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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 글쓰기] 독자를 혼내지 않겠습니다
6주에 걸친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지난 6주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수업을 듣고, 일요일마다 숙제를 냈다. 수업은 딱 한 번 빼먹었지만, 숙제는 항상 데드라인을 지켰다. 매주 짧게는 반 페이지에서 길게는 한 페이지 이상을 써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분들은 참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숙제하다 문득문득 들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쓴 편성준 선생님은(이하 편샘) 책에서만큼이나 유쾌한 사람이었다. 강의는 편샘이 매주 주제에 맞는 짧고 긴 길들을 잔뜩 들고 와 그것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편샘 특유의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내 흥미진진했다. 만약 글만 잘 쓰고 재미는 없는 사람이 강의를 했다면 한 번만 듣고 떼려 쳤을지도 모른다.
80% 청년 할인을 해주길래 냉큼 신청한 이번 수업에서 꽤 많은 걸 배웠다. 편샘은 팬티와 책장을 연결해라 (엉뚱한 두 가지를 연결해라), 독자에게 친절한 글을 써라, 제목을 꼭 붙여라, 글 맨 밑바닥에 인생이 보여야 한다, 너무 액기스만 쓰지 말고 군더더기도 좀 써라 등의 주옥같은 노하우를 푸짐하게 전수해 주셨다. 근데 강의 내용 중에 내게 가장 와닿았던 얘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싫어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을 쓰라는 말이 긴 여운을 남겼다.
좋아하는 것을 쓴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내가 싫어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라는 얘기다. 6주 동안 내가 숙제로 제출한 글 대부분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쓴 글들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자타공인 평소에 꽤 긍정적인 사람인데 내가 쓴 글들은 전반적으로 삐딱했다.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회문제, 내가 보고 실망한 영화 등에 대해 신랄하게 물고 늘어지는 글을 써서 냈다. 내 딴에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파헤쳐가며 구체적으로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를 요목조목 따지는 글이 지적이고 멋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 한번은 편샘이 내 글을 다 읽고 혼난 기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너무 옳은 소리를 옳게 하는 것보다, 심각한 얘기일수록 헐렁하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편샘 얘기를 듣고 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선 내 글이 좀 재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영양가 있는 글도 친절해야 읽히기 마련인데, 내 글은 시종 까칠했다.
마지막 강의 때 편샘은 정세랑 작가의 글귀 하나를 들고 오셨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읽자마자 괜히 찔려서 편샘이 나 보라고 특별히 들고 오신 게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의심이 들었다. 또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게, 나는 수업 시간에 종종 편샘의 표적이 되어 나쁜 예로 소개되곤 했다. 편샘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양일수 씨”라고 운을 뗄 때마다 난 까임을 당할 마음의 자세를 갖췄다. 근데 난 편샘의 까임이 좋았다. 내 글을 비판적으로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 나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걸 잘 못 한다. 그걸 편샘이 대신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6주 동안 편샘의 가르침 덕분에 내 글쓰기는 분명 성장했다. 글을 쓸 때 고려해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 그리고 내 글쓰기 실력이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