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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세월호 침몰참사 추모 시민예술 참가기 -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죠”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죠”
- 세월호 침몰참사 추모 시민예술 참가기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주은경
5월 1일(목)
5시 시청광장. 맑고 깨끗한 오월의 햇살을 받으며 한 사람 두 사람 참여연대 회원들이 모입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봄학기 <도시의 노마드 춤 워크숍>을 진행했던 최경실 선생님이 <평화의 춤>을 안내합니다. 춤과 동작으로 우리의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단순한 동작을 알려줍니다. 20여명이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가슴에 그 느낌을 담고, 또 두손으로 땅을 짚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서클을 만들며...
처음엔 동작이 낯설고 집중이 어렵기도 하였지만, 동작이 몸에 익을수록 내 마음의 슬픔과 분노가 몸으로 땅으로 하늘로 퍼져나가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이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너무도 쨍하게 맑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죽음으로 내몰린 그분들의 명복을 빌며,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의 경계를 실감합니다.
2-30분 흘렀나요?
그 춤을 끝내고 둘러앉아 함께 한 회원, 간사들이 이 시간의 느낌을, 세월호 침몰참사의 슬픔 분노를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가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금 이런 춤을 추고 있을 때냐. 너무 약하다. 더 확실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처음엔 어색했지만, 내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어서 서울시청 광장의 분향소로 향합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서울드로잉 수업을 했던 고경일 선생님도 함께, 이때 고쌤이 제안을 합니다.
“지금 시청광장이 추모분위기가 약하다. 만약에 세월호 승객들이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는 그림을 만들어보자. 가로 30미터 세로 1미터 대형 그림 2개. ”
저는 한번도 이런 미술작업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 감이 없습니다. 그렇게 금방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날 저녁 고쌤과 몇몇 참여연대 간사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 고쌤은 구상하는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함께 작업할 사람들을 모으는 등 분주합니다. 나같은 비전문가가 뭐 도움이 될까 하면서도 나 역시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그림동호모임 그림자 카톡에 우리의 작업계획을 올리고 시간 되시는 분 나오시라 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연휴계획이 있어 나온다 합니다. 잠시후 반가운 문자.
“내일 참여할게요.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뭐라도 하고 싶어요. 은경님의 답신입니다.
그렇죠. “뭐라도 하고 싶다”... 이 맘이 모두의 마음인 것같습니다.
5월 2일(금)
오후 5시 무렵 비가 왔습니다. 바닥이 축축할텐데 과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시청광장으로 나옵니다. 저녁 6시경 바닥에 대형 천이 펼쳐졌고, 몇몇 사람들이 연필로 밑그림작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고쌤이 그린 기본그림을 확대해서 구역을 나누고 역할 분담을 하고. 그림자 회원 은경님이 한쪽에서 그려나가고 저도 맨 왼쪽부터 시작하고, 그림자 신영님도 가운데를 채워갑니다. 밤이 깊을수록 무척 춥습니다. 손이 시립니다. 그래도 밑그림 그대로 확대해서 대형천에 연필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그려갑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삶과 생명이 다가옵니다. 그들의 슬픔이 억울함이... 울컥 목이 맵니다. 천천히 마음을 다해 그분들을 그려갑니다.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한마음으로 열심입니다. 처음 본 저분들은 젊은 그림책 작가들입니다. 고쌤의 연락을 받고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고쌤의 학생도 있습니다. 작년에 일러스트 수업을 듣고 유학을 다녀온 지호님도 보입니다. 은경님의 선배로 뮤지컬 음악감독을 하는 분도 한쪽에서 작업을 합니다.
밤 9시반쯤 바람이 점점 세지고 아주 춥숩니다. 고쌤은 원래 새벽2시까지 작업을 끝낼 계획이었다 합니다. 함께 인사를 하고 작업계획에 대해 회의를 합니다. 밤 11시까지 일단 작업을 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계속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밑그림 스케치가 어느 정도 완성되는 걸 보고 저는 9시반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감기도 아직 안나았는데 너무 춥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느티나무의 서울드로잉 7기와 느티나무지기들에게 함께 하자는 연락을 부탁했습니다.
5월3일(토)
어제 비가 온탓인지 날씨는 무척 청명하지만 바람이 무척 차갑습니다. 꽤 따뜻하게 입었다 생각했는데도 아침 8시의 시청광장은 무척 싸늘합니다. 시청앞 분향소도 썰렁한 시간... 고쌤과 지호님은 벌써 나와 작업을 다시 서두르고 있습니다. 전날 밤 거의 완성한 얼굴들 위로 이제 본격적인 색칠작업을 시작합니다. 얼굴과 옷은 고인들을 생각해서 회색과 검은색, 바탕부분은 이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노란색. 붓으로 하나하나 채워갑니다.
상황실 자원활동 때문에 나온 영선님, 그리고 전날 카톡을 보고 나온 항중님, 봄이님 반갑습니다. 항중님은 남친도 불렀네요. 고쌤은 또하나의 작업을 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느티나무지기 영미님에게도 나오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티나무지기 미경님도 친구와 함께 나왔습니다. 느티나무 일러스트와 서울드로잉의 강사 배민정님도 씩씩하게 나타납니다. 일러스트 수업을 들었던 우영님도 나왔습니다. 효주간사도 보입니다.
10시 무렵 분향나온 시민들과 어린이들이 우리들 작업을 보러 옵니다. 민정샘이 큰소리로 말합니다. “여기 노란 바탕 함께 칠해요”
구경하던 어린이, 어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붓을 들고 우리 작업에 참여합니다. 아이가 붓질을 하면 엄마가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참 고맙습니다. 작업에 갑자기 속도가 붙습니다. 역시 참여하는 시민들의 힘이 강합니다.
1시쯤인가? 미경님이 물과 빵을 사다줍니다. 한참 배고프던 차에 맛있게 먹습니다. 그제야 서로 얼굴도 보고 인사도 나눕니다. 마무리 작업에 동참한 느티나무 문학수업의 단골참여자 은미님도 친구와 함께 잔뜩 먹을것을 싸가지고 나왔습니다.
선이 뭉개진 곳 수정하고, 색칠이 잘못 들어간 부분 다시 칠하고... 코팅작업까지 이 마무리작업에는 주로 참여연대 느티나무 수업에 참가했던 친구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다시금 뿌듯하고 기분좋습니다. 뭐라도 해야겠어... 발벗고 나선 사람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미경님이 말합니다. “이렇게 거들 수 있어 참 좋네요. 아니면 집에서 울고만 있었을텐데...” 영미님도 말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취재를 나온 신문기자, 방송기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취재합니다. 일본TV 기자도 뭐하는 거냐고 묻고 가서 우리작업을 배경으로 리포트를 합니다. 특히 TV 방송기자는 누구라도 인터뷰를 해달라고 질기게 요청합니다. 누구도 내키는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지호님이 떠밀려 인터뷰. 지호님에게 미안합니다. 한참 뒤엔 항중님 남친도 인터뷰. 그런데 나중에 아무리 검색해도 신문, 방송 모두 나오진 않았네요. 하하.
작업이 끝나고 이젠 설치합니다. 동아줄을 단단히 묶습니다. 시민들이 이 앞에서 사진도 찍습니다. 그 앞에 노란 종이배들이 하나 둘 놓여집니다.
그 옆엔 또다른 대형 그림이 그려집니다.
“왜?”라는 글자로만 쓰여진 작품. 세월호에 탄 사람들은 왜 침몰되어 죽어가야 했을까를 묻고 생각해보는 그림입니다. 아저씨도, 할머니도, 어린이도 참여합니다. 집회장에서 걸개그림으로 사용되길 바라는 그림입니다.
저녁 7시. 청계광장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작업을 했던 고쌤, 지호님, 미경님, 은경님, 영미님이 함께 종각, 명동을 거쳐 다시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합니다. “아이들을 살려내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그리고 9시반. 우리는 저마다의 내일을 위해 헤어집니다.
짧고 굵었던 시간. “뭐라도 해야겠기에” 함께 한 시간. 참 고맙습니다.
함께 생각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행동하는 것. 뭐라도 하는 것. 지금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렇게 십시일반 시민들의 작은 예술참여로 이어지는 것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다음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참여하셨던 모든 분들 수고 정말 많으셨어요. 고쌤의 계획을 함께 듣고도 마음만 보탰던 제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할말이 없네요...잊지 않을 수 밖에요
그 때 금요일 밤에 바람이 차갑게 불고 굉장히 추웠는데 늦게까지 고생하시는 모습 보고 마음이 짠했답니다... 그래서 토요일 늦게나마 다시 나가봤던 것이고요. 고교수님이나 참여연대 분들, 환경연합 분들, 또 같이 돕던 시민들... 마음이 느껴졌어요. 잊지 말고 뭐든 해야겠지요.
"이렇게 많이 죽었어?"
마음이 너무 슬펐지만, 이 그림을 추모하러 온 아이들과 학생들과 엄마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그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림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사람들의 모습을 차분하게 정성껏 색칠해주셨던 많은 분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거 같습니다.
슬프고 화가 나고 가끔은 외면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우리가 그렸던 그림을 보며 다시 희망이 생겼습니다.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이요.