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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투사워크숍] 나의 장례식장
영화 <굿바이> 영상 캡처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2008)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어린 시절 주인공은 아버지와 ‘돌편지’라는 것을 주고받는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닮은 돌을 강가에 주워 아들에게 준다. 그러면 마음은 촉감, 무게감. 생김새를 가진다. 그렇게 전달된 편지는 어렴풋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게 한다. 나는 이 ‘돌편지’가 꿈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혜경 선생님은 “꿈은 신이 보낸 연애편지”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내가 건강하고 온전해지길 바라는)을 전달하기 위해 무의식이란 강가에서 꿈이란 도구를 선택한다. 다만 꿈은 상징과 은유로 되어있기에 어찌 도착한 편지를 열어보아도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꿈은 신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해 ‘연애편지’가 아닌 길거리에서 받은 ‘부동산 전단지’로 취급당한다. 힘겹게 꿈이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악몽이라 생각되면 길에 버리고, 길몽이라 여겨지면 복권방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그룹 투사 꿈 작업(Group Projective Dreamwork)은 꿈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1960년대에 창안한 방법이다. 한 사람이 가져온 꿈을 듣고 '이 꿈이 내 꿈이라면...’ 하면서 여러 사람이 투사(projection)를 한다.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작업할 때 각 개인이 가진 다양한 층의 지식과 직관을 동원해 함께 꿈을 이해하려는 작업에 동참한다. 그러면 꿈을 꾼 사람은 훨씬 넓은 범주의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자연히 꿈의 다층적인 면과 복합적인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아하! 체험”을 할 기회도 증가하게 된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실제로 다양한 시각에 내 꿈은 다채로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누군가 던진 말에 내 안에 있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 반응해(저 공이야!) 딱! 소리를 내며 홈런을 친다. 그러면 절로 ‘아!’ 소리가 나온다.(이 순간의 느낌은 시커먼 무지의 구름을 빠져나와 새파란 하늘을 바라본 <매트릭스3>의 명장면과 같다)
그렇다면 실제 꿈 투사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나는 작년 가을과 올해 봄에 워크숍을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맨 처음 내 꿈을 다뤘다. 제목은 <앞다리가 없는 통통한 고양이>였다. 다음은 꿈의 내용이다.
‘앞다리가 없는 고양이가 내게 걸어온다. 두 뒷발로 잘 걷는다. 잘 먹고 다니는지 얼굴이 통통하고 둥그스름하다. 그 옆에는 조금 어린 청년 수컷 고양이도 있다. 둘 다 수컷이다. 내가 먹이를 준다. 두 고양이는 먹이를 먹고 잠시 내가 시선을 돌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순간 땅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진다.’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이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나는 사람들 앞에 내놓고 그들의 질문을 기다린다. 누군가 묻는다. “고양이의 앞다리가 잘렸나요?” 생각해보니 다리는 없지만 잘리지는 않고 흐릿했던 기억이 나서 절단은 아니고 흐릿하다고 말하며 대신 없는 것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서서 걷나요?” 아니다. 일반 고양이처럼 네 발로 걷는다. 다만 앞발이 흐릿해 없을 뿐이다. “옆의 어린 수컷 고양이는 형제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먹이를 주고 있나요? 밥그릇에 담아 주나요?” 그냥 두 손으로 건 사료를 담아 땅바닥에 두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속으로 아차! 싶었다.(아하!가 아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너무 애정없이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그 사람의 형체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꿈에도 등장해 이런저런 상황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구성원들은 자기 꿈으로 만들기 위한(이미지를 선명하기 위해) 질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 사람씩 ‘이 꿈이 나의 꿈이라면...’ 말하면서 투사를 시작했다.
투사가 시작되면 각자의 지식과 직관으로 꿈을 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꿈을 가져온 나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고백’이다. 따라서 틀린 것도 없고 굳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각 개인이 가진 역량대로 성찰하면 된다. 그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앞발이 없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어린 수컷 고양이에게서 자기 형제를 보기도 하고 실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습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에 내게 ‘아하!’가 왔다. 앞발을 잃은 고양이는 호기심도 인간관계도 잃은 나였음을.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지침으로 애정없이 먹이를 주고, 보기 싫어(‘시선을 돌려’) 괜찮은 척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내버려 두고 무관심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또 다른 통찰이 올라왔다. 우리 부모님도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앞발을 잘랐음을. 그래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들의 앞발을 자르려고 했다. 이것은 김수영 작가의 책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자식이 외국의 어떤 좋은 회사에 다니든 그저 집 근처 공장에 취직해 남자를 만나 우리 곁에서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과 같다. 자식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부모님도 불쌍하다고 느껴져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우는 꿈을 꾸었다. 부모님도 앞발이 없는 것이다.
꿈투사를 하고 나서 무엇이 좋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몇 가지 짚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 질문을 받는 것이 좋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내 안의 어떤 요소이다. 따라서 꿈에 대한 모든 질문은 나에 관한 관심으로 느껴져 나를 기쁘게 한다. ‘와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니!’ 나에 관한 여러 질문은 내 기억 속 묻혀있던 기쁨과 슬픔을 자극해 내 마음을 활성화한다.
둘째, 상징과 은유로 내 고민을 다루기 쉽다. 심리학적으로 첫 번째 꿈을 다룬다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유기와 방임으로 애착 형성에 실패해 내가 부족해 부모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는 열등감에 빠져 남의 눈치를 살피며 남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모범생이 되고자 노력한다. 열등감은 이성 앞에서는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로 표현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부모님의 곁에 떠나지 못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꿈은 얼굴이 통통한 앞발이 없는 고양이의 상징으로 이 사연을 압축한다. 이 고양이라는 상징은 나에게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이 상징은 내 안에서 선택된 이미지고 내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내게 고양이는 매우 독립적이고 개와 달리 자신의 기분이 주인보다 더 우선시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다루기 힘들어 중성화하고 집안에 키우는 동물이다.
셋째, 무의식적 행동 양식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고양이 밥그릇’을 왜 나는 놔두지 못했나? 그 이유는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못해서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돌봐야 하는 0순위인데 끊임없는 인정욕구로 시선이 타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꿈투사 이후로 친구에게 선물할 예쁜 ‘안경 닦이’를 그냥 내가 썼다. 그리고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늘 실망으로 끝내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습관도 고치고 있다.
넷째, 꿈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나는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꿈을 들으면 손짓으로 이미지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꿈이 사용하는 기교인 언어유희를 맞추기 위해 여러 단어를 던져보기도 한다. 더욱 나아가 꿈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내 꿈에 나오는 고양이를 가지고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장화를 신기다면 고양이는 두 발로 일어서서 그의 재치로 가망이 없는 이 현실을 놀라운 일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꿀 것이다. 또 좀 더 강인하고 고귀하게 고양이를 돌본다면 <알라딘>에 나오는 쟈스민 공주가 키우는 호랑이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 <알라딘> 티저 영상 캡처
다시 영화 <굿바이>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다.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한다. 어찌 돌아온 고향에 그는 어릴 때의 상처와 마주한다. 동시에 아내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싫어하는 이와 나는 닮은 것이다. 그는 죽음을 다루는 납관사(관에 사람을 넣는 의례를 관장하는 사람)로서 사연이 있는 여러 죽음을 다루며 좋음과 나쁨으로 삶을 가르는 이원론의 무상함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처에 담대하게 다가간다. 그 후 죽은 아버지를 마주하며 그가 전해고자 했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상처 입었던 자신도 관에 넣는다. 영화 제목 <Good & Bye>의 'Good'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준 그들을 향해 ‘You are good’이 아니라 ‘I am good’라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Bye’로 이 사건을 내가 종지부 찍을 수 있음을 뜻한다. ‘I am good’라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꿈투사 워크숍에서 당신은 얻을 수 있다.
가장 보통의 보편적인 당신이 참여하고 연대해 만들 이 둥근 자리는 모험을 떠나기 전 옛 기사들이 치유의 성배를 보았던 원탁이며,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더라도 남아 있을 진정한 반지며, 일찍이 아기 공룡 둘리가 납치되었던 UFO다. 왜 갑자기 UFO냐고? 패닉의 <UFO> 가사를 보라.
“마지막 달빛으로 뛰어가봐 날아와 머리위로 날아와 검은 하늘을 환히 비치며 솟아 모두 데려갈 빛을 내리리 이제야 그 오랜 미움 분노 모두 다 높이 우리와 함께 날으리”
여신의 달빛으로 당신의 그 오랜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는 자리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