 불복종’이란 용어의 창시자 격인 소로우에 대해 얘기를 나눴어요. 소로우는 인두세를 거부한 적이 있대요. 내가 낸 세금으로 인디언을 죽이는 데 사용하지 말라는 거죠. 고속도로를 만들거나 복지에 필요한 세금이라면 마땅히 내겠지만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정부가 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거죠. 물론 소로우의 행동은 개인의 판단 하에 단독으로 한 일이기 때문에 이걸 ‘시민의 불복종’으로 볼 수 있냐는 점에는 이견이 있어요.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행동하는 걸 시민 불복종의 요건으로 보는 경우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타인의 고통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소로우의 인권에 대한 반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소로우는 노예농장을 급습한 한 장군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이 있어요. 당연히 일정 부분 군사병력이 투입되었으므로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이었겠지요. 그렇다고 소로우가 폭력을 지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류은숙 선생님의 ‘시민의 불복종’이란 이름으로 한 행동이 정의로운지 혹은 폭력적인지를 결정하는 건 그걸 실천하는 시민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촛불집회 때 경찰들은 거리에 양초 하나 들고 나온 시민들 보고도 경계하고 감시했잖아요. 그럼 그 때 거리의 시민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했던 건가요? 완력의 여부가 폭력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방어적 폭력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이번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쓴 편지로 넘어가볼까요. 사실 마틴 루터 킹은 목사 집안에서 자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평범한 목사였다고 해요. 그러다가 몽고메리 버스 사건 이후로 급부상한 거죠. 몽고메리란 사람이 피부색에 따라 자리를 차별하던 것에 반대해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시작된 사건은 다들 아시죠? 그 이후로 인종문제와 관련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해요.
이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어떻게 쓰게 된 편지인지 알면 사연이 좀 복잡한데요. 지금은 그다지 진보적일 것조차 없이 당연해 보이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발언들은 그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것이었다고 해요. 운동을 하다가 킹 목사가 감옥에 잡혔는데 흑인해방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 흑인사회는 이 데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라는 글을 쓴 거예요. 어떻게 같은 이상을 바라보고 함께 하던 사람이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이렇게 매정하게 등을 보일 수 있는 걸까요? 킹 목사는 이런 반응에 꽤 상심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에 대한 답장으로 이 편지를 쓴 거죠. 버밍햄은 미국 내에서도 인종분리가 가장 철저하게 지켜진 도시였다고 해요. 여하튼 킹 목사는 동료 목사들에게 감옥에서 아주 긴 편지를 보냈어요. 그게 우리가 수업시간에 읽은 이 편지고요. 뒤 얘기를 조금 더 들려드리자면 이 글에 동료들은 또 우리는 시민권에는 찬성하지만 시민불복종에는 반대한다는 요지의 편지를 다시 썼다고 해요.
그들이 하는 얘기는 이런 거예요. 시민권은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확대되어왔는데 왜 너는 거리로 나가냐는 거예요. 그들이 예로 드는 건 브라운 판결인데요. 브라운 판결은 공립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에요. 그들은 시민권은 이런 식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그러면서 킹 목사에게 공공의 목적으로 법을 어기는 당신이 다른 범법자보다 더 위험하고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하죠. 여기에 킹 목사의 답변은 이래요. “왜 직접 행동하느냐고, 왜 연좌데모를 하느냐고, 협상이 더 나은 방도가 아니냐고? 이러한 당신들 의견은 전적으로 옳으며 협상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이 원하는 궁극 목표이다. … 우리 직접행동의 목표는 위기의식을 갖고 협상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반백년 전 이야기인데 왜 오늘날에 우리가 하고 싶은 답변과 이토록 닮아있는 건가요?
류은숙 선생님이 더 해주신 얘기엔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잘못된 거라고 배우잖아요. 그래서 당연하게 히틀러가 억지로 유태인을 수용소에 끌고 갔을 거라고 추측해요. 하지만 실은 유태인이 수용소에 가는 게 합법적이었던데다 차비까지 내야했다는 거예요. 그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당시에 합리적이고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들이었다는 거죠. 그럼 그건 올바른 행동이었던 건가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알 때마다 콩닥거리는 가슴!
노암 촘스키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인상적으로 들었던 부분은, 전쟁이 발발하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따스한 신체와 차가운 현금”을 바치라고 요구하는데 여기에 시민들이 너무 쉽게 응답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원치 않는 전쟁을 국가가 하려 할 때 우린 이에 반대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를 부정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건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나치 장교 헤르만 괴링이 “목소리를 내건 침묵하건 인민이 언제나 지도자들의 분부대로 하도록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침략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국심이 부족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평화주의자를 비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어요.
매번 인권강좌는 류은숙 선생님의 열정에 압도된답니다. 가끔 선생님의 뜨거운 정열에도 제 눈꺼풀이 내려앉기는 하지만(아, 선생님! 죄송해요.) 다른 수강생 분들은 안 그러실 거예요. 후훗. 늘 새로운 인권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 됩니다. 기대해주세요.
정의로운지 혹은 폭력적인지를 결정하는 건 그걸 실천하는 시민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가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