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그림 ; 그리움을 그리다.
- 명동성당.jpg [File Size:42.4KB]
- 원서동.jpg [File Size:49.5KB]
- 전시회 포스터.jpg [File Size:58.2KB]
- 전시회.jpg [File Size:44.9KB]
- 전시회 2.jpg [File Size:42.6KB]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보여주듯, 그림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욕망과 이상을 형상화하는 행위이다. 구석기의 인간이 들소와 사자를 그렸다면, 현대의 인간은 무엇을 그릴까. 이제 인류의 절반은 빌딩 숲과 매끈하게 빠진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 사이를 배회하며 산다. 생산량과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오히려 상실감과 외로움도 커진다. 이러한 감정을 굳이 한마디로 모으면 그리움일 듯하다. 그리움이란 있던 것이 사라진 상실을 전제로 느끼는 감정이자, 여전히 사랑하지만 더는 함께 할 수 없어 겪는 외로움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2022년 가을, 서울 드로잉 수업은 그리움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한용운의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는 말처럼, 각자 서울의 풍경에서 발견한 그리운 님을 그리는 정성스러운 작업이었다. 참여연대가 있는 서촌의 골목을 시작으로, 명동 성당, 원서동 빨래터, 용산 공원, 이화 마을, 압구정까지. 서울의 곳곳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것들, 아득히 잊힌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때로는 건물이, 때로는 사람이, 때로는 터만 남고 모두 사라져 변한 곳도 있었다. 그러한 곳마다 그리움이 빈자리를 채웠고, 도화지에 담겼다.
같은 장소라도 모인 사람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을 내주었다. 명동 성당만 해도, 누군가에겐 민주화를 위해 농성하는 청년들의 피신처가 되어주던 곳으로 피 끓는 청춘의 그리움이 솟아나고, 또 누군가에겐 연인과 크리스마스 인파 속에서 마냥 풋풋했던 사랑의 그리움이 피어나는 장소일 테니.
원서동도 유서 깊은 동네인데, 얼마 전 개관한 노무현 시민센터가 있어 또 다른 의미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이지 싶다.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지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드로잉 수업이 이화마을에서 있던 토요일 밤 참사가 일어났다! 사라진 것을 두고두고 잊지 않는 것, 기억한다는 것은 생명을 불어넣어 새롭게 살리는 일이다. 우리가 노무현의 정신을, 세월호 참사와 10.29 참사의 희생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림이야말로 기억하기 위한 인류 최초의 노력이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무엇을 그린다는 것은 그것이 기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한다. 서울 드로잉 수업에서 그림이 된 다양한 장소와 대상은 저마다 오래 기억될 이유 있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한 점 한 점 특별하지 않은 그림이 없고, 어여쁘지 않은 것이 없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대상 앞에 멈춰서서 자세히 바라보는 시간은 결국 그것이 겪어낸 세월을 듣는 무언의 대화였다.
그렇게 서울 풍경에 담긴 저마다의 그리움을 한자리에서 나누는 전시회는 한층 특별한 시간이었다. 첫 시간의 서먹함과 수줍음은 토요일이 쌓일수록 서로를 향한 격려와 응원으로 바뀌어 전시회는 준비부터 훈훈하고 흥겨운 잔치가 되었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이 순간 역시 서로에게 그리움이 되어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2022 가을 서울 드로잉 수업이 빚어낸, 그리움이 담긴 그림과 함께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