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손바닥연극] 일상에 균열을 낸다는 것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의 순간, 연극과 함께였다. 손바닥연극 워크샵은 단비처럼 만난 10주의 시간이다. 직장에 입사하면서 연극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장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순간 문득 연극을 떠올렸다.
워크샵은 열여섯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처음 참여한 사람도 있었고,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공통점은 서로에게 굉장히 살갑고 예의 바르다는 점이었다. 살가우면서 동시에 예의 바르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여기서는 되더라. 워크샵 전에 받았던 몇 가지 규칙을 기억한다. 직업, 나이, 학벌, 사는 곳, 성적 지향 등 사적인 질문은 서로에게 하지 않는다.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고 반말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보편타당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 규칙들이 더 있었다. 여자나 남자의 화장실이 아닌 ‘모두의 화장실’도 반가웠다. 수차례 워크샵을 거듭하며 다듬었을 규칙이라고 생각하니 참 좋았다. 일상에서 느꼈을 부조리함을 수정하고자 하는 몸짓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워크샵은 규칙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닌가. 마음이 따뜻했다. 연극을 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워크샵 각 조는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형식은 자유였다. 움직임이어도 되고 영상이어도 되고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도 괜찮았다. 그저 우리가 상상한 것을 발표하는 형식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머리를 모았다. 더 좋은 장면은 없을지 토의했고 연출님께 자문을 구했다. 괴롭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싶은 순간도 있었고, 그런 순간이 주는 재미와 감동도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 메시지에 설득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연극의 틀을 획기적으로 깨지는 못했다. 시간에 쫓기며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인생은 늘 그렇지 않나. 무용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에서 예상치 못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시작으로 다음 스텝을 상상하고. 연극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음 연극을 꿈꾸며 즐거워지는 것은, 연극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재미다. 그건 연극을 해본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다.
소위 ‘일반적’인 것에서 멀어질수록 행위의 동기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너는 왜 그걸 하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살지 않아?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없는 거야? 등등. 나를 책임지지 않는 말을 무시하고 싶지만 이따금 그런 말은 씨앗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는다.
연극이 나에겐 그렇다. 지금껏 연극은 피난처가 되어주었지만 연극과 가까이 할수록 일상과는 거리가 생겼다. 그 괴리감을 이겨내는 날도 있었고 지고 마는 날도 있었다. 즐거우면 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즐겁기만 해도 될까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마 연극은 나에게 계속,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연극은 정말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같은 것이 아닐까.
연극에 매달리면서 일상에 균열을 내고, 균열을 보며 반가움을 느끼다가 이내 균열을 메울 방법을 찾아 나서는 과정. 이번이 진짜 마지막 연극이다 생각하지만 막이 내린 후 결국 다음 공연을 기약하고 마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평생 연극과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강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