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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교실 기사1] 김동춘 "누가, 왜 화해와 용서를 말하나"
"앎의 즐거움, 모든 변화의 첫 걸음이다"라는 주제로 참여연대가 지난 3월 아카데미 '느티나무'를 개설했다. 2009년 상반기 내내 열리는 1학기 프로그램에는 경제학, 사회정치학, 인문학, 고전, 교양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짜여져 있다.
이 가운데 '월요민주주의학교'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최근 현안을 다루는 강의로 구성됐다. 지난 5월 18일 시작한 2기 사회정치교실은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강의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두 교수의 강의를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화해와 용서를 내세운 신문이 몇몇 있다. 화해, 용서,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피해자냐, 가해자냐… 이것이 중요하다. 또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전국 각지에서는 수백 만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지난달 29일 장례는 끝났지만 여전히 서울의 분향소와 봉하마을에는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 역시 지난 1주일 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그러나 강조점은 천차만별이었다. 5월 30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린 노제 보도 사진의 제목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의 한 구절이었는데, 이는 최근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구절이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민주주의학교'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바로 이 같은 반응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군사주의와 시민사회'였지만 김동춘 교수는 며칠 전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김동춘 교수는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다수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퇴임 후 1년6개월도 되기 전에 자살했다는 것"이라며 "순수하게 개인적 이유가 아니라 검찰의 정치성 짙은 수사를 받다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이, 왜, 어떤 상황이 국민의 대표였던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우리 국민은 질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김 교수는 "이는 김구, 여운형 암살부터 시작됐던 계속되어온 역사의 비극"이라며 "왜 우리나라 역사는 이렇게 비극적인가, 왜 한국 사회의 한 시대는 한 사람이 죽어야 끝이 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낙인찍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적대시해서 죽게 만드는 우리 사회 체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성찰해봐야 한다"며 "한국이 처한 전쟁이라는 상황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역시 한국 사회의 전쟁, 그리고 군사주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강조점은 천차만별이었다. 5월 30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린 노제 보도 사진의 제목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의 한 구절이었는데, 이는 최근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구절이기도 했다. ⓒ프레시안
"학살은 과거라고? 우리 사회가 한 걸음만 더 떼면 저렇게 간다"
"현재 남·북한은 사실상의 전쟁 중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도 사실 전쟁 상황이었던 걸 고려하면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계속 전쟁 상황이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현재 한국을 이끄는 주류 세력의 정신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전쟁만큼 중요한 변수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짧은 10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오랜 세월동안 국민들의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더라도 무사할 수 있던 사회가 아니었다"며 "전쟁 체제는 기본적으로 만성화되고 구조화된 폭력의 체제였고, 그 체제에서 지배 질서의 기둥은 경찰과 군대였다"고 분석했다.
"경찰과 군대는 폭력기구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전쟁 체제다. 국가 예산 중 상당 부분이 군대에 지출되고, 국민을 처벌하고 감시하여 그들의 복종을 유도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전쟁 체제라고 본다. 또 국회와 국민의 감시와 통제 밖에 있는 비밀 국가조직이 무소불휘의 힘을 발휘하는 사회 역시 전쟁 체제다."
김 교수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1961년에 설립된 한국의 국가정보원,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미국의 FBI, 일본에 존재했던 '특별고등경찰' 등을 예로 들며 "비밀조직에게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적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권력자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국민을 사찰, 테러, 감시를 묵인하는 체제가 전쟁 체제"라며 "그 극단적인 형태가 학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뿐 아니라 냉전에 있었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1950년대 한국전쟁을 전후로 지역 곳곳에서 수십~수천 명이 희생되는 대량 학살이 자행됐다. 김 교수는 "1951년 700명의 주민이 학살된 거창 사건을 비롯해 1980년대까지 이어진 고문 사건 중 드러난 사건은 열 건 중 한 건도 안 된다"며 "우연한 기회에 폭로되거나 양심적 고발자가 있거나 언론이 취재했거나 하는 예외적 경우에만 드러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시의 학살이 멀리 떨어지고 야만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과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 우리 사회가 한 걸음만 더 떼면 저렇게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즉 적과 나의 이분법이라는 광기가 발동하면 그렇게 된다"며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상대방을 덧칠하고 좌우 양쪽에서 서로를 죽이는 것은 무서운 행동이지만, 준 전쟁 상황인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 반복돼 왔다"고 덧붙였다.
"친일 콤플렉스, 보수 세력 심성의 기원"
김동춘 교수는 "국가보안법 등을 기반으로 한 기본적인 사찰 체제는 지난 60년 간 해체되지 않았다"며 "조용한 형태의 사실상의 학살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권력의 이름을 빌린 합법적 폭력은 언제나 법의 경계를 넘어서 법 영역 밖에서 이뤄져 왔다"며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공권력의 불법성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고문과 불법 감금과 학살이 자행되던 그때와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빨갱이 죽이는 것이 뭐가 죄가 돼?' 이런 생각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졌는지 질문해보자. 정치적 반대 세력, 위험한 이의 목숨을 뺏는 것 자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문화와 지배 구조가 어디에서 왔는가?"
이어 김동춘 교수는 "이것은 곧 한국 지배세력의 문제와 연동돼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과 군부, 그리고 경찰이 가지고 있는 좌익 공포증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일종의 가해 매카니즘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 세력은 물론 회색지대에 있는 세력까지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보수 세력의 태도는 이들이 갖고 있는 태생적 콤플렉스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친일 콤플렉스가 보수 세력 심성의 기원을 이룬다"며 "그 세대는 자연적으로 없어졌지만, 문제는 이 콤플렉스가 변형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친일 세력 이후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권력자로 등장했다. 국민을 설득할 어떤 정치적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권력이 주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미군이 이들을 용인하면서 계속 권력을 쥐었다.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자기들처럼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이 아닌 사람, 즉 도덕성을 무기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저항하거나 대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여기서 지배세력에게 관용과 타협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사죄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거꾸로가 된다. 자기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깨끗한 사람, 바른 말 하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 이들을 모두 빨갱이로 모는 것, 이것이 우익 콤플렉스의 기원이다."
▲ 김동춘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과 군부, 그리고 경찰이 가지고 있는 좌익 공포증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일종의 가해 매카니즘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의 트라우마"
따라서 김동춘 교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포용력이 좁은 이유는 자신의 정치 도덕성 기반이 그만큼 좁다는 걸 의미한다"며 "흐르는 위기의식과 공포감으로 구성된 우리 사회의 만성적인 콤플렉스가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가져오게 했던 이유가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 했던 시기는 우리 사회에서 지난 10년 정도로 아주 짧았다"며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과거 정치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런 식의 정치 문화와 지배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은 사실 국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민들이 고발하지 않거나, 굴복하거나, 침묵하거나, 항복하거나, 도피하는 까닭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며 "흔히 전쟁이나 폭력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학하면서 자기 파괴로 가는 과정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이 한 동네에서 당하면 100명이 교훈을 얻는다. 학살의 피해자가 10만 명 가량이라고 해도, 1000만 명이 영향을 받는다. 피해자는 소수이지만 영향을 받는 사람은 국민 전부다. 이는 다음 세대까지 계속된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전쟁의 트라우마와 지배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고, 조금씩 변해왔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배 세력이 관성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단죄하고, 이를 통한 용서와 화해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춘 교수는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같은 비극적 일을 보면서 너무 생생하게 우리의 현대사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왜 이런 일이 계속 나타나는지 우리는 곰곰히 돌이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